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좋았다
지난번 한국 방문을 기점으로 1년 조금 더 지나 다시 한국에 가게 되었다.
회사에서 눈치를 덜 보고자 작년에는 휴가도 잘 안 쓰고 한국 가기 전, 맡겨진 모든 일을 다 끝내고 왔다. 그만큼 한국에서 가족들, 친구들, 또 오래만에 뵙는 은사님을 비롯해 많은 분들과의 만남에 대한 기대부터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일들까지 계획을 하나부터 열까지 다 세워뒀다.
그러나 한국 간지
일주일도 채 안 되어
나의 모든 계획은 틀어져버렸다.
CD가 두번이나 바뀜으로 인해 문제가 되기도 했었던(글 보러가기) 담낭절제술 때문이었다.
처음 수술을 당장 해야 된다는 말을 듣고 들었던 생각은 '그럼 그렇지'였다.
지난 시간들을 통해 항상 계획대로 되는 건 아니라는 것을 경험하면서, 예상 밖의 일이 생기면 ‘그럴 줄 알았어’가 몸에 베었다. 물론 대장내시경 전 ‘별 일 없을거야’ 라며 스스로에게 걸었던 주문이 먹히지 않았다는 것이 못내 아쉽긴 했다.
뜻밖의 소식에 별달리 놀라지 않았음에도 고민이 되었던 것이 한 가지 있었는데, 의사선생님의 다음 말씀 때문이었다. "수술 하게 되면 회복하는데에 시간이 필요해요. 그래서 비행기는 적어도 수술하고 3-4주 뒤에 타야 됩니다." 비행기 안의 기압 차이로 내상이 생길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즉, 회사에 원래 계획한 휴가에서 몇 주 더 병가를 내야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내가 원해서 생긴 일은 아니었지만 걱정이 됐다.
'회사에서 과연 순순히 병가를 내게 해 줄까?'
'괜히 이걸로 나중에 트집 잡혀서 불리해지는 일이 생기진 않을까?'
그래서 일단 수술 날짜를 잡고 수술을 받기까지 매니저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수술을 다 받은 뒤에 경과를 보고 그 다음에 말할 예정이었다.
다행히 내가 받은 담낭절제술은 여러 수술들 중에서도 그나마 간단한 것에 속했다. 수술 시간도 1시간으로 짧게 걸렸고 입원과 퇴원도 3박 4일로 끝마쳤다.
물론 간단히 한 문장으로 끝내기엔 몸 속 하나의 장기를 완전히 제거하는 일이었기에 회복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수술 직후, 배에 통증이 심해서 일주일 동안은 혼자서 침대에 눕고 일어나는 것에 언제나 부모님이나 동생의 도움을 받았다. 또한 수술할 때 쓰인 가스가 아직 몸 속에서 완전히 배출이 안 되면서 매일매일을 양 어깨에 누가 바늘로 쉴새 없이 콕콕 찌르는 아픔과 함께 잠에 들기가 어려웠다. 배 속에는 물풍선 3-4개가 폐 있는 곳까지 출렁이는 느낌에 밥도 제대로 먹을 수가 없었다.
쉽지 않았던 회복 과정 동안 밤낮을 함께 곁에 있어준 건 가족들이었다. 특히 아빠는 수술 당일이던 목요일 오후에 일찍 퇴근을 하시고 금요일에는 휴가를 내면서 3일 동안 나와 같이 병원에서 살다시피 하셨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 시간 동안 아빠랑 매일 병원 복도를 1시간이고 2시간이고 걸으면 많은 대화를 했다.
어렸을 때는 아빠와 많이, 깊게 얘기한 적이 없다.
아빠는 자상했지만 나와는 성향이 달랐다.
그래서일까.
가끔은 아빠와 대화하는 게 나무 토막을 앞에 두고 얘기하는 기분이었다.
몇 년 전 가족은 자주 소통하고 서로 관심을 가져야 된다는 내 말에 “꼭 그럴 필요가 있나? 아빠는 아빠 형이랑도 안 그러는데” 라고 무심하게 답변하는 아빠의 말에 괜스리 속상했다.
아니, 정정하겠다.
많이 속상했다.
그러나 이번에 본 아빠는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프로그램에 출연한 사람 같았다. 제목만 달리해서 “우리 부모님이 달라졌어요”.
그 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아님 내가 달라진 걸까?
아빠와 있는 시간들이 어색하지 않고 편하기만 했다. 심지어 ‘세상에 이런 아빠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빠는 옆에서 세심하게 눈물이 날 정도로 병간호를 해 주셨다. 퇴원하고 나서도 매일 밤 내 회복을 위해 함께 1시간씩 산책을 나갔다. 뿐만 아니라 때때로 침대에서 잠 자는게 어려워 소파에서 잠을 청하는 내가 혹시나 자다가 굴러떨어질까봐 거실에 이불을 깔고 잤다. 한밤중 아픔에 잠깐 깼다가 인기척에 화들짝 놀라면서 알게 됐다.
그 전까지는 아빠랑 많은 대화를 하지 않았기에 속으로 아빠를 항상 어림짐작하는게 있었다.
아빠가 어떤 것에 대해 ‘아빠는 괜찮아~’ 라고 말해도 괜찮지 않을거라는 생각.
아빠가 때로 따스하게 말해주는 말 한마디도 그냥 하는 말이겠거니 무심하게 보는 습관.
그런 나의 비뚤어진 마음과 시선을 이번에 수술 덕분에 알게 되었다.
수술을 다 받고 며칠 뒤, 매니저에게 수술한 사실과 영문으로 된 진단서를 보냈다. 다행히 흔쾌히 푹 쉬고 오라는 말에 마음 편히 병가를 내고 가족들과 2주간 더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됐다.
수술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는 당황스럽고 수술부터 회복의 시간이 쉽지는 않았지만 덕분에 이렇게 귀한 시간을 선물로 얻었다. 또한 한 번 이런 수술을 받게 되니 그 동안 방치했던 내 정신과 몸 건강 모두에 대해 돌아보게 됐다.
의사 선생님은 원인이 없다고 하지만 주변에 수술을 한 분들이 공통되게 얘기하는 건, 과학적인 증명은 없음에도 누구나 생각하는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여러가지 요인들이 있겠지만 내 몸은 어쩌면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하드웨어의 한 종류 같았다. 그래서 내가 그 하드웨어의 부품들을 먼지가 쌓이지 않고 녹슬지 않도록 관리하지 않으면 어디 한 군데가 고장이 나서 종국엔 대체품 없이 떼버려야 된다는 것도.
그 이후부터 아무리 바빠도 하루에 몇 분은 운동 하려 하고 먹고 싶은 음식이 많아도 적당한 배부름과 너무 기름지지는 않은 음식들로 내 몸을 존중해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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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으로, 내가 수술을 받고 집안일 대부분을 다 J가 도맡아해서 더 좋은 건 안 비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