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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풀 Dec 16. 2023

무기력과 우울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가 시도한 것들

'시간이 약이다' 라는 말을 믿으시나요


어렸을 때부터 번아웃이 오기 직전까지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경향이 있었다. 머리가 안 좋으면 시간이라도 쏟아야지라는 마음으로 자기 계발서에서 나오는 '노오오오력'을 하겠다며, 정신적으로 지치는 것과는 상관없이 나를 돌보지 못했다. 그래서 때때로 부지불식간에 찾아오는 우울과 무기력함에 속절없이 무너지곤 했다. 그 n년간의 시간 동안 내 나름의 극복방법을 '살기 위해' 찾게 됐는데 다음과 같다.



© anthonytran, 출처 Unsplash


먼저 매우 바쁘게 살았다. 대학교 때는 주중에 알바 20시간, 최대 학점 듣기, 일주일에 한 번 약 3-4시간 진행되는 교회 모임 참석, 주일은 아침부터 오후 4시까지 풀로 교회 관련 예배 듣고 주일 선생님 하는 것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면 정신이 없다. 일단 강제적으로 몸을 움직여야 된다. 그러다 보면 내가 우울할 틈이 없다. 얼굴은 울상일 수 있다. 하지만 마음은 그곳에서 벗어난다.



© all_who_wander, 출처 Unsplash



그러나 앞서 말한 첫 번째 방법은 '완벽한 극복'의 단계는 아니다. 그저 순간을 벗어나는 일시적인 묘책일 뿐. 그래서 다시 혼자가 되면 이전의 멜랑꼴리 한 마음이 올라오는데, 그때는 말 그대로 한없이 누워있었다. 예전에는 침대에 식물인간마냥 누워있는게 시간 낭비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한없이 누워있어도 된다. 물론 그렇게 누워있으면 가끔 모든 게 다 뒤틀리고 잘못된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게 대체로 맞다.



무기력이 심할 때는, 말 그대로 앞이 보이지 않는 터널의 어둠 속에 있는 기분이었다. 내 머리 위로 보이는 천장이 내 전부 같고 그곳에서 다른 풍경을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이 없었다. 그런데 끝은 있다. 완전한 끝은 아니지만 지금 당장의 무기력함에는 끝이 있다. 죽지만 않는다면 끝은 있다. 그러니 그냥 그 속에 푹 절여 있어도 된다. 인생 전체에서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왜? 내가 죽지 않았으니까. 내가 죽지 않았으면 어떻게 해서든 방도는 결국 있다.



심지어 유언장까지 작성해 봤다.



작성하니까, 내가 어떤 삶을 원했는지 역설적이게도 그때 알았다. 별거 없다, 내가 원하는 삶은.



후회 없는 삶.

더욱 사랑하는 삶.

내 인생의 대부분이 환한 웃음으로 가득 찼던 삶.



그래서 더글로리에서 제일 좋아했던 캐릭터가 문동은을 도왔던 아줌마셨다. 그분의 성격이 너무 좋았다. 말도 안 되게 힘든 상황에서도 농담을 날리고 단단하며 당당한 성격이 내가 원하는 모습이었다.



자기 연민에 빠지고 싶지 않았다.
세상엔 나와는 비교도 안 되는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가 남의 힘듦을 함부로 판단할 수 없는 것은, 객관적인 어려움의 크기와 상관없이 개개인의 힘듦을 극복할 수 있는 역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객관적으로 힘듦의 정도가 5인 일이 어떤 사람에게는 마치 솜털 같은 1의 가벼움으로 다가올 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진흙탕에 빠진 10의 무거움처럼 다가올 수도 있다.



근데 1의 힘듦으로 느끼는 사람이 10의 힘듦으로 느끼는 사람에게 “뭐 그런 걸로 힘들어하냐?”라고 얘기할 자격이 있을까? 그 사람은 후자의 심정을 100% 이해할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남의 어려움을 판단하면 안 된다.



그러나 한편으로 10의 힘듦으로 느끼는 사람이 주의할 점은, 자기 연민에 빠지면 안 된다는 것이다. 자기 연민에서 벗어나 내가 힘듦 레벨 5인 일도 1로 느낄 수 있는 역치를 만들어야 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한 전제조건은 내가 삶에 대한 의지가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삶에 대한 의지가 있으면 뭐든 가능하다. 그렇기에 삶에 대한 의지가 없는 지금 이 순간, 그 감정에 처절하게 몸무림 쳐도 괜찮다는 것이다. 죽지만 않으면 된다. 계속 삶을 살아가면 된다. 그리고 그저 자그마한 것,

일단 양치질하기, 대충 씻기, 정리 정돈해 보기, 물 마시기, 그냥 멍 때리기.



만약 이 과정까지 왔다면 그다음은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가, 온 몸으로 햇빛을 맞아들이기.



여기까지도 충분하다. 일단 멍 때리면 무슨 생각이 들 거다. 그걸 노트에 아날로그로 적는 거다.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이 뭘지 고민하고 하나 적는 거다. 그리고 하는 거다.




그걸로 충분하다.


나는 이미 80% 무기력에서 벗어난 거다.


그걸로 충분하다.




메모장 한 구석에 있던 글을 꺼내왔는데 쓴 날짜를 보니 올해 4월 3일이다. 지금 보니 오글거리기만 한 메모장 내용. 그래도 이때 이런 생각도 했다는 걸 알게 된다.



"시간이 약이다"라는 말이 어느 정도 맞다. 무기력한 마음에서 벗어나면 이제는 현재 상태에 불만족스러워하게 되는 단계로 넘어가는데 그 단계에서 내가 원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틀 수 있게 된다.



사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항상 내 뜻대로 되는 게 없었는데 최근 약 2년간 어느 정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순탄하게 흘러가는 것 같아 그만큼 그동안의 인내심이 없어진 걸지도. 인내심을 기를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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