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이들의 부고소식에 느끼는 모순된 감정
J의 할아버지가 어제 돌아가셨다.
일을 하던 와중 갑자기 J의 스피커폰에 울려 퍼지는, J의 아버지의 울먹이는 소리를 통해 짐작하게 됐다.
아니 울먹이는 게 아니라 우시는 것 같았다.
영어가 아니어도 충분히 목소리만으로 짐작을 할 수 있었다.
나는 방에서 일을 하고 J는 거실에서 일을 했는데 갑자기 J도 울먹이면서 땅바닥에 무릎을 꿇는 소리가 들려 쉽사리 방문 밖으로 나가면 안 될 것 같았다.
몇 분 뒤, 스피커폰에서 더 이상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아마 전화가 끊긴 것 같았다. 그러나 여전히 J의 우는 소리가 들려 용기를 내 나가지 못하고 나도 그 자리에서 서성였다
나중에 J는 나한테 자기가 바보 같다고 했다.
사실 몇 주 전 설날 때도, 오랜만에 전화통화한 사촌이 자신에게 언제쯤 집으로 오냐고 물어봤을 때 고개를 갸우뚱거렸다고 한다. 그전에도 아버지가 올해 특히나 할아버지한테 자주 전화라고 했을 때 알겠다고는 했지만 왜 갑자기 그러시지, 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고도 덧붙였다.
알고 보니 할아버지가 암 판정을 받은 게 벌써 반년 전인데 타지에서 일하는 J가 괜히 걱정을 할까 봐 그동안 가족들이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J는 자기가 바보같단다.
대화 속 곳곳에 있는 사인들에 관심 가지지 않다가, 이제 할아버지가 떠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는 것에. 그리고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는 것에.
흐느껴 우는 J를 어떻게 위로해야 될지 몰라 조심히 손을 잡았다가 안아줬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기도를 했다.
하나님 부디 이 영혼을 아버지가 위로해 주세요.
할아버지가 하나님 곁에서 평안히 쉬게 해 주세요.
그저 중언부언 생각나는 대로 기도하는데 아무리 슬픈 영화를 봐도 눈물 한 방울 안 흘리고 몇 년 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장례식까지 눈물 한 방울 없던 나에게 어느새 눈물이 고였다. 이건 뭐지?
J의 할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들으니 몇 년 전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때가 떠올랐다.
장례식장에서는 눈물 한 방울 없이 겉으로 멀쩡했던 나였지만, 이후 그 여파는 속에서 곰팡이처럼 나를 곪게 했다.
외할아버지는 나보다 애교 많은 동생을 더 이뻐하셨지만 돌아가시기 몇 년 전부터 부쩍 학교에 있는 나에게 오전 오후 할 것 없이 전화를 자주 거셨다.
하고많은 장면들 중에 그 장면이 계속 생각났다
왜 나는 그때 더 친절하게 할아버지의 전화를 받지 못했나,
왜 나는 할아버지와 더 오래 통화하지 못했나,
왜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그 전화를 그렇게나 빨리 끊었나.
왜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날 할아버지를 뵈러 병원에 들렀을 때, 그게 마지막일 거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나.
왜 왜 왜.
이미 더 이상 소용 없어진 질문들에 대해 답을 찾기 위해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소리 없는 아우성을 외쳤다.
너는 왜 그랬냐고.
그런 죄책감이, '할아버지는 천국에 가셨을까' 라는 확답을 얻기 위한 기도들로 변질됐다
당연히 답은 얻지 못했다
그러나 웃긴 건, 그렇게 후회했으면서도 할아버지 돌아가신 정확한 날짜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불효손녀도 있나.
내가 날짜를 기억 못 한다는 걸 안 건, 며칠 전 교회 모임에서 누군가가 최근 그분의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1년이 되었다는 말을 통해서였다.
최근에 지인 중 한 분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정정하시고 나이도 비교적 젊으신 터라, 그런 갑작스러운 부고 소식에 적잖이 당황하며 외할아버지가 돌아갔을 때와 비슷한 감정이 들었다.
후회. 죄책감.
조금 더 감사를 표현하지 못한 것에 대해.
조금 더 넓은 마음으로 바라보지 못한 것에 대해.
J의 가족들은 할아버지의 임종을 위해 그날 밤을 지새웠다고 한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외할아버지의 마지막을 함께한 이가 없었다.
J의 가족들은, J와 내가 함께 찍어준 영상을 할아버지께 보여드렸을 때 J의 할아버지가 힘이 없으신 와중에도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고 전해줬다. 그러면서 J가 단지 먼 타지에서 너무 힘들어하지 말고 스스로 마음을 잘 추스르며 할아버지를 기억하는 걸로 충분하다고 얘기했다고 한다.
J의 할아버지의 부고 소식에 안타까움과 씁쓸함이 함께 드는 이 모순된 감정은 무엇일까.
J에게 너무 힘든 시간임에도 옆에서 그 모든 걸 지켜보는 나는
J의 가족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똑같은 일을 겪어도
서로가 서로에게 건네는 말과
서로가 서로를 위해 하는 행동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래서 씁쓸함이 들었다.
어쩌면 받은 애정만큼 후회하고 죄송하는 마음도 비례하는 것 같다.
그렇기에 나는 과연 앞으로 누군가에게 얼마나 많이
이런 마음일 들까,라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
그런 감정이 드는 것도 어쩌면 축복일지도-, 라는 마음이 드는 나는 참 못됐다.
그러게 있을 때 잘하지 그랬어,라고 말하기 전에
그래도 마음을 곱게 하고 후회 없이 표현하고 포용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