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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풀 Apr 11. 2024

미국 법원 혼인신고보다 더 의미 있던 것


약 3주 전, 미국 법원에서 혼인 신고를 마쳐 J랑 정식 부부가 됐다.



법원 혼인 신고에서의 하이라이트 2가지는,


내가 J와 정식적으로 부부가 됐다는 것에서 오는 새로운 마음가짐,

그리고 지인 언니가 보여준 따뜻한 관심과 사랑이었다.



사실 두 번째가
나한테는 더 잊지 못할 시간이었다




법원 혼인 신고를 하기 전, 하나 고민이 됐던 것은 '우리 둘 말고 누가 또 그 자리에 함께 해 줄까'였다.



각자의 부모님이 미국에 안 계신 마당에 우리 둘만 법원에서 혼인 신고를 하고 자축을 하는 게, 정말 부부가 됐다는 생각이 들까?




이런 내 고민을 친한 언니한테 알려줬다. 언니는 언니의 일로 바쁜 와중에도 내가 물어보기도 전에 먼저 '내가 함께 갈게!'라고 선뜻 제안했다.


뿐만 아니라, 우리 둘은 미처 생각지도 못한 코사지와 부토니어 같은 것들, 그리고 혼인 신고 당일  평범하게 가려고 했던 나한테 자신이 그전에 머리 스타일링을 했던 미용실을 알려주며 어떤 스타일의 머리가 잘 어울릴지 등에 대해서도 먼저 알아봐 주고 공유해 줬다.




일주일 중 가장 바쁜 수요일 평일 오전에 시간을 내어주는 것도 고마운데 이렇게 적극적으로 알려준다니.



언니의 그런 따스한 관심이, 타지에서 가족들 없이 혼인 신고를 한다는 사실에 위안을 불어넣어 줬다.




혼인 신고 당일,


언니는 다른 분한테 빌린 무거운 캐논(canon) 카메라를 들고 왔다. 우리 둘의 사진을 좀 더 제대로 찍어주고 싶어서랬다.





나랑 J는 허술하게 삼각대와 핸드폰만으로 간단하게 찍을 요령이었다.



마치 이렇게



언니가 지인분한테 빌려온 캐논 카메라는 수동이어서 언니가 직접 앞으로 갔다가 뒤로 갔다가를 반복하며 초점을 맞추고 찍어줘야 했다. 언니의 그런 수고로움 덕분에, 우리는 무려 100장도 넘어 나중에 선택하기도 어려웠던, 소중한 순간들을 포착한 사진을 얻을 수 있게 됐다.



나중에 이 사진을 작게나마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공유했을 때, 스토리를 본 다른 지인들은 내가 전문적인 스냅샷 업체를 불러 사진을 찍은 줄 알 정도였다.





법원 혼인 신고에 걸린 시간은 5분,

나머지 한 시간 동안은 실내에서 나와 J의 독사진부터 함께한 사진,

그리고 언니의 사진과 언니와 함께한 투샷도 찍었다.




약 1시간 뒤,


이제 이 정도면 충분히 실내에서 찍은 것 같으니 밖에서만 한 번 찍어보자는 말에 옷을 주섬주섬 챙겨 밖으로 나갔다. 법원 건물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데 언니가 "잠깐만 ~ "이라며 가방에서 또 무언가를 꺼냈다.


'Just married'라는 웨딩 배너였다.




이건 우리가 준비해야 했던 건데... 언니의 세심한 배려와 케어에 계속해서 감동을 받았다.


이런 이벤트 장인 같으니라구.



그러나 언니의 이벤트는
여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모든 사진 찍기를 끝마치고, 언니한테 감사의 표시를 하기 위해 며칠 전에 미리 예약해 둔 레스토랑에서였다.


또다시 언니는 지니의 요술램프처럼, 마치 도라에몽의 주머니와 같은 그 가방 속에서 기대도 못했던 것 하나를 선물로 꺼내 건네준다. 편지였다.



편지는 우리의 혼인 신고를 축하하기고 함께 읽을 J를 위해 영어로 적혀있었다.



이쁜 글씨체로 또박또박 볼펜을 눌러쓴 듯한 그 글 안에는 언니가 나에게 처음에 받았던 인상과 감동, 그리고 언니가 J한테 느낀 소소한 배려의 일화가 적혀있었다. 그 이야기의 끝은 마지막으로 두 사람의 결혼을 그 누구보다 축복한다는 언니의 글로 마무리 지어졌다.




올해 훈훈함 열매는 이미 다 수확하고도 남았을 만큼 따스함의 당도가 꽉 찼던 시간이었다.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라는 말은 이럴 때를 두고 하는 말일까.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나에게 어떻게 이런 지인이 있을까.



'나를 생각해 주고 앞으로의 우리의 관계를 축복해 주는 이 한 사람만 있다면 이미 분에 차고도 넘친다'라는 생각을 했다.



언니 덕분에 또 한 번 내 마음은 말랑말랑해져, 언니의 진한 축복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J와 잘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들어준다.





사랑의 힘을 예전엔 믿지 않았다.


그러나 외로움이 더 익숙한 곳일 수 있는 타지생활에서,

밀도 있는 사랑이 주는 감동을 더욱 극명한 대비로 느끼게 된다.



그 따스한 사랑 덕분에 이미 몇 주가 지난 지금 이 순간에도 내 마음속에는 감동의 여운이 남아있다.

미국에서의 법원 혼인 신고를 통해 그 너머 더 진한 사랑을 알게 된다.




고마운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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