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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풀 Jan 19. 2024

미국 택배 잘못된 배송, 누구 책임일까요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면 좋으련만

미국의 느린 택배 배송 시스템은 미국에 살면 누구나 다 겪는 통과의례 같은 일이다. 땅덩이가 넓다 보니 이쪽 주(state)에서 저쪽 주(state)까지 배송되는 일은 가히 한국에서 옆 나라 일본, 필리핀을 가는 거리와 맞먹는다. 일주일 안에 배송되면 빠른 편이니 오죽하면 3일 안에 배송되는 Amazon Prime Delivery가 혁신적인 일이었을까.


© purzlbaum, 출처 Unsplash



약 1달 전, 한국에서 부모님이 곧 미국으로 오시는 지인을 통해 택배를 보내셨다. 그동안 내가 한국에서 꼭 사고 싶었던 플래너와 책이 있었는데 마침 비슷한 시기에 미국으로 오는 부모님의 지인분 덕분에 내가 고대하던 생일 선물을 전달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약 2주 전, 부모님 지인분이 fedex로 택배를 보내 3-4일 안으로 도착할 거라는 말씀을 전해 주셨다. 그러나 일주일이 지났음에도 택배가 배달됐다는 소식이 없었다. 그때만 해도 ‘워낙 배송 속도가 느리니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일주일이 더 지났으나 여전히 깜깜무소식이었고, 이제는 안 되겠다 싶어 다시 지인분께 연락드렸다. 그런데 웬걸, 이미 Fedex tracking에는 일주일 전에 도착해 사인까지 받았다는 내용이 있었다.



사인한 이름을 아파트 매내지먼트에 물어보니 우리 아파트에는 그런 사람이 없다고 한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길 건너 옆 아파트로 가라고 조언해 주셨다. 가끔 아파트 주소를 헷갈려해, 이 쪽 아파트와 저쪽 아파트에서 물건을 잘못 놓고 가는 일이 있다며.



얼른 길 건너 옆 아파트 매내지먼트에 가 물어봤다.
“Is there a person name started with 000  for taking care of packages~?(혹시 패키지 관리하는 사람 이름 중에 000 라고 시작하는 사람 있나요?)”


그랬더니 돌아오는 대답, “Oh yes”.
 


 ‘와, 십 년 감수했다. 택배 잃어버리는 줄 알았는데’ 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 쉬니, 오늘은 주말이고 내일은 쉬는 날이니 이틀 뒤에 패키지를 찾으러 오라고 얘기해 주셨다.



이틀 뒤, 가벼운 발걸음으로 옆 아파트의 패키지 관리실로 갔다. 아파트 호수가 000으로 시작하는데 혹시 내 이름으로 온 패키지 있냐고.



그런데,
없다.
아무리 찾아도
없다.


상황을 자초지종 설명 드렸다.


그랬더니 돌아오는 대답:
 “Anyway there is nothing here. You are not our resident so we don’t know where your package goes.”
 (하여튼 여기엔 없어. 너는 우리 아파트 주민도 아니니 우리가 너 패키지가 어디에 갔는지는 알 수 없어”)


아니, 뭐 이런 어처구니없는 말이.

참을 인을 한 번 그으며 물어봤다.


“I came here because the person name started with 000 signed for my package. If she signed it there, then I guess she is the person who needed to check the apartment address and take care of it?”
 (나는 여기에 000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하는 사람이 내 패키지에 사인했다고 해서 왔어. 만약 그분이 거기에 사인을 했으면, 그분이 사인할 때 아파트 주소를 체크하고 패키지를 잘 보관해야 하는 거 아니야?”)


 
내 물음에 이전에 나에게 어디 갔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는 사람 말이, 자기가 그 사인을 한 사람이랜다. 그러나 자기는 여기에서 그냥 오는 패키지들을 보관할 뿐, 하루에도 수십 개의 패키지가 오는데 그 모든 걸 기억할 수 없다고. 나는 특히 여기 주민도 아니어서 그 패키지의 tracking number도 여기 데이터에 없기에 자기가 할 수 있는 건 없다고 못을 박는다.



속이 타 들어가는 내 마음과는 다르게 그분의 표정은 너무나 태연하다. 적어도 여기 없어서 미안하다는 기색이라도 비쳐주면 좋겠는데, 내가 괜한 걸 바라는 걸까.




그 뒤에도 2-3번 더 말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AI 로봇 마냥 똑같았다.


“우리 책임이 아니다. 여기엔 하루에 수십 개의 패키지가 온다. 그걸 우리가 다 확인할 수는 없다. 만약 패키지가 잘못 와서 다른 사람이 다시 그 물건을 픽업해 가려하면, 우리는 그저 저기에 있으니 찾아보라고 말해줄 뿐이다.”라는 도돌이표 대답.



아마 상황을 여기까지 들으면 이런 의문이 들 것이다.  “만약 아파트 주민이 와서 자기 패키지를 찾으러 왔다고 하면 그땐 어떻게 가져가느냐?’라고. ‘누가 가져갔는지, 사인 같은 건 안 하느냐.’라고.



네. 맞아요.

그런 사인이 아쉽게도 없습니다.



미국에서는 주택에 살면 단순하게 문 앞에 놓고 가는 경우가 태반이고 몇 호에서 누가 가져갔는지 신원 확인은 고사하고 기본적인 사인 같은 것도 없다. 물론 아파트마다 조금씩 사정이 다를 수 있지만 적어도 이 쪽 아파트에서는 만약 내가 거짓말로 000호에 살며 패키지를 찾으러 왔다고 하면 아무 의심 없이 가져갈 수 있다는 뜻이다.




머리가 멍해져 내가 여기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 싶다가, 이 분들이랑은 더 이상 대화가 안 되겠다 싶어 다시 아파트 매내지먼트를 찾아갔다. 똑같은 얘기를 또 한 번 더 했다. 이전 얘기에서 더 추가된 거라고는 이름이 000으로 시작하는 사람이 내 패키지에 사인을 했음에도 자기는 책임이 없다고 말했다는 내용.


사실 아파트 매내지먼트랑 얘기를 시작할 때도 별다른 걸 기대하진 않았지만, 역시나는 역시나였다. 자기네는 책임이 없단다. Fedex 배달원이 잘못 배달한 게 문제라고. 덧붙여하는 말이 그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고, 그런 경우 fedex에 전화를 해서 잘못 배송됐다고 컴플레인을 해야 된단다.



물론 나라고 fedex에 전화를 안 한 건 아니었다. Fedex에서는 자기네는 사인한 사람이 있어서 거기에 놓고 갔고 그 사인한 사람이랑 얘기를 해 보라고.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그 모습에 화가 났다. 중간에서 나는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럼 이런 비슷한 상황이 자주 반복 되었다면, 그래서 배송이 계속 잘못 됐다면, 애초에 사인을 안 하면 그런 일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다음은 이웃 아파트 매내지먼트와의 대화 내용.




나: “So you are saying that there are quite a few similar cases happened"
(그러니까 여기에서 이런 비슷한 일이 꽤 있었다는 거잖아. 그럴 때마다 fedex에 잘못한 거라고?)


이웃 아파트 매내지먼트:
 “I didn’t say, there’s ‘quite a few’. Don’t put words into my mouth"
(나는 ‘꽤 있었다”라고 말한 적 없어. 내가 하지도 않은 말 지어내지 마)


나: “ok, you are saying that it happened at least once , right?”

(그럼 여기에서 적어도 이런 일이 한 번은 있었다는 거잖아 그렇지?)


이웃 아파트 매내지먼트:

“I didn’t say it happened at least once. I just said that i’v seen that case”

(나는 여기에 이런 일이 적어도 한 번 있다고 얘기한 적 없어. 그런 일이 있었다고 했지.)




이건 마치 법정에서 피고인과 변호사의 싸움을 대리 경험하는 기분이다. 누가 피고인이고 누가 변호인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얘기다. 한 번의 희망을 가지고 다시 물어봤다(라고 쓰고 ‘따졌다’라고 읽는다).


"그럼 이런 일을 몇 번 정도 봤냐"



역시 돌아오는 대답은, “내가 여기에서 수십 년을 일했는데 그걸 어떻게 다 일일이 세고 기억하냐”였다.




이쯤 되면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다 해 본 거다. 그 자리에서 fedex에 물어보려고 전화했지만 상담사랑은 연결이 안 되고 계속 옵션 0,1,2 로만 떠서 결국엔 일단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고 나서도 한동안 화가 잘 가라앉지 않았다.


부모님이 한국에서 보낸 택배는 다이어리 외에도 생일을 축하한다며 이것저것 넣어준 한국 제품들과 생일 편지가 들어있었다. 속이 상했던 건, 편지가 분실이 됐다는 거다. 그래서 적어도 매내지먼트나 패키지를 관리하는 사람들이 그 안에 뭐가 들었는지라도 한 번 물어봐주기를, 이런 일이 생겨서 미안할 따름이라는 말 한 번만을 건네주기를 바랐다.



그런데 이런 적반하장의 태도라니.



그러나 한 편으로는 이걸 이렇게까지 얼굴 붉힐 일이었나, 괜히 스스로 질문해본다.


사실 이제 와서 누구 책임일지 잘잘못을 따지고 싶지도 않다. Fedex에 전화를 다시 해 볼 수는 있지만, 과연 실종된 패키지를 이미 배송된 지 일주일도 더 넘은 시점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다.



그냥 이웃 주민이고 좋게 해결할 수 없었나,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 사람들은 나와 연관된 사람도 아니니 당연히 내 일에 별다른 관심을 기울일 필요도 없을 테고, 내가 화를 낸들 상황이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괜히 그놈의 자격지심이 문제다.


대학교 때 한 번, 내가 살기로 계약한 한 방이 기존에 살던 미국인 룸메로 인해 강제 바꿔치기 당한 적이 있다. 전날까지도 내 방이라고 손을 들어준 아파트 매내지먼트가 다음 날 말을 달리했다. 이유를 물으니 그건 미국인 룸메의 프라이버시라 얘기해 줄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나 이윽고 문을 들어서자마자, 그 미국인 룸메가 괜히 찔렸는지 물어보지 않았는데도 그 ‘프라이버시’라는 내용을 술술 다 얘기했다. 자기는 seasonal depression(계절적 우울증)이 있어서 창문이 없는 방에서 지낼 수 없으며, 그래서 자기 부모님이 어제 매내지먼트랑 얘기를 해서 방을 ‘합법적’으로 바꿨다고.






이번에 겪은 배송일과 학부 때 겪은 일은 전혀 관련이 없다. 그저 이전에 그런 일을 겪으면서 이후에 내 입장에서 이해가 안 가는 상황이 되면 ‘외국인이라서 더 이렇게 대우하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어 발끈하게 된다. 괜스레 ‘내가 영어를 조금 더 잘했으면-’, ‘내가 백인이었다면-’ 이렇게 무관심하고 무책임한 발언은 안 하지 않을까, 조금 더 찾아보려 노력하진 않을까, 하고.



그래도 할 말은 다 해서 속은 시원하다.

단지 다음부터는 이런 일에도 화를 내지 않고 조금은 더 여유롭고 우아하게(?) 대처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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