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도 두번이나
한국에 오랜만에 들어가자마자 한 것은 바로 건강검진이었다.
1년 전,
위내시경 건강검진에서 발견한 담낭 내 용종의 크기를 추적 관찰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후 미국에서 한 번 초음파 검사를 했는데 마침 한국으로의 휴가 시기가 또다시 돌아온 추적 검사의 시기와 겹쳤다.
미국에서 마지막으로 초음파 검사를 했을 때 용종의 크기에 큰 변화가 없어서 '이번에도 비슷하겠지'라고 어림짐작했다.
그러나 당일 초음파 검사 결과는 내 예상을 가볍게 뒤집어 엎었다. 담낭의 용종이 11mm 정도 되어 곧바로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
내가 건강검진을 받았던 A 병원에서는 직접적인 수술까지는 할 수 없었기에 전달받은 초음파 영상 복사본을 가지고 다른 병원을 알아봐야 했다. 딸과 오랜만에 해후한 엄마는,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곧바로 이곳저곳을 알아봐 바로 B 병원의 상담 예약을 잡았다.
다음날 B 병원에서 엄마와 내가 의사 선생님께 상담을 하러 들어가자마자 처음 물어본 질문은,
"초음파 검사에서 1-2mm의 오차가 있다고 하니깐 생각보다 작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였다.
수술을 안 받고 싶어 어떻게 해서든 셀프 포장하고 싶은 마음이 십분 작용했다. '내가 검진 당시 빈 속으로 헤롱헤롱한 상태였으니까, 초음파 검사 결과를 잘못 듣지는 않았을까-'라는 노파심도 있었다.
그러나 돌아온 의사 선생님의 대답은 단호했다.
"큰 걸 작게 볼 수 있을진 몰라도 작은 걸 크게 볼 순 없다"
한국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수술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다니. 이 전날 이미 들은 내용이지만 다시 한번의 확인사살에 엄마와 나 둘 다 당황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더욱 당황스러웠던 것은 이후 의사 선생님께서 던지신 한 마디 말씀이었다.
이거 초음파 영상 CD 이름이 본인이 아닌데요?
의사 선생님은 내가 병원 초음파 검사에서 전해 들은 검사 결과만을 듣고 상담을 했다. 그래서 수술 날짜를 잡기 전 CD로 다시 한번 확인을 하려 한 와중에, 이전 병원에서 받은 그 영상 결과물에 나온 이름이 내 이름이 아님을 발견하신 거였다.
한국에 오래 머무는 것도 아니고 짧게 휴가를 내고 온 것이기에 수술 날짜도 의사 선생님과 맞춰서 최대한 빨리 해야 했는데 (안 그래도 의사 파업으로 수술을 잡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정확하지 않은 초음파 영상 결과물로는 수술 날짜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얼른 A병원에 전화를 거는데, 의료진 부족이 상담의 부족까지 이어진 것인지 통화 연결음만 계속 들린다.
한 3-4번 전화했을까, 드디어 상담사 분과 연결이 닿고 다시 건너 건너 초음파 검진 센터에 확인을 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됐다.
그로부터 30분 뒤,
죄송하다는 얘기와 함께 다시 영상을 퀵으로 보내주겠다는 내용을 덧붙이셨다.
다시 몇 시간 뒤,
영상물을 다시 전달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들었는데...
다시 보내준 영상물이 이전과 동일하단다.
사실 이때만 해도 오랜만의 휴가에 세상이 아름답게 보여서 그런지, 나는 이 상황이 웃기기만 했다. 그러나 보호자인 엄마는 딸이 수술을 해야 하는데 그 와중에 CD까지 두 번이나 잘못 전달되니 황당함을 넘어 격노하셨다.
이후, A 병원에서 나에게 초음파 검사를 해 주신 분으로부터 전화가 직접 왔다.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검사 결과는 달라지지 않고 그저 CD만 잘못 전달된 거여서 수술해도 된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셨다. 나중에 엄마께도 전화가 갔다는데 내용은 나에게 전달한 내용과 동일했다고 한다.
“검사 결과 내용은 똑같고 직접적인 피해는 없으니 보상 같은 건 해 줄 수 없다, 그렇지만 죄송은 하다”
다행히 세 번째 전달된 CD는 내 이름이 정확히 명시되어 있었고 이후에 나는 담낭절제술을 바로 받게 되었다.
그럼에도 이번 일이 유난히 기억에 남았던 것은 건강검진을 받기 전, 하필이면 공원을 걷던 와중 부모님으로부터 최근에 잘못된 초음파 영상 결과로 아무 문제없던 자궁을 적출하게 되었다는 중국 언론의 기사 내용을 듣게 되었기 때문이다.
비슷한 내용을 찾아보니 5년 전, 한국에서도 이런 CD 복사본에 대한 문제가 끊임없이 화두에 오르곤 했었다.
이미 우리는 글과 그림에 코딩까지 대신해 주는 AI의 시대 속에 살고 있는데 5년이 지난 지금도 이런 똑같은 문제가 반복된다니.
특히 한국에서 이런 일이 생겨서 더욱 의문이다.
모든 걸 무인화 자동 시스템으로 돌려 사람에 더욱 의존하지 않는 한국인데 기술 선진화가 더욱 있을 것 같은 의료 시스템은 아직 그 속도에 발맞추어 가지는 못하는 것일까.
결국 개개인의 몫인 것 같다.
혹시나 나와 비슷하게 급하게 수술을 잡아야 되는 분들은 CD부터 기타 다른 사항들 꼼꼼히 확인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