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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풀 Jan 10. 2024

미국 생활 7년 차, 해외생활을 오래 하며 바뀐 점

저도 이렇게 많이 달라질 줄은 몰랐는데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말,


 조금 더 어렸을 때
넓은 세상으로 나가세요.



10대 때는 이 말이 별로 와닿지 않았다. 사람 사는 게 거기서 거기 아닐까,라는 치기 어린 생각 때문에.




조금 더 큰 어른이(어린이 + 어른의 합성어)로, 해외생활 7년 차가 된 지금은 그 말의 의미를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외국에서 7년을 지내니 깨닫고 느끼는 점도 가속도가 붙어 나에게 10년만큼의 변화된 점들이 생겼다.





먼저 제일 많이 바뀐 건 성격.


10대 때 고등학교 1학년까지는 한국 수능을 준비했었다. 남은 2년은 미국 대학 입시를 준비했는데 당시만 해도 주변 사람들이 나를 묘사하는 단어는 ‘우울하다’, ‘표정이 어둡다’였고 종종 ‘목소리에 왜 이렇게 힘이 없냐’는 걱정 어린 조언도 함께 덧붙이셨다. 치열한 입시 경쟁 속에서 나는 (당시만 해도 너무 큰) SKY라는 원대한 목표 하나만을 바라봤기 때문에 그게 내 인생의 전부처럼 여겨졌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등수 하나에, 등급 하나에 목이 마르곤 했다.



그러나 미국 유학생활 1년 후 잠시 방학을 맞아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나를 고등학교 시절에만 봤던 분들은 내 변화된 모습에 놀라워했다. 엄청 밝아지고 생기가 넘쳐난다고. 그때 당시 어떻게 1년 만에 그런 극적인 변화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어림짐작하기로, 고등학교 때 하나님을 믿게 된 것이 가장 큰 이유였고, 그다음으로 나를 옭매이던 대학 입시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미국이라는 큰 땅에서 한국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미국인 특유의 여유로움과 쾌활함이 나한테도 전염되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최근에 만난 분들은 나를 보고 ‘밝다’, ‘단단해 보인다’라는 말부터 ‘오랫동안 함께 했으면 하는 사람’이라는 감사한 말도 건네주신다.



그 밖에도 외국 사람들이 잘하는 ‘스몰토크’가 나 또한 누구를 만나던 가능하게 됐다는 점도 큰 변화 중 하나다. 어렸을 때만 해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일절 말도 안 걸었다. 지금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귀여운 아기를 보면 몇 살이냐고 물어보고, 이웃 주민 분의 강아지를 보면서 이런저런 얘기도 한다. 아마 이것 또한 미국 특유의 개인주의 속에 있는 의외의 친절함이 나에게도 스며든 까닭이다. 예를 들어, 들어가거나 나가는 문 입구에서 뒤에 뒤따라오는 사람이 있으면 문을 붙잡아주는 매너라든가, 버스를 타고 내릴 때에 ‘Thank you’ 라며 버스 운전기사분에게 감사함을 표시하거나, 커피를 주문할 때 ‘How are you?(오늘 하루 어때?)’등의 기본 인사를 하는  문화들. 덕분에 한국에 오랜만에 가면 미국에서 하는 행동들을 종종 할 때가 있는데 아무도 그러는 사람이 없기에 괜히 혼자서 머쓱해지기도 한다.





그다음 두 번째는 입맛. 


해외 생활을 시작하기 전 내 입맛은 극양식파였다.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모차렐라 치즈가 잔뜩 뿌려진 오븐 스파게티. 온갖 종류의 치즈로 들어간 음식을 좋아했었다. 그러나 미국 생활 7년 차인 현재는? 극한식파다. 그래서 미국 여행을 오면 흔히들 많이 먹는 피자, 햄버거, 도넛 맛집을 이곳에 살아도 잘 안 가게 된다. 오히려 한식 잘하는 집 어디 없는지를 찾아보며, LA 여행을 갔을 땐 메밀 냉면과 순두부를 먹으며 감격스러운 순간을 맛봤다. “미국에서 이렇게 맛있는 한식을 먹을 수 있다니!!!”, 라며. 



한국에 2년 만에 갔을 때도 가족들과 오랜만에 함께 한 생일 축하에 내가 주문한 케이크는 인절미 케이크였다. 어렸을 땐 그토록 싫어했던 팥떡이 한국 가서 즐겨 먹는 간식거리 중 하나가 됐고 그 밖에도 온갖 종류의 구황작물 디저트류와 미국에서 먹기 어려운 음식들을 찾아 헤맸다. 쑥, 단호박, 인절미를 시작으로 대구탕, 알탕, 콩국수, 물회, 간장게장 등. 입맛이 참 구수하게 변했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게, 너무 쉽게 맛볼 수 있을 때는 소중함을 잘 모르다가 구하기 어려우니까 입맛도 반대로 변한다.


붕어빵은 사랑. 사진 보니 또 먹고 싶은 대구탕과 한국인들의 정, 밑반찬. 가끔은 밑반찬이 본식보다 더 맛있다



마지막으로 마음가짐.


10대의 시절, 한국에 있을 때는 나는 항상 시간에 쫓겨 살았다. 어리고, 학생 주제에 뭘 그렇게 시간에 쫓겨 살까 싶지만, 그때는 그랬다. 지금은 마음의 여유와 현재에 낙관적인 자세를 가지면서도, 그보다 더욱 단단해진 악바리 근성이 생겼다. 



마음의 여유는 아무래도 외국 영화에서 자주 볼 법한 풍경 덕분이다. 흙먼지가 옷에 달라붙어도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아랑곳하지 않으며 잔디밭에 누워 선탠을 하거나 책을 읽는 미국인들을 보노라면, ‘진정으로 순간을 즐기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악바리 근성은, 외국인의 신분으로 해외에서 살아남기 위해 저절로 길러진 능력이다. 너무 비싼 학비를 조금이라도 절약하기 위해 대학교를 3년 안에 조기졸업 하려 했고, 그 이후에도 취업을 해서 계속 미국에 남기 위해 200 군데가 넘는 곳에 서류 광탈을 당한 경험들 하며,  코로나로 인해 미국 회사 오퍼 3일 만에 취소 통보를 받기. 나의 실수로 인해 하마터면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지 못할 뻔한 일들 등등.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뭐 그것 가지고’ 싶을 수도 있겠지만, 부모님의 보살핌 속에서 온실 속의 화초처럼 살아온 10대였기에 외국생활에서의 홀로서기는 이것저것 몸으로 부딪히며 겪은 일들이 많았고 덕분에 잡초와 같은 꿋꿋한 근성을 길러줬다.






외국생활을 해도 각자 느끼는 점, 변화되는 점들은 아마 다 다를 것이다. 분명히 좋게 작용하는 것도 있고 안 좋게 작용하는 점들도 있다. 그래서 여전히 고군분투하고 있는 면도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나에게 좋게 변화된 것들에 주목하며 앞으로도 그저 '어제보다 발전한 나'의 모습으로 살아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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