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밍풀 May 18. 2024

결혼할 때 ‘이 사람이다!’라는 느낌이 오나요?


미국에서의 법원 혼인 신고 전과 후에 지인들에게 많이 받은 질문이 있다.


어떻게 하다가 결혼까지 결심하게 된 거야?



웃기게도 이건 내가 혼인 신고 전, J에게 물어본 질문이기도 했다.





연애 2년 동안 한 번의 자그마한 말다툼도 없던 우리는 각자의 사정으로 어쩔 수 없이 미국과 중국 장거리 연애를 18개월 하게 됐다. 그리고 그 시기에 한 번도 만나지 못하면서 서로가 조금은 달라진 생활방식과 습관들, 확고해진 주관들, 기타 자잘 자잘한 사항들이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20대 초반 연애할 때는 쉽게 양보가 되던 것들이, 조금 머리가 컸다는 반증인지 도저히 양보가 되지 않을 때가 있었다.혼인 신고 몇 개월 전 참 많은 걸로 부딪혔다.



그래서 한 번은 잦은 말다툼으로 지친 내가 J에게 물어봤다.


"너는 나랑 무엇 때문에 결혼하고 싶어?"


돌려 말해, '이렇게 자주 싸우는데도 결혼하고 싶어?'였다.



J는 나에게 어떤 계기가 있다고는 하지 않았다.

강물이 흐르듯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나의 장점들이 보였고 나와 있는 것이 가장 편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물어봤다. "그럼 너는?"





정답부터 말하면 나 또한 ‘이 사람이다!’라는 느낌이 온 적은 없다.


그래서 첫눈에 반했다거나 그런 비슷한 류의 느낌이 와서 결혼했다고 하는 분들을 보면 여전히 신기하다.



그래도 비슷한 말을 언젠가 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으로 기억을 더듬어보면, 연애한 지 1년쯤 됐을 때 친구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했던 게 생각난다.


"아마 믿음 생활을 같이 하게 되면 왠지 (J랑) 결혼까지 갈 것 같아."



그때 왜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20대 초반, 결혼은 너무 머나먼 나라 이야기처럼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로 느껴졌는데, 그때 결혼을 하고 싶었으려나?



이후 시간이 흘러 연애한 지 5년쯤 됐을 때, 결혼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이 친구랑 함께 오래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적고 보니 그게 그거인 것 같기도 하다)



결정적으로 결혼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여러 갈등 속에서 '이런 친구를 다시 내가 만날 수 있을까'라는 질문 앞에 '아마도 아니요'라는 대답이 무의식적으로 들었던 순간이다.



보통 갈등상황이 생기면 사람마다 반응하는 유형은 다음과 같다.


   

1. 무조건 회피하는 유형 (그리고 잊어버린다)

2. 일단 감정을 추스르는 시간을 가진 후, 나중에 이야기하는 유형

3.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하는 유형



어떤 유형이 더 낫다고 말하기 어렵지만 제일 힘든 경우는 상생하기 어려울 때다.

바로 1번과 3번이 만날 때.



그동안 가족이나 연인과 갈등이 생길 때 나는 3번 유형에 속한 사람이었다. 그러다가 아직 감정을 추스를 필요가 있다고 느낄 경우, 2번처럼 그 자리를 피하다가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조금 더 차분해진 상태로 얘기를 꺼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타협이 안 되었던 것은, 나와 가까운 사람이 갈등을 무조건 회피하고 잊어버리는 경우였다. 그래서 1번 유형의 사람들을 만났을 때는 결국 내가 마음을 비우는 쪽을 택해야 됐다.




다행히 J는 어느 유형도 속하지 않고 상대방에게 맞춰주는 쪽이었다.



내가 대화를 계속 이어나가며 갈등을 풀려고 할 때, J도 자신의 입장을 조곤조곤 내비치며 어떤 부분에서 내가 오해가 생겼는지 설명하려 했다. 또는 감정을 조금 추스를 필요가 있다고 느껴 내가 그 자리를 피하면, 다시 대화를 시작하기까지 기다려줬다.



J의 이런 모습은 ‘나를 포기하지 않고 언제나 옆에 있어주려 하겠구나’라는 확신을 가지게 해 줬다. 그리고 이 친구라면 ‘내가 속에서 꺼내놓기 어려운 일들도 털어놓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어렴풋이 들었다.






아직 혼인 신고한 지 두 달도 채 안 됐지만 연애와 결혼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임을 느낀다.


연애는 길어야 몇 년인데 결혼은 수십 년, 그리고 같은 공간에서 평생을 함께 본다는 걸 전제로 한다. 나도 나를 여전히 잘 모르는데 나와 다른 타인과 또 함께 발맞추어 걷는다는 건 서로가 배려와 노력을 요하는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다행히, 좋은 사람을 만나서 조금씩 서로 좋아진 모습으로 매일 발전해 나가고 있다.



자잘 자잘하게 부딪혔던 생활 방식의 차이도,

한 사람이 더 무언가를 하면 그 노력을 잊지 않고 함께 도와주려는 방식으로.

더 자주 웃고 농담을 주고받으며 감사를 표현하는 것으로.



‘이 사람이다!’라는 100% 확신을 가지고 한 건 아니지만

이 사람 덕분에 변화된 내 모습이 좋아서,

나도 더 잘해주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건강검진 초음파 영상 복사본(CD)이 바뀌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