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일반화는 정신건강에 해롭습니다...
작년 12월 초에 1년 반가량 만난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2주간 시간을 가진 후 얼굴을 보고 우리는 연애에 마침표를 찍었다. 오빠의 태도는 일관되었다. 이 이별로 인해 내가 너무 슬프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만 반복했다. 진심인 것 같았다. 내가 카페에서 말하면서 울고 있으면 너 너무 우니까 우리 다른 얘기 하자라고 하면서 분위기를 환기시키려고 해 주었으니 말이다. 마지막에 정말 마지막에 헤어지면서 나는 더더욱 서럽게 울었고 오빠는 끝까지 내 등을 토닥여주며 우는 나를 달래주었다. 오빠를 보내주어야 할 때에 마지막으로 손을 잡았다. 오빠는 자기 손이 너무 차갑다면서 빼려고 했지만 나는 더 강하게 잡았다. 오빠의 눈도 나처럼 눈물이 고여 있었다. 횡단보도를 건너가는 뒷모습을 나는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마지막 모습을 눈에 한 순간이라도 더 담고 싶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오빤 끝까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시간을 갖자고 말한 건 오빠였다. 나와 있을 때 설렘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여전히 내가 소중하고 지켜주고 싶고 그렇지만, 연애를 지속할 만큼의 감정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오빠의 말은 사실 같았다. 얘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오빠는 사소하게 나를 챙겨주었다. 눈물 닦고 젖은 휴지를 내가 손에 쥐고 있으니까 손에서 휴지를 빼내어 새 휴지로 바꿔주었고, 마지막으로 밥을 먹을 때에도 규카츠 다 익은 것들을 내 접시 위에 올려주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생각해 봤다. 아마 서로가 너무 바빴던 것 때문이려나. 나는 대학원 일상 때문에 평일엔 거의 시간을 내지 못했고 오빠도 새로운 회사에 들어가서 인턴하고 교육받느라 서로 주말에 겨우 2-3시간 보는 게 전부였다. 평일에 서로 통화하는 시간은 점점 짧아졌다. 내 퇴근 시간을 고려하면 밤 10시가 넘어서야 겨우 통화할 수 있었고 10시 반이 넘어서 통화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오빠도 다음날 일찍 일어나서 출근을 해야 했기 때문에 우리의 전화 텐션은 점점 떨어졌었다. 그때 즈음에 나도 약간의 불안감은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익숙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항상 통화로 서로 보고 싶다고 말했고 주말에 얼굴 보면 또 너무 좋았기 때문에 우리가 일에 조금 여유가 생기면 금방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오빠는 그게 아니었나 보다. 아니라는 생각은 한순간에 찾아왔다고 했다. 미리 힘들다고 말해주면 더 노력할 수 있었을 거다라고 물어봤지만, 그럴 틈도 없이 이 관계에 대한 의문은 확신으로 바뀐 것 같았다. 서로 조금 여유가 있을 때에는 평일 저녁시간에 오빠가 나를 보러 학교로 찾아와 주기도 했었다. 내가 그때에도 힘들었냐 물어보니 아니라고 그때는 좋았다고 했다. 결국 서로 시간을 내지 못하고 신경 써주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진부하게 들릴 수 있지만 우린 서로 정말 잘 맞았다. 종교도 삶의 목표도 돈을 대하는 태도도 그리고 서로 웃는 포인트들도. 그래서 더 미안했다. 내가 조금 더 신경 써줄걸. 바쁘다고 힘들다고 전화 짧게 하지 말고 그래도 전화 좀 더 오래 할걸. 카톡을 찾아보니 사랑한다는 말을 작년 5월 이후로는 하지 않았다는 걸 발견했다. 그런 말들도 더 많이 해줄걸. 결국 헤어진 후에야 후회하는 게 정말 바보 같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들만 머릿속을 맴도는 것 같다. 처음으로 결혼까지 생각했던 상대였다. 내가 돈을 더 열심히 모을 수 있게 만들어준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처음으로 1000만 원 모았을 때에 오빠에게 결혼자금으로 쓸 거라며 자랑하기도 했었다.
마지막으로 헤어지기로 한 전날에 되게 늦게 잠에 들었다. 새벽까지 쉽사리 잠을 자려고 눈을 감기가 두려웠던 것 같다. 눈을 감고 뜨면 오전에 오빠랑 만나서 헤어져야 했으니까. 그 정도로 나는 이 이별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헤어진 직후에는 너무 힘든데 탓할 게 없어서 이 거지 같은 내 상황 탓을 할 수밖에 없었다. 대학원 온걸 처음으로 후회했었다. 내가 그냥 일반 직장이었다면 혹은 우리 랩실 퇴근 시간이 조금만 더 일렀더라면 아니 차라리 내가 학부생이었더라면... 우리는 더 자주 데이트할 수 있었을 것이고 서로의 힘든 점도 더 빨리 알아차렸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탓해봤자 상황은 변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쉽게 깨달을 수 있었다. 결국 내가 안일했던 탓도 있으니 자책은 짧게 끝내야 했다. 어느 정도 감정이 정리된 지금에서야 이 글을 완성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가 이별했던 원인이 내가 대학원생이라서도 아니고 오빠가 신입사원이라 바빠서도 아니고 그냥 거기까지인 인연이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빨리 받아들이는 것이 내가 이별을 빨리 받아들이는 방법이었다.
세상 모든 대학원생들의 연애를 응원한다. 누구보다도. 열렬히...
바쁘다는 핑계로 연락 뜸하게 하지 말자. 다들 실험하면서 중간에 시간 뜨는 거 안다. 측정 걸어놓고 기다리는 동안에 충분히 여유 있을 거라는 거 안다... 논문을 써야 한다거나 실험이 오래 걸릴 것 같으면 미리 남자친구/여자친구에게 말해주자. 그리고 주말에도 다들 출근하는 거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소소한 선물을 들고 각자의 연인 앞에 나타나자. 짧게 보더라도 제대로 된 데이트를 못하더라도 얼굴을 최대한 자주 봐야 한다. 정말 내 옆에 있는 연인이 소중하다면 시간이 상대적으로 적은 대학원생은 스스로 '을'이 될 수밖에 없다. 논문 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내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는 것이라 생각한다. 연애에도 최선을 다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