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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풀 May 17. 2024

미국 살다가 한국 와서 놀란 것

그리고 감사한 것


 미국으로 유학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만 하더라도 한국에 잠깐 돌아갔을 때는 별다른 생각 없이 그저 좋았다. 그러나 이제 미국 산지 8년 차에 접어들면서, 그전에는 몰랐던 한국 생활의 놀라운 점을 여행객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는데 다음과 같다.





   

1. 노트북을 카페에 두고 가도 된다

(심지어 지갑도)


 카공(카페 공부)을 즐겨하는 우리 가족은 집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카페가 거의 제 2의 집과 같다. 미국에서 가족톡방에 올라오는 공부(를 가장한 카페)인증 사진들이 못내 부러워서 한국 가자마자 나도 얼른 동참했다. 그러던 와중, 함께 카공을 하던 동생이 잠깐 전화통화를 받으러 간 건지 노트북을 자리에 그대로 두고 한참을 빈 자리로 냅두었다. 속으로 ‘내가 있었으니까 다행이지 어쩔 뻔 했어'라고 생각하며 동생에게 나중에 핀잔을 줬다. 그랬더니 동생이 하는 말, 


이렇게 놔둬도
아무도 안 가지고 가.



 나에게는 정말 신세계였다. 미국에서는 카페에서 노트북으로 공부나 일을 하다가 화장실이 급하면 혹시나 누가 가져갈까 봐 노심초사하며 옆 테이블에 있는 사람한테 “Would you mind watching my stuff for a second?(내 물건 좀 맡아줄래?)” 라며 부탁하기도, 또는 역으로 부탁을 받기도 한다. 또한 어디를 가던 차 안 창문이 잘 보이는 자리에 노트북이나 아이패드 같은 귀중품을 그냥 두지 않고 무조건 가지고 내리거나 트렁크에 넣어둔다. 창문을 깨고 도난을 하는 게 일상 다반사처럼 일어나는 캘리포니아에서는 여행 가방을 식당 안으로 들고 갔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자리를 20분을 비워도 누구 하나 눈길 주지 않고 그저 자기가 하는 일에 집중한다. 이렇게 놀라울 수가.




2. 대체로 무인으로 주문한다


 웬만한 곳은 어딜 가던 무인으로 주문한다. 식당에도, 카페에도, 영화관에도 키오스크가 배치되어 있다. 미국이라고 없는 건 아니지만 한국만큼 대중화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더 취업난에 시달리는 걸까? 한국은 무엇이든 자동화, 무인화가 더 빨리 쉽게 적용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키오스크에 익숙함에도 이번에 영화관에 가서 이곳저곳 배치되어 있던 키오스크를 보며 허둥거렸다. 아마 이런 거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은 조금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3. 다 보도되고 알려주는 세상


 미국에서는 뉴스를 자주 보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저녁마다 뉴스를 틀어놓는 가족들 덕분에 자주 접하게 되었는데 보면서 신기했던 부분이 있다. 뺑소니 같은 사고들을 다 보도해 주거나 아니면 어떤 분이 공사장에서 거금을 주웠는데 그걸 그대로 돌려줬다는 내용. 그리고 핸드폰 알림 문자로 시도 때도 없이 어르신들이 실종되었다는 것들.


 두 번째 사례는 한국이 얼마나 시민의식이 훌륭한지에 대해 놀랐었고 첫 번째와 세 번째 사례는 이런 일들까지 다 알려주고 보도한다는 것에 놀랐었다.


 분명 그런 내용들을 알려주는 것들이 좋은 건 사실이겠지만, 미국에서는 아예 뉴스거리가 되지 않을 내용들이 한국에서는 심각하게 공중파에서 보도되는 게 신기했다. 예를 들면 캘리포니아에서는 도난이 너무 자주 일어나고 심해서 일부 경찰들은 웬만한 고가의 물건이 아니고서는 접수 처리도 안 해준다는 내용을 들었었다. 한국이라면 아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일 것 같다.




4. 늦은 시각에 걸어 다녀도 괜찮다


 오랜만에 한국 와서 제일 숨통이 트였던 부분 중 하나일 것이다. 오후 11시에도 혼자 다녀도 괜찮은 곳, 그리고 여전히 불이 켜져 있는 곳이 많고 번화가에는 사람들이 많이 돌아다닌다는 것.

 

반대로 미국에서는 오후 9시 이후부터 돌아다니는 건 상상이 안 된다. 물론 차가 있고 동행인이 있으면 그 이후에 어디를 가는 건 괜찮지만 그 시간에 걷는다? 목숨줄을 내놓고 다니는 것과 마찬가지다.

 

실제로 카페 같은 경우 오후 3-4시에 문 닫는 곳도 많고 스타벅스가 그나마 8시에 닫는다. 오후 9시에도 계속 열려있는 곳은 바(bar)나 레스토랑이 전부이고 그마저도 다 차로 이동해서 가야 되는 곳이 많다. 그래서 한국 와서 친구들을 만나고 혼자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와도 되는 한국 생활이 얼마나 편한 것인지 새삼 느끼게 됐었다.




5. 신박하면서도 맛있는 조합의 음식들


 매번 한국 와서 느끼는 거지만 한국 사람들은 음식을 조합하는 능력에서만큼은 창의력 1위가 아닐까.


 쑥라떼, 흑임자라떼, 인절미 라떼 등등 이미 몇 년 전부터 유행한 음료들을 접했을 때도 신세계였는데 오랜만에 카페를 가니 또 새로운 조합의 메뉴들이 생겨났다. 커스터드푸딩 라떼, 끼리 치즈 스틱 케이크, 서양배 크림 크루아상, 패션 캐러멜 까눌레 등등(한국에서 스타벅스 자주 이용하시는 분들은 디저트라고 해봤자 브라우니와 베이글 밖에 없는 미국 스타벅스를 보면 적잖이 실망할지도 모른다). 뿐만 아니라 양식 레스토랑을 가도 미국 유명한 레스토랑에서 먹는 것보다 훨씬 낫다.



 한국의 전통적인 맛과 각국 나라 특징을 잘 살려서 만든 퓨전 음식들의 너무 달지도 짜지도 않게 잘 어우러진 맛을 보고 있노라면 ‘이런 분들이 미국 가면 성공할 텐데’라는 생각을 함과 동시에 ‘이렇게 맛있는 음식들 천지니 한국에서는 자영업 하기 힘들겠다’라는 안타까움이 든다.




6. 어디를 가던 필라테스, 피부과, 성형외과가 즐비한 곳


 서울 길거리를 돌아다니면 도보로 채 5분도 안 되는 반경 내에서 동서남북으로 필라테스, 피부과, 성형외과 간판을 하나도 아니고 3-4개는 보곤 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필라테스는 이렇게 많을 줄 몰랐는데 이번에 갔을 땐, 어딜 가던 PT 아니면 필라테스 간판이 눈에 띄었다.


 또 피부과와 성형외과는 어떻게 그렇게나 많은지. 그래서인지 미국에서는 너무 비싸서 엄두도 못 낸 미용비가 한국에서는 발품만 잘하면 좋은 곳을 알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7. 물가가 비싸지만 그럼에도 (미국에 비해) 싼 편이다

(물론 생활비/평균 연봉을 생각하면 비슷하기도 하다)

 
 미국에서는 밖에서 먹으면 판매세(sales tax)부터 기본 18%인 팁까지 부과하기 때문에 부담이 많이 되어 보통은 집에서 요리해 먹곤 했다. 가끔 가족톡방에 가족들이 외식을 하는 걸 보면서 ‘외식 되게 자주 한다’라는 내 말에 엄마가 ‘외식하는 거랑 요리하는 거랑 (가격이)비슷해’라는 말을 했는데 이번에 한국 오니 그 말이 이해가 됐다.
 


 물론 몇 년 전 한국에서 외식했을 때를 생각하면 그동안 물가가 많이 올랐다. 그럼에도 고기랑 과일 값은 미국보다 훨씬 비싸다 (그래도 그만큼 과일이 더 달고 맛있기도 하다). 그래서 재료값을 생각하면 차라리 그 돈으로 밖에서 외식하고 시간 절약하는 게 더 나은 선택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메리카노가 기본 $5(1300원 환율 적용 시 약 6,500원)인 미국과 비교하면, 한국에서는 (섬세한 미각을 가지지 않고 커피를 심도 있게 마시지 않는 분이라면) 지하철 안에서도, 또는 거리를 걸어 다니더라도 아메리카노를 2천 원에 마실 수 있다. 또 여전히 동네 식당에서는 맛있는 밑반찬까지 나오면서도 속이 편안하고 건강한 음식을 만원 이하로 해결할 수 있는 곳도 많다.




 8. 물이 깨끗하다


 대부분의 미국 물은 석회수다. 그래서 일반 가정집의 샤워기에 필터를 씌우지 않으면 며칠 내에 욕조에 빨간색 물 떼가 낀다. 그리고 웬만한 레스토랑에서 주는 물 또한 수돗물을 주는데 미국 와서 '정수된 물'의 차이를 새삼 느끼게 되었다. 정수되지 않으면 뉴스에 나오는 한국의 아리수물이 미국의 석회수 물과 비교하면 천연기념물과 같이 맑디 맑은 청정수다.




 
 외국으로 나가서 살아보니 저절로 비교하는 눈이 길러진다. 약 1년 반 전, 잠깐 한국에 와서 느낀 미국 문화와의 차이점을 쓴 글에 이어 또 새롭게 느껴진 것들을 적어보게 된다.


예전에는 누군가가 나한테 '나무가 아닌 숲을 봐야 된다'라는 말을 하거나 책에서 '여행을 하면 확실히 생각의 지평선이 넓어진다'라는 글을 읽으면 '도대체 그걸 어떻게 하는 건데?'라는 질문을 던지곤 했다. 그러나 외국에 잠깐 단기간에 머물다 가는 여행자가 아닌 그곳에서 삶을 꾸려나가는 과정 속에서 조금씩 다른 점을 알아가게 되면서 이제야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어렴풋이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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