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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풀 Sep 24. 2024

가족들과 함께 4년 만에 다시 찾은 모교

약 3주 전, 부모님과 동생이 미국으로 놀러 왔다.



가족 모두가 함께 미국에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원래는 대학교 졸업식 때 미국에 모여서 축하하기로 했지만, 코로나로 인해 계획이 취소되었다.



이후, 엄마와 동생은 각각 내가 일하기 시작한 3년 전과 2년 전 한 번씩 방문했으나 아빠는 휴가를 쉽게 낼 수 없으셨다. 그러다가 올해, 드디어 회사 근속 25주년을 기념해 그동안 쌓아온 휴가를 한 번에 몰아 쓰고 미국에 오셨다.



드물게 찾아온 이 귀한 시간,

그동안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고자 이번에는 J와 함께 다섯이서 우리의 대학교 모교를 방문하게 되었다.




"우리"의 대학교.


J와 내가 처음 만난 곳이자,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곳.


다행히 우리가 사는 곳에서 차로 3시간이면 갈 수 있어, 엄마표 김밥을 싸고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게 되었다. 가는 길은 멀미로 고생이었지만 캠퍼스에 도착하자마자 펼쳐진, 나에게는 익숙하면서도 그리웠던 아름다운 강과 드넓은 하늘을 보며 가족 모두의 졸리고 피곤했던 눈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대학교에서 만남의 장소인 강가 옆 테라스에 얼른 자리를 잡았다. 테이블 위에 집에서 싸 온 김밥과 과일, 그리고 캔맥주를 놓고 늦은 점심을 먹기 시작했다. 바로 앞 강가에서 카약과 보트를 타며 늦여름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며 동생이 물어봤다.



“언니도 저런 거 탔었어?”

“아니, 나는 못 타봤지.”

“왜?”

“과제하고 아르바이트하느라 바빠서.”

“그런 것도 못 타보고 뭘 한 거야 ~ (장난)”

“그렇게 지내서 겨우 졸업했지”




동생과 대화를 나누며 다시 한번 어떤 후회도 안 남는 대학 생활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약 정도 못 탔으면 어때. 멀티가 안 되는 나라는 사람은 그렇게 해서라도 지금 이 자리에 다시 가족들이랑 온 것에 감사했다.





이후, 동생이 길고 긴 아이스크림 주문하는 줄에 서 있는 동안 나는 바로 옆 구내 카페에서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학생 할인으로 즐겨 마시던 아메리카노와 아이스 라테를 시켰다. 유제품이 유명한 곳이었기에 특유의 라테 맛이, 다시금 그때 그 시절들을 새록새록 떠올리게 했다. 커피와 함께 또 하나의 학교 자랑이라고 할 수 있는 아이스크림도 함께 곁들여 먹는데 동생의 졸린 눈도 뜨게 해 주는 마법의 아이스크림이었다.



카페인과 당 충전을 마친 후, 캠퍼스 건물 곳곳을 둘러보고 대학교 1학년 때 살았던 셰어하우스를 시작해 J와 나의 추억이 묻어있는 내가 일한 도서관, 교내 식당 건물들과 매일 출석 체크를 한 Computer science 학과 건물을 차례로 들렸다.




“여기가 내가 룸메 2명이랑 지내던 곳이야.”

“겨울 이른 아침에 버스가 안 다녀서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뒤로 걸어 다녔잖아, 바람이 너무 세서.”

“저기는 내가 말한 밤에 항상 클로징 했던 도서관!”

“맨날 여기서 과제하면서 보냈는데 창문이 없어서 엄청 답답했어”



항상 전화나 사진을 통해서만 얘기했던 공간들을 함께 걸으니 기분이 묘했다.  4년 전의 나는  오늘의 내가 가족들과 함께, 그것도 J와 더불어, 이곳을 다시 걸으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루하루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 졸업하고 일했던 시간들은 아쉬움이 너무 많이 남았는데 가족들과 함께 걷는 그 순간, 4년이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추억의 공간들은 그때 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지만, 그 공간을 거닐고 있는 나는 그동안 많은 것들이 바뀌었고 감사할 일들이 분에 넘치게 많았다.




"매일 무엇을 먹고 마실지 고민하지 말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라는 말씀.



대학교 생활 내내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하며, 일을 구하던 시간들 속에서 항상 마음에 새겼던 말씀. 캠퍼스를 다시 거닐며 그 말씀이 다시 떠올랐다.





가족들이 미국에 와 있는 동안 J와 내가 모든 여행 일정을 조율하고 대부분의 지출을 담당했다.



스스로를 책임지고 부모님을 짧은 기간 동안이나마 부양하는 상태가 된 것에 감사함에도, 나는 언제나 속에서 조바심이 났다. 누리는 것들이 많아질수록 마음속의 평안은 없어져만 가고 성격까지 급해지는 것만 같았다. 자꾸만 나의 못난 모습들이 보였다.



그래서 그 전의 "평온함"이 너무나 그리웠다. 언제나 고요히 흔들리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 그 마음을 간절히 회복하고 싶었다.



이날, 가족들과 함께 모교를 걸으며, 잔잔한 감동과 감사가 마음속에 스며들었다.


나를 대학교까지 보내주신 건 엄마와 아빠인데, 캠퍼스를 거닐며 나보다 더 어린아이처럼 해맑은 웃음으로 걸어 다닌 것도 가족들이었다. 마치 엄마와 아빠, 동생이 이 학교 졸업생인 것처럼, 캠퍼스 건물 곳곳을 지나치지 않고 그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 모습에 또 한 번 미안함과 고마움이 동시에 들었다. 알 수 없는 부채감도.







고마운 마음만 가지고

조금 더 넓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살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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