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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풀 Apr 07. 2024

미국에서 뜻밖의 브라이덜 샤워

3월 중순, 지인들로부터 깜짝 브라이덜 샤워를 받았다. 


이제 새로운 곳에 정착한 지 얼마 안 돼서 언제 이런 소식을 나눠야 될지 고민이었다. 혼인 신고 날짜도 상대적으로 급작스럽게 정했기에. 그러다가 그전 주에 몇몇 다른 분들께 어쩌다가 따로 모인 자리에서 말하게 됐다. 



아직 결혼식은 한참 뒤의 일이어서 많이들 찍는 스냅사진도 나중에 한국에 가면 한꺼번에 찍으려고 했었다. 그러니 브라이덜 샤워 같은 건 아예 생각도 못 하고 있었다. 


그러나 토요일 오후, 저녁을 먹고 언니네 집에서 간단히 디저트를 먹는 자리인 줄 알았던 시간이 알고 보니 나를 위해 준비해 준 깜짝 파티의 연장선이었다는 걸, 축하받기 직전에야 알게 되었다. 






그 자리에는 사실 내가 미처 소식을 나누지 못한 몇몇 분도 계셨다. 그래서 그분들께는 그런 깜짝 파티가 열린 것이 꽤 당황스러웠을 텐데도, 이내 이런 모든 정황을 알게 되자마자 30분 동안 나보다 더 열성적으로  이런저런 포즈를 취해보라며 포즈와 구도를 잡아주고 사진을 찍어주며 축하해 줬다. 






이후에 사진을 모두 다 찍고 또 다른 지인이 나를 위해 미리 주문한 팥 크림 쑥 케이크를 함께 먹으면서 '결혼'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얘기를 나눴다.


'정확히 어느 시점에서 이 사람이랑 결혼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


'배우자 기도 같은 거 했어?'


등등.



또래에 비해 결혼을 비교적 일찍 하는 편이었기에 내가 이런 얘기를 나누는 게 사실 약간 부끄럽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현실감 없이 느껴졌다. 



내가 결혼이라니.

J랑 오랜 시간을 함께 했지만 결혼은 또 다른 얘기였다. 




언니 덕분에 언니의 트위트 원피스와 구두까지 빌려 공주 컨셉으로 찍은 사진까지.



결혼이라는 주제와는 별개로 나에게 '브라이덜 샤워'는 그저 SNS 자랑용처럼 여겨졌다. 굳이 저걸 할 필요가 있나?라고 생각했다(결혼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부모님만 괜찮다면 친한 지인들만 불러 간소하지만 확실하게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막상 나보다 더 나의 소식에 진심으로 기뻐해 주는 사람들의 축하 속에서, 그리고 왜 이 친구랑 평생을 함께 하고 싶은지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자리에서, 처음으로 'J랑 정말 잘 살아야겠다'라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생일을 축하받는 자리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진한 여운이 남았다. 


이런 걸 깨닫기 위해 축하의 자리를 마련할 수도 있겠구나. 





이런 깨달음과는 별개로, 각자의 일로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내어 누군가를 생각하고 축하해 주기 위해 준비해 준 지인들의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 아직 서로를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더 그랬던 것 같다. '내가 뭐라고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만났나. 너무 복 받았다.'



좋은 사람들을 알아갈수록 내 마음도 조금씩 더욱 이타적으로 변하게 된다. 예전에는 그저 오직 내 일, 내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에 초점을 맞춰 옆도, 뒤도 안 돌아보는 삶을 살았다면 이제는 함께 발맞춰 가는 법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너무 조급하게 앞서갈 필요가 없다고, 가끔은 이렇게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의 행복을 같이 나누자고. 그리고 따스한 그 마음처럼, 나도 조금이나마 비슷한 향기를 내는 사람이 되어보자고.





네가 행복하면 나도 행복해



나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위의 문장이 요즘에는 예전보다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일 순 없겠지만, 그래도 내 주변에 있는 좋은 사람들과 결을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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