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고 보면 다 별거 아닌 것들이었다.
자잘 자잘한 일들로 인한 서운함 같은 거.
아이러니한 건 (남편 제외)인간관계에서 별다르게 서운함, 섭섭함을 잘 느끼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남한테 잘하려 하지만, 그에 대해 상대방이 보답을 해주거나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예 없는 것 때문도 있다.
그런데 그게 남편한테는 적용이 안 된다.
아무래도 당장 내 곁에서 나와 함께 생활하는 사람으로서 오는 막연한 기대감 때문 같다.
특히나 둘 다 재택근무로 일하는 환경 덕분에 더욱 매일 보는 사이지만,
그래도 "오늘 하루 어땠어?"라는 물음을 해줬으면 하는,
일에 지치거나 일상에서 오는 피로함 속에,
내가 먼저 하면 되는데
굳이 상대방이 해줬으면 하는데서 오는
'내 표정이나 기운 없음을 읽어주진 않을까-'라는 기대.
그런 기대가 생기면 서운함은 언제나 디폴트로 따라왔다.
우리는 신이 아니기에, 아무리 가까운 사이여도 서로의 마음과 생각을 완벽히 알 수 없었음에도 나는 가끔 그에게 정해진 대답과 반응을 원했기 때문이다.
- 남편은 자신이 원하는 걸 선물로 받길 원한다.
- 나는 상대방이 나를 많이 생각해 준 서프라이즈 선물을 좋아한다.
- 남편은 자신이 이미 시도해본 것 안에서만 생각하는 능력을 가졌다.
- 나는 남편이 힘이 날 때까지 최대한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본다.
- 남편은 이벤트에 약하다. 정확히 AI처럼 상대방이 지시를 해주면 그것대로 하는 건 가능하다.
- 나는 이벤트를 좋아하고 자주 했다. 물론 그래서 남편이 완벽히 원하는 건 아닐 때도 있었다.
- 남편은 때로 냉소적이다. 그래서 내가 가끔 다짐하는 “나 ~ 할 거야”라는 것에 응원보다는 웃음으로 마치 내가 달에 가서 토끼를 보고 오겠다는 말을 한 것과 같은 반응을 보인다.
- 나도 어떤 특정한 일에 대해선 냉소적이다. 그러나 누군가 나에게 털어놓는 꿈이나 목표에 대해서는 응원과 지지를 아낌없이 하는 편이다.
- 남편은 이성적이다. 그래서 모든 걸 논리로 이야기하려 한다.
- 나는 감성적이진 않는데 감정적이다. 보통 내 앞에 놓인 문제는 해결책을 원하는데, 왜 남편한테는 그보다 먼저 응원과 지지, 또는 공감을 원하는지 모르겠다.
연애를 할 때만 해도 기대감 0에서 시작하고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라는 인식 때문이었는지 남편이 나에게 해 주는 모든 것들이 다 너무 고마웠다.
내가 별달리 애교가 있거나 뭘 하는 것도 아닌데 항상 baozi(중국어로 ‘만두’라는 뜻)라고 부르며 ‘귀엽다’ ‘이쁘다’라는 말을 분에 넘치도록 해 주는 그를 보며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뿐만 아니라 그는 나에게 ‘맞춤형 남자친구’였다.
대학생 때 알바를 주 20시간씩 하며 최대학점을 듣는 매일매일, 나에게 연애를 할 마음의 여유나 시간이 아예 없었다.
그러나 전남자친구이자 현남편인 그는, 내가 도서관 클로징을 하는 새벽 1시까지 도서관 안에서 공부를 하며 나를 기다려주고 집에 데려다주었을 뿐 만 아니라, 일상 속에서 같이 과제하고 밥 먹는 걸로 자신의 시간을 맞춰주었다.
누군가에게 힘들어하거나 우울한 모습을 보이기를 극도로 싫어해, 때로는 더욱 다른 사람들에게 벽을 쳤던 20대 초반의 내가, 처음으로 그런 방어벽을 내리고 있는 그대로 편하게 있게 된 것도 지금의 남편 덕분이었다.
미국과 중국의 롱디였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중국에서 번듯하게 직장을 잘 다니고 있었지만, 미국에서 일하는 나와 다시 만나기 위해 뜻에도 없던 대학원 석사를 지원해 미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비자 문제로 남편이 부모님을 못 뵌 지 벌써 2년이 다 되었다.
20개월의 롱디 동안 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의아하게 바라봤었다. 특히 내가 남편한테 고마운 마음을 많이 표현할 때면 더 그러했다.
"그렇게까지 굳이 기다릴 필요 있어?"
"나도 누군가한테 도움을 받으면 고맙지만 그런 거랑 연애는 다르지 않나?"
뭐, 사람마다 생각하는 건 다르겠지만,
나는 남편을 존경하고 또 고마워하는 마음으로 그를 항상 바라봤고 함께 하고 싶어 했다.
그 시절, 사람을 진정으로 알려면 ‘1년은 지켜봐야 된다’라는 생각을 가졌던 내가, 3년이 지나도 단점을 찾기 어려웠던 친구는 남편이 처음이었다.
적고 보니 이렇게 또 고마운 것들을 한가득 써 놓고 있다.
서운하고 치졸한 마음에 그에게 모진 말을 많이 했다.
그런데도 곁에 있어주는 그가 참 고맙다.
얼굴을 안 보고 혼자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면 다시 '잘해 줘야지'라는 마음 한 가득인데 왜 다시 얼굴을 보면 스멀스멀 서운한 마음이 올라오는지.
남편과 결혼 생활을 하면서 나의 단점들, 내가 고쳐야 될 점들을 적나라하게 보게 된다.
너무나 감정적인 내 모습에 스스로가 실망스럽고 싫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남편이 싫어서가 아니라 이런 못난 내 모습을 보기 싫어서 '혼자 사는 게 더 나을 텐데'라는 생각이 불쑥불쑥 든다.
누군가와 함께 살아간다는 건,
어쩌면 먼저 나를 잘 챙기고 그 속에서 오는 넉넉함으로 상대방을 아끼고 위하는 게 아닌가 싶다.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 내 곁에 있는 사람을 의지하기보다는 나의 힘든 것들은 내가 잘 감당하고 더 넘어서, 그 사람의 힘듦까지 내가 덜어줄 수 있는 마음과 능력.
그런 능력을 키우며, 지금 내 곁에 있어주는 사람에게 제일로 잘해 주기를.
내 자아를 내려놓고 그 빈 공간에 상대방을 위하는 마음들로 채워주시기를 기도하며, 실천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