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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풀 Apr 24. 2024

내가 고쳐야 될 것

최근에 동생이랑 주변 공원을 걸으며 많은 얘기를 나눴다.


동생과 나는 성향부터 입맛까지 완전 반대다.



어렸을 때부터 동생은 언제나 모든 걸 단순하고 즐겁게 바라본 반면에 나는 어렵고 복잡하게 보는 게 디폴트였다.

입맛도, 내가 좋아하는 음식은 동생이 안 좋아하는 음식이라고 보면 됐다.



시간이 지나고
나도 점차
대부분의 일들을
가볍게 바라보는 게 가능해졌다.


그러나 여전히 내가 못하고 어려워하는 게 있었는데

바로 상대방이 가볍게 얘기한 말 한마디에도 쉽게 부담과 책임감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이렇다.


누군가에게 '부럽다'라는 얘기를 들으면 과장 한 스푼 보태어 알레르기 반응이 생긴다. 그 말을 듣는 게 부담스럽다. 그래서 혹시나 내가 무의식적으로 하는 말이 자랑처럼 들리지는 아닐지 조심스러워진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맏딸, K-장녀의 영향이지 않을까 싶다.



보통 나와 가까운 지인이나 가족들이기에

그런 비슷한 말을 들으면 무의식적으로 나도 모르게

내가 그들에게 '부러운' 생활방식이나 요소에 대해 함께 해 주지 못해서 미안해진다.


엄마가 한 번은 통화로 이런 얘기를 하셨다:

"00 이가 엄마가 어렸을 때 원하던 삶을 살고 있네, 부러워"라고.


엄마로서 딸에게 당연히 할 수 있는 얘기인데 나는 그 순간 그 말이 살짝 부담으로 다가왔다. 아무래도 엄마가 나와 동생을 키우기 위해  많은 걸 포기하고 인내하신 걸 어렸을 때부터 보아와서 그런 것 같다.



그런 인내와 희생이 있었기에 내가 이런 삶을 누리고 있는 건데, 엄마한테 내가 그런 삶을 대신 사는 게 미안해져서.





또 한 번은 다음과 같은 경우도 있었다.


몇 년 만에 만난 할머니와 이모에게 간단한 점심을 사드렸다.


감동하는 이모와 할머니에게 엄마가 장난스레

"기다려봐, 나중에 00가 미쉐린도 사줄 거야~"라고 하셨다.


그 말에 나도 능청스레 "그니깐요. 이모, 할머니, 곧이에요, 곧".이라고 대답하면 될 것을, 순간적으로 또 부담을 느껴 "에이 엄마 그 정도는 아니야"라고 정색을 했다.



말 한마디가 천냥 빚을 갚는다고,

실제로 그렇게 못 할지라도  말이라도 호탕하게 하면 모두가 기분이 좋을 것을, 나는 이미 그 말을 듣는 순간부터 내가 해야 할 일 목록 하나를 머릿속 기억창고에 추가해 계속 상기시키게 된다. 그래서 시작도 전에 책임감을 느끼고 그게 역으로 부담이 된다.



참 복잡할래야 이렇게 복잡할 수가.


좀 단순하게 살지.






대학 졸업을 하고 내 전공 관련 일을 구하지 못해 미국에 남아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정 힘들면 한국으로 돌아와서 엄마 아빠랑 같이 지내면서 찾아도 돼"라는 엄마의 말에 나는 극구로 반대했다.


엄마가 괜찮대는데도, 왜인지 졸업 후에도 부모님께 의지하는 것이, 미국에서 집 없이 살아도 살지 그것만은 하고 싶지 않았다.



일을 구하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당장 오늘이라도 해고될 수 있기에 미국에 남는 것도 기한이 주어지는 외국인으로서, 언제나 스스로 살아남아야 된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런 생각들이 모이고 모여 나를 만든 것 같다.


내가 상대방과 말한 장난 같은 약속에도, 설사 그 상대가 기억을 못 할지라도 책임감을 느끼고 언젠가는 꼭 해줘야 된다는, 그런 마음들.






동생은 이런 나를 이제 조금 더 이해해 준다.


그러면서 “언니가 그렇게 책임감 가지고 살았으니 지금 그런 많은 일들을 이룰 수 있었던 거야.”라고, 뜻밖의 따스한 위로를 건넸다.



이번에 한국에서 예상지도 못한 수술을 하게 되며 엄마는 나에게 나지막이 말씀하셨다.


"이제는 그만 부담 가지고 마음 편히 지내."



그전까지는 나에게 있는 마음의 부담들을 내가 평생토록 짊어지고 가야 할 나의 한 부분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그것이 결국 몸의 어느 한 장기를 떼어내야 되는 일로 나타나면서, 더 이상은 이런 것들을 방치하면 안 된다는 걸 알게 됐다.



가볍게 지내자고,

때로 상대방이 내미는 그 손을 고맙게 잡고 나아가면 된다고,

그러니 너무 앞서 생각하지 말고

그 순간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과 즐겁게 웃으면 되는 것이라고.


그렇게 계속 되뇌어본다.



분명 어떤 일에 있어서는 책임감 있게 행동해야 하는 게 맞지만 그럼에도 스스로에게 누가 얹히지도 않은 부담과 책임감을 짊어질 필요는 없으니,


조금 더 융통성 있게,

유쾌하게 살자



그렇게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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