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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씩 찾아오는 무력감에 대하여

대학원생의 스트레스 관리법

 한 달에 한 번씩은 꼭 내 몸과 마음이 무너져 내림을 느낀다. 물 먹은 솜처럼 아무것도 하기 싫고 누워만 있어도 공허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누워만 있는 상황이 허락되지 않고 계속 출근을 해야 하고 생산성 있는 일을 해내야 할 때 나는 스트레스로 사람이 미쳐버릴 수도 있겠구나 라는 점을 느낀다. 스트레스받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내가 이 감정을 숨겨야 한다는 상황에서 기인했다. 이 날은 내가 하는 움직임 하나, 생각 한 꼬집 무엇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한 꼬집. 그 조그마한 정도라도 한 순간의 감정이 요동치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주변에서 누가 말을 걸고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묘기에 가깝다고 여겼다. 나는 그렇게 혼자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곤 한다. 


 이럴 땐 내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몹시도 조심스러워진다. 혹시라도 툭하고 터져 나온 감정의 수렁이 나를 더 깊은 곳으로 잡아끌까 봐 걱정되어서일 것이다. 호르몬의 문제이든 대학원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나온 것이든 나는 이 상황을 언젠가는 해결(?)을 봐야만 한다고 생각했었다. 이 감정을 계속 꽁꽁 숨기려고 한다면 내가 못 견디고 다 포기해버리고 싶어질 것 같아서였다. 


 그러던 중 문득 주변을 봤다. 모두 다 바빴다. 우리 연구실은 (다른 연구실도 비슷할 테지만) 각자 연구하는 게 너무 바빠서 서로 실험하고 있다거나 테이블 워크를 하고 있을 때는 크게 서로 신경 쓰지 않는다. 실험 중간중간 시시콜콜한 대화를 하고 장난을 걸고 깔깔거리면서 웃고, 그럴 뿐이다. 바빠 보이거나 기분이 안 좋아 보인다면 특별히 건들지도 그렇다고 엄청 챙겨준다거나 관심을 더 많이 준다거나 그러지도 않는다. 그 정도로 우리는 함께 보내는 시간이 서로의 가족들보다 많음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삶에 깊게 관여하진 않는다. 우리 연구실이 같이 하는 일들이 많지 않은 것도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좀 더 근본적으로 보자면 서로가 서로에게 본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관심이 많이 없다.


 인간은 이기적이다. 이 명제만큼은 내가 비록 짧은 인생이지만 그동안 처절하게 자주 느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 중요한 사람이 많고, 나의 아픔이 다른 사람의 아픔보다 크게 느껴지는 사람도 많다. (그렇지 않은 반례는 항상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으니 함부로 확언하진 않겠다.) 그렇기 때문에 가족들이나 애인처럼 나와 인간적으로 깊은 관계를 맺고 내 일상을 항상 보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다른 사람의 슬픔과 아픔에 크게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심지어 내가 참고 있고 그 감정을 숨기고 있다고 생각했다면 대부분 잘 숨겨지고 있을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그 숨기고자 하는 노력은 다른 사람은 일절 알지 못한다는 말이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순간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감정을 숨기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스트레스받아가면서 감정을 다스리려고 노력했는데, 이걸 아무도 몰라주네? 그럼 내가 왜 참아야 하지? 


 결론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나는 더 이상 참지 않기로 결심했다. 보통 문제의 해결은 원인을 찾는데서 시작한다고 초등학생 때 배우는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원인을 못 찾는 경우에는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는지 잘 알려주지 않는다. 많은 경우에 원인을 찾지 못하는데 말이다. 감정의 소용돌이에 한번 들어왔을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이게 왜 생겨났는지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단 이 소용돌이를 먼저 잘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 원인은 그 후에 다시 이 일이 일어나지 않는 예방 차원으로 찾아도 늦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소용돌이를 잘 보내기 위해서는 흘려보내야 한다. 바람은 기압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며 그 기압의 차이에 바람의 세기는 비례한다. 바람을 막고 싶다면 정말 튼튼하고 견고한 집을 지어야 하는데 그 집이 하루아침에 지어질 수 있을까? 짚으로 만든 집에서부터 시작해서 다시 무너지고, 다시 좀 더 견고하게 쌓았다 싶었는데 바람은 더 세져서 다시 속절없이 무너지고, 그걸 다시 메꾸는데 마음이 미어지면서 그러면서도 그 방어막을 짓고 있는 자신을 직시했을 때 한없이 초라해진다. 바람을 막는다는 것은 자연현상에 승부하겠다는 것과 같다. 막았을 때 오히려 더 강한 바람이 들이닥치기도 한다. 빌딩 숲 속에서 바람이 더 세지기도 하지 않는가. 


 그저 흘려보내자. 어차피 쓰러질 감정의 벽 따위 짓는 데에 시간 쓰지 말고 그저 흘려보내자. 울고 싶으면 울고, 짜증이 난다면 짜증을 흘려보낼 곳을 찾자. 나 자신이 너무 밉다면 미운 점들을 일기에 다 써보자. 모든 것이 다 하기 싫다면 한 번쯤은 그것을 놓을 용기도 인생에 있어서 필요하다. 용기를 낼 수 있는 순간은 생각보다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나도 이 점을 깨닫고 난 후 가끔씩 찾아오는 무력감에 대해 그 상황 그대로 두기로 했다. 어떻게든 이것을 해결하려 노력해 보았지만 모든 것이 무용하다는 것을 깨닫고 그저 참지 않고 흘려보냈다.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는 정말로 일을 때려치우고 집에는 올 수 없었겠지만(만약 그럴 수 있는 상황이었더라면 바로 집에 왔을 것이다 난 아직 저년차니까...) 좀 덜 열심히 일했다. 커피도 한잔 마시러 일부러 멀리 있는 카페까지 땡땡이치고 오기도 하고 머리가 아닌 몸을 써야 하는 일들로 시간을 채운 후 바로 칼퇴한 후 집에 와서 멍청하게 시간을 보낸다. 옛날에는 이 시간들이 아깝고 뒤처지는 것 같아서 전전긍긍했을 테지만 지금은 나에게 무엇이 중요한지 좀 더 확실해졌다. 참지 않는 것이 참는 것보다 현명할 때가 있다. 모두 현명한 삶을 살기를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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