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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풀 Feb 11. 2024

미국에서의 설날, 어김없이 찾아오는 명절 증후군

그래도 떡만둣국은 잘해 먹었습니다

미국에서 7년째 맞이하고 있는 설날.

해마다 이 맘 때쯤이면 마음은 한국에 가 있다.



어젯밤이 아시아권 국가에는 이미 설 명절이었기에 J는 나보다 먼저 가족들에게 새해 인사를 전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J와 같이 새해 복 많이 받고 건강하시라는 인사를 전하는 동영상을 찍었다. 이후에도 J는 가족들에게 영상통화를 걸고 내가 카메라를 들도록 시켜서, 그 자리에서 핸드폰 카메라를 통해 중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절을 8번 하는 웃기면서도 흐뭇한 장면을 연출하게 만들었다.



J의 친척분들 또한 J에게 위챗을 통해 세뱃돈(red pocket)을 전해줬는데, J 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세뱃돈(red pocket)을 보내셨다. 그렇게 보내신 분들이 내가 기억하기로 적어도 10분은 되었던 것 같다. J의 여러 삼촌들 중 한 분은 한국말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말까지 녹음하여 답장하셨다. 아직 얼굴을 제대로 본 적도, 결혼식도 제대로 올리지 않았는데도 나를 신경 써주는 마음들이 너무 신기하고 감사했다.



J의 가족들을 볼 때면 세상에 이런 가족도 존재한다는 걸 새삼스럽게 알게 된다. '가까운 이웃이 먼 친척보다 낫다'라는 속담에 예외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J와 함께 새해 인사를 드리고, 나도 가족들에게 새해 인사를 전하기 위해 먼저 아빠께 보이스톡을 했다. 그러나 아빠가 전화를 받지 않으셔서 엄마께 다시 전화를 드렸다.


그렇게 시작된 통화가 어쩌다 보니 장장 4시간 동안 지속됐다. 친구랑 통화해도 길어야 2시간이었는데 엄마와 이 정도로 길게 얘기할 줄이야. 대화의 내용은 역시 과거부터 최근까지 있었던 일들. 명절 때면 어김없이 빠지지 않고 나오는 대화 주제들. 이전에 J의 가족들을 통해 더 극적으로 대비되는 그런 여러 지난날들과 현재의 모습들.



비교적 어린 나이부터 그런 내용들을 들으며 자라왔기에, 정확한 내용들을 속속히 알지는 못하더라도 그 설움에 십 분은 공감할 수 있다. 그중에는 나도 직접 겪은 것들이 있어서. 그러나 때로는 공감하기 어려운 것들도 있어서 계속 엄마께 물어보다 보니 통화가 길어졌다.



예를 들면, 실망이나 속상함.



나에게 있어 그런 감정이 드는 사람들은 내가 어느 정도 애정을 가지는 사람들이다. 나와 어떤 교류도 없고 관심이 안 가는 분들은, 그분들이 무슨 행동을 해도 이렇다 할 특별한 감정도 없다.



물론 생판 남보다 더 못한 심한 말들을 툭툭 내뱉는 어른들을 마주했을 때는 분통이 터지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서는, 그러려니 하게 됐다. 내가 오만한 걸 수도 있지만, '저분의 인격은 저 정도이니- '라고 못 박았다. 그렇게 보게 되니 이후에 가족들 간에 어떤 치사하고 유치한 행동들을 보고 전해 듣더라도 그저 웃기게만 보였다. TV에 나오는 내용들보다는 덜 극적이지만 그런 비슷한 류의 일들이 바로 옆에서 일어날 때도, 그냥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명절'.


명절이라는 단어에는 참 여러 의미와 감정들이 내포되어 있다. 사람과 사람이 만들어가는 역사로 인해, 누군가한테는 수정구슬처럼 맑디 맑은 웃음바다와 같은 감정들이 몽글몽글 드는 반면, 누군가에게는 알 수 없는 불안함과, 그저 서러움이라는 말로도 표현이 안 되는 묵직한 감정들을 그 특정한 시기에 샘솟게 만든다.



가족이라는 것은 무엇인지.

어떻게 한 사람 한 사람의 일생에 그렇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건지.

왜 굳이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것인지.

인정욕구, 애정 욕구 같은 류의 욕구들이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통해 더 극대화되기도 한다.



웃긴 건, 그런 모든 분들이 교회를 다닌다. 나도 교회를 다니지만 때로 이런 일들을 볼 때면 '믿는다는 건 정말 뭘까'라는 의문이 든다. 성경에서 야곱과 에서가 떠오르기도 한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다 그 사람이 그 사람인 거겠지,라고 체념 어린 답을 혼자 내놓기도 한다.



그래서 해마다 명절 때만 되면 나는 멀리 떨어져 있는 엄마에게 마음이 더욱 간다. 나도 모르게 그때만 되면 괜히 불안해져서 엄마가 잘 지내고 있는지 더 확인하게 된다. 그래서 어제도 엄마의 얼굴에 웃음이 번질 때까지, 엄마가 '근데 엄마는 참 감사한 게 많은 사람이야. 엄마도 알아, 그래서 더 상기시키고 잊지 말아야지' 라며 나를 안심시키는 말을 하기 전까지 전화를 붙든 손을 놓지 못한 것 같다.



결국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다 이번 생을 한 번 살아가기에. 얼마큼 살았든지 간에 다 저마다 느끼고 보는 관점의 차이도 다르고 깨닫는 시기도 다르기에. 이런 말을 하는 나도, 내가 보는 그분들처럼 누군가에게는 비슷한 사람일 수도 있다. 그 점을 잊지 않고 명심하기.



그래서 언제나 간절히 바라는 건, 내가 모르는 나의 죄악도 보고 알게 해주셨으면 하는 것. 내가 똑같은 행동을 한 사람들이 있다면, 늦게라도 미안함을 표현하고 또 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것.



역시 제일 중요한 건, 주 안에서 온전해지기.

누군가에 대해 기대하는 마음보다는 그분이 그러신 것처럼 줄 수 있는 마음을 가졌으면 하는 것.

내가 기대하는 마음은 온전히 모든 걸 아시는 그분께.





 

가볍게 쓰려고 한 글이 엄청 무겁고 진중해졌다.


그래도 우리 집 고양이를 보면 행복해진다.




요즘 모찌를 보면 점점 무릎냥이를 넘어 개냥이가 되어간다. 원래 개냥이와는 거리가 멀었는데 의자나 소파에 앉아있으면 갑자기 무릎 위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그럼 나랑 J는 그런 모찌에게 감동을 받아서, 좋아서 어쩔 줄 몰라하며 모찌 사진 찍기 바쁘다.



 


 모찌에게는 정말 순수하게 '사랑'이라는 감정만 든다.

가끔 갑자기 물 때면 소리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귀여워죽겠고 바보 같아서 귀엽고 사랑스럽고.


동물에게 별다른 애정이 없던 나에게 모찌는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만들어준 선물 같은 존재다.



이런 마음으로 그들을 사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너무 웃기고 어이없을지라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시기를.




긴 이야기를 돌고 돌아, 어제 결국 새벽 4시에 잠들고 오늘 9시 반쯤에 느지막하게 눈이 떠졌다. 원래는 아침에 떡국을 해 먹을 계획이었지만 몸에 수분이 다 빠진 것처럼 힘이 하나도 없어서 밖에 나가 브런치를 먹었다.



 

브런치도 먹고 오랜만에 맞이한 햇살에 여유로우면서도 밀린 일을 해야 된다는 생각에 조급해지고,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저녁 느지막하게 김치 만두를 빚었는데 모양은 잘 잡혔으나 고기가 냉동실에 좀 오래 있었어서 비린내가 났다(맛술을 더 넣었어야 됐나 보다).



부디 앞으로의 시간 동안 모두를 다 잘 붙들어주시기를.

다 잊고 웃으면서 즐겁게 살기를.

나도 내 주변 사람들도 다 더 많이 웃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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