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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풀 Jan 13. 2024

미국 뚜벅이가 렌트카를 빌리면 생기는 일

한여름 시애틀, 애증의 집카(Zipcar)

때는 2021년 무더운 여름의 시애틀.

재택으로 일을 시작한 지 약 4개월 정도 되었을 때쯤, 엄마가 나를 보러 미국으로 놀러 오셨다.



코로나가 막 터졌을 때 학부를 졸업했기에 부모님은 나의 유학생활 기간 동안 한 번도 미국에 오신 적이 없었다. 그래서 엄마가 미국 와서 지낸 지 이주쯤 됐을 때, 우리는 제대로 된 관광을 위해 시애틀에 있는 유명한 설산, ‘마운틴 레니어(Mountain Rainier)’를 가기로 계획했다. 당시만 해도 차가 없었던 터라 일 시작 전 급하게 딴, 아직 잉크도 마르지 않았을 따끈따끈한 운전면허증을 들고 집카를 빌리기로 했다.




*집카(zip car): 미국의 차 공유(Car sharing 카 세어링) 서비스다.  1) 차를 자주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2) 가끔 정해진 몇 시간만 필요하고 3) 차가 생김으로써 발생하는 각종 보험비, 주차비, 수리비 등을 아끼고 싶은 사람들에게 유용하다.






집카는 나에게 꽤 익숙한 서비스였다. 학부 때도 집카를 이용해, 대학교 동기들과 함께 다 같이 장도 보고 이곳저곳 놀러 다녔었다. 그때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젠 내가 운전대를 쥐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여행 가기 전날,
멀티를 못하는 나는
일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엄마에게 여행 계획을 맡겼다.



내가 한 거라곤 구글맵으로 왕복 시간이 대략 얼마나 걸릴지와 집카를 반나절 예약한 게 전부였다.  엄마가 인터넷을 통해 마운틴 레니에 지도를 다운로드하였고 우리는 ‘다음 날 몇 시에 일어날지’와 ‘도시락은 뭘 싸갈지’, 와 같은, 지금 생각해 보면 무계획에 가까운 계획을 세웠다. 아마 문제의 시발점은 여기에서부터였던 것 같다.





다음 날 새벽 6시. 우리는 분주히 도시락을 준비해서 집카를 픽업하기로 한 장소에 갔다. 기름이 반 밖에 채워져 있지 않아서 지나가는 길목에 주유소에 들러 기름도 빵빵하게 채웠다. 미국은 도로가 워낙 넓고 산으로 가는 길목은 고속도로처럼 차도 쌩쌩 다니지 않아, 그야말로 초짜 운전자에게는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였다. 고속도로를 타긴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길목길목이 한적한 시골마을을 지나가는 도로였기에 모든 게 순조로워 보였다.




약 1시간 반을 달렸을 즘, 저 멀리서도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의 설산을 보며 “우리가 곧 저기에 가는구나!”라는 순진무구한 설렘만이 마음속에 가득했다.



평화롭던 여행길이 삐그덕 대기 시작한 건, 마운틴 레니어를 올라가는 길목이었다.


미국 산은 한국 산과 달리 엄청 크기에 산 정상에서 절반까지도 보통 차로 올라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나는 토종 한국인, 한국 산에만 익숙했다. 그래서 미국 산에서는 인터넷이 안 터질 줄 몰랐다.



산의 중반 정도까지 올라가니 구글맵이 방향 설정을 헤매다가 곧바로 오프라인 모드에 돌입했다. 다행히 가는 길이 한 방향으로만 되어있었기에 우리는 앞의 차를 뒤따라 갔다. 중간중간 차에서 내려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보다 먼저 입구에 도착해서 더 위로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컸다.



약 2시간 반의 운전 끝에 입구에 도착해서 차 한 대당 $30 하는 입장료를 끊었다. 입구로부터 안으로 5분 정도 들어가 많은 사람들이 차를 주차한 길목 옆에 우리도 차를 댔다. 짐을 다 내리고 시동을 끈 다음 밖에 나와 보니 주차가 약간 삐뚤 하게 되어있었다. 그래서 다시 주차를 하려 시동을 켜는데… 시동이 안 켜진다.



뭐가 문제지 싶어 차에서 내려 문을 닫고 차 이곳저곳을 확인하다가 다시 차에 올라타려 하는데, 이번에는 왜인지 차 문이 안 열린다. 엄마랑 나랑 둘 다 당황하면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총 동원해 봤다.




1) (원래는 앱으로 차를 열고 잠그는데) 가지고 있던 집카 카드로 차 앞쪽 윗부분에 대어 본다

—> 카드를 댈 때마다 소리는 나는데 문이 안 열린다


2)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 그분들도 우리가 한 방법을 똑같이 시도해 봤지만 별다른 소용이 없었다


3) 지나가는 미국인들이 범퍼도 열어봐 주면서 차 내부의 문제인지도 봐줬다

—> 마찬가지로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없었다


4) 집카 서비스에 전화를 해보려 했다

—> 인터넷이랑 통신 자체가 안 돼서 전화 연결이 안 됐다




집카를 예약한 시간이 정해져 있었기에 (집카는 차를 빌린 곳에 다시 반납해야 된다. 그리고 late fee가 $50이기에 시간 엄수가 필수다), 마지막 대안책으로 표를 끊었던 입구까지 걸어가서 매표소 직원분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랬더니 직원분이 무심하게 건네는 말,


집카는 인터넷 안 터지는데서 시동 안 걸려



그러면서 견인차(tow truc)로 집카를 산 밑 인터넷 터지는 곳까지 끌고 가야 된다고. 다행히 입구에서는 전화 연결이 돼서 그분이 견인차 서비스를 하는 데가 있는지 물어봐줬다(‘tow truck’이 뭐 하는 건지도 이때 알았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간 날이 주말에다가 워싱턴 주에 전례 없는 폭염주의보(heat wave)가 있던 날이었다. 미국은 한국과 달리 주말에 쉬는 곳이 많다. 그래서 견인차 서비스를 주말에도 하는 곳이 있는지 전혀 확신할 수도 없고 산 정상까지 올라오는데도 거리가 꽤 되기에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었다는 것.



덕분에 우리 모녀는 입구 근처에서 아무 데도 못 가고 마치 견우가 직녀를 기다리듯, 그저 하염없이 견인차가 오기를 기다렸다. 1시간 간격으로 매표소 직원 분에게도 물어보고 입구에 서성이면서 트럭 비슷하게 생긴 거가 들어오면 달려가서 우리 데리러 온 건지 확인하기의 반복이었다.



그 사이 앞에서 잠깐 차를 봐줬던 분들은 이미 산 정상까지 올라갔다 내려오셨다. 그분들은 차 근처에서 서성이며 기다리는 우리를 보고 '아직도 그러냐', '우리가 다 안타깝다', '혹시 물은 충분하게 있냐' 등등을 친절하게 물어봐줬는데, 도저히 뭐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런 따스한 말들이 너무 고마웠었다.



그렇게 한 4시간 정도 흘렀을 때,
'오늘 안에는 오려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드디어 견인차가 왔다.



산을 올라올 때만 하더라도 바로 옆이 울타리도 안 쳐진 낭떠러지였다. 그래서 트럭 앞부분에 타고 싶었는데 운전자 분이 성인 3명이 타기에는 앞자리 공간이 부족하단다. 그래서 엄마랑 나는 어쩔 수 없이 혼다 안에 들어가서 보조 손잡이를 붙잡고 산 아래로 내려갔다.


 



당장 바로 옆이 보기만 해도 아찔한 낭떠러지 절벽이었기에 안전대도 없는 롯데월드 아틀란티스를 타는 것보다 더 스릴만점의 시간을 보내면서 내려갔다. 진짜 여기에서 무사히 내려가면 소원이 없겠다,라는 마음으로 심장이 쫄깃쫄깃했었다.



그렇게 한 1시간 정도 내려갔나? 점점 포장도로가 펼쳐지면서 인터넷 신호가 하나씩 터지기 시작하고, 다행히도 집카가 다시 시동이 걸렸다. 오늘 하루 우리의 목숨을 구해주신 트럭 운전하신 분에게 가격을 물어보니, 조용히 서비스 견적서를 건네신다.



$400 (약 52만원)... 그나마 처음에는 $500이라고 하신 거 사정사정했더니 깎아주신 거다.


일단 산 아래까지 무사히 아무 탈 없이 내려오고, 집카 시동이 걸린 거에 감사하면서 알겠다고 말씀드리고 당장 급한 불부터 꺼야 됐다. 바로 예약 시간. 초보 운전자가 운전을 하면서 집카 직원과 실시간으로 예약시간을 늘리는데, 그 순간만큼은 미션임파서블의 톰 크루즈가 된 것 같았다. 다행히 우리 뒤에 예약한 사람이 없어서 예약시간을 2시간 더 늘리고 겨우 겨우 집에 오는 데 성공했다.






이후 집에서 휴식을 취한 뒤, 도대체 어떻게 이런 것도 모르고 산에 갔나 싶어 찾아봤더니 나 같은 경우가 꽤 있었다.


https://www.theatlantic.com/ideas/archive/2019/09/zipcar-into-the-wilderness/597217/



하지만 위에 기사처럼 집카에서 이런 경우에 대해 제대로 명시를 하지 않았다는 점 이 문제다.




집카에 전화를 해서 보상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물어보니, 이런 경우는 '완전히 우리들의 책임은 아니기에 (보상이) 어려울 것 같다'라는 답변을 줬는데 그래도 아래와 같이 메일이 왔다.



즉, 일단 영수증을 보내보라고. 그래서 얼른 답변을 보냈다.




메일을 보낸 시점 한 달이 지나도 읽지 않아서, 다시 집카에 문의를 해봤지만 '저런 일을 담당하는 부서는 따로 있고 (자기들도) 그 부서에 따로 연락을 할 수가 없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저 몇 주 더 기다리라는 얘기만 해줄 뿐. 솔직히 다시 연락이 올까 의문이 들었는데 2달 뒤, 집카로부터 100% 보상은 어렵고 50% 해주겠다고 해서 알겠다는 답장을 보냈다.




이 이후, 당연한 얘기지만 집카를 단 한 번도 다시 이용한 적이 없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처럼 산을 갈 경우 집카 같은 카 쉐어링 서비스가 아니라 헤르쯔 Hertz 같은 전문 렌트가 업체를 이용해야 됐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대도시를 여행하지 않는 이상 인터넷이 안 터질 것을 염두에 두고 미리 구글맵도 다운을 받아뒀어야 했었다. 나의 무지가 불러올 뻔한 대참사였다. 지금 이렇게 자리에 앉아 노트북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으니, 그저 감사할 뿐.


뭘 하던, 어디를 가던, 준비는 철저하게 해야지 안 그러면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 수도 있다는 걸 깨닫게 해준 소중한 경험이었다.




혹시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인터넷 안 터지는 곳을 갈 경우, 절대로 절대로 집카 렌트하지 마시길!

1) 단 시간의 여행 2) 간단하게 장보기, 주변 쇼핑 등의 목적으로 집카를 이용한다면 괜찮지만 정말 나와 같은 경우는 차라리 헤르츠 등 다른 렌트 업체를 이용하는 걸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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