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4년 차 개발자가 되어가는 직장인의 단상
약 한 달 뒤면, 개발자로 일한 지 꽉 찬 3년이 된다.
흔히들 직장인은 3년, 5년 차에 퇴사 충동의 고비가 온다고 하던가. 그 말이 남 얘기가 아니게 되어버렸다.
최근 일을 그만둔다고 했던 매니저와 1:1 미팅을 하게 됐다. 그 미팅 이후, 나름 애정을 가득 안고 일했던 팀과 회사에 대한 마음이 살짝 식게 됐다. 그리고 이제야 ‘가족 같은’ 회사는 없다는 것도 무슨 의미인지 알게 됐다.
매니저와의 1:1 미팅은 지난주 어느 날, 미팅 2시간 전 갑자기 부지불식간에 잡혔다. 작년 연말, 나의 승진 관련 다큐먼트를 매니저의 빈자리를 일시적으로 메꿀 윗 단계 매니저한테 넘겼다는 슬랙 메시지와 함께 올 초에 잠시라도 얘기를 나누자는 문자 이후, 갑작스럽게 이메일로 잡힌 스케줄이었다. 아픈 가족을 돌보는 와중에도 나를 생각하고 다큐먼트를 넘겼다는 것에 고마워서 갑작스러운 1:1 미팅이 오히려 살짝 기대가 됐다.
그러나 사실 기대를 안 하는 편이 나았었다. 잠정적으로 일을 그만두겠다던 매니저는, 가족을 돌보는 기간 동안 좋은 기회의 오퍼가 왔다고 한다. 회사 안의 다른 부서에서의 오퍼였는데, 아무래도 좋은 기회를 놓칠 수도 없고 그동안 아픈 가족을 돌볼 분도 구하게 되면서 그 기회를 잡기로 결정을 내렸다고. 2주 뒤에 복귀를 할 예정인데 다른 팀 매니저로 가게 됐다는 뜻밖의 소식이었다.
매니저의 아픈 가족도 건강이 괜찮아졌고, 매니저에게도 좋은 기회가 왔으니 그 길을 기뻐하고 축복하면 참 좋을 텐데. 그 뒤에 매니저가 덧붙인 말이, 나로 하여금 참 못난 마음을 가지게 만들었다.
“I still think you and others as my extended children.(나는 여전히 너랑 다른 팀원들을 나의 또 다른 아이들이라고 생각한다.)”
Extended children,
Extended family
매니저가 팀에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우리에게 자주 한 말이었다. 모두가 다 잘 됐으면 좋겠고, 나도 너희의 성장을 돕겠노라고.
그때 당시에는 저 말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채찍과 당근을 주는 매니저의 압력 속에서 더 열심히 성과를 내려 노력했었다. 이런 매니저 옆에서 나도 뭐라도 더 하나 배우고, 더 성장해야지,라고 스스로 다독이며.
작년에 승진이 한 번 좌절된 이후, 매니저는 나에게 “이번에는 승진이 미뤄졌으니 다음번에 그다음 레벨은 더 빠르게 될 것이다”라는 위로 아닌 위로를 전했다. 그러나 이제는 앞으로의 승진마저도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한 채, 현재 우리 팀 매니저 자리를 공석으로 비우고 다른 팀 매니저로 가게 돼 버렸다.
차라리 빈자리라도 메꿔주지. 그건 또 다른 매니저가 해야 될 일이었을까.
그래도 마지막일지도 모를 1:1 미팅을 좋게 마무리 지었다. 가족의 건강이 조금은 나아져서 다행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얘기하자는 빈 말이 좋게 오고 가며, 줌 미팅 종료 버튼을 눌렀다. 검은 화면 속에 비치는 내 모습을 보니 갑자기 속이 답답해졌다.
이건 뭐지, 지금 내가 뭘 놓치고 있는 거지?
한 동안 머릿속이 복잡하고 답답해져 한숨이 푹푹 내 쉬어졌다. 당장 뭘 해야 될 것 같은데 뭘 해야 될지 몰라 괜히 읽고 있던 ‘clean code’라는 책을 집어 들었다. 이후, 어지러운 마음을 러닝으로 해소하며 간단하게 현재 상태에서 느낀 것들을 정리해 봤다.
먼저, 회사는 야생이었다. 겉으로는 챙겨주는 것 같지만, 결국 다 자기 이익을 위해 뒤도 안 돌아보고 각자 갈 길을 갈 수 있는 곳이 회사였다. 그것에 기분 나빠할 필요도, 실망할 필요도 없다. 그것이 회사생활이기에. 회사에서 각자 목표하는 바가 다르겠지만 결국 개인의 이익을 위해 모인 곳이 회사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내가 이후 매니저와 비슷한 입장에 처하게 된다면, 나는 이렇게는 행동하지 않기를. 이 날을 기억하기를. 팀이 공중에 붕 떠 있는 상태에서 좋은 기회가 왔다고 남은 것들을 매듭짓지도 않고 가버리는 불상사는 저지르지 말아야지. 최대한 책임감 있게 남은 팀원들을 돌 볼 수 있는 리더가 되기를 바라본다. 물론, 그분 입장에서는 아마 최대한 책임을 지고 가려는 행동이었을 거다. 그저 내 눈에 만족을 못한 것일 뿐.
다음으로 또 한 번 절실히 느낀 건, 언제나 이직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춰야 된다는 것. 그래야 답답하고 억울한 일이 있어도 빨리 훌훌 털어버릴 수 있다. 내가 어느 곳에서든 스카우트를 받을 수 있는 실력을 갖춘다면 지금 매니저가 떠나는 것에 아쉬워할 필요가 없겠지. 나도 나의 길을 찾아가면 되니까. 오히려 이번 1:1 미팅은, 더 정신을 차리게 해 준 계기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결국 일이 전부가 되면 안 되는 것이었다. 재택으로 일하면서 일과 삶의 경계가 없었었다. 회사에 애정을 가지고 일을 했기에, 내가 일하고 있는 곳에서 더욱 인정받고 능력을 키우기를 바랐다.
분명 일을 통해 자아실현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여전히 그런 분을 동경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에 매니저와의 미팅을 통해서 느낀 게 있다면, 나는 일과 삶을 분리시키는 연습을 해야 되는 사람이었다. 뜻한 바 대로 되지 않을 때, 내가 일에 쏟아부은 마음이 역으로 나를 갉아먹을 수 있다는 걸 몰랐었다.
결국 어느 상태에 있든 고민은 있는 법이다.
인생의 어느 순간 시기마다, 나이에, 또는 직급에서 오는 또 다른 고민이 생기기 마련이다. 너무 많은 고민은 안 좋을 수 있지만 적당한 고민은 나를 발전시킬 수 있다. 그러니 고민하는 것에 가벼운 마음을 가지고 해결책을 찾고 내가 할 수 있는 거를 해야지.
심각할 필요도, 너무 가벼울 필요도 없는 모든 일들.
그러니 소리 내서 웃자.
웃으면서 기분 좋게 그날의 고민은 그날 털어버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