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에 대하여
시애틀에 살 때 잠깐 신세 졌던 분이 계셨다.
이번에 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하면서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기 전, 그때의 감사함에 간소하게나마 보답드리고자 저녁을 대접했다. 음식이 나오고 근황에 대한 짧은 주고받음을 시작으로 그분께서 자연스럽게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는 어떤지에 대해 물어봐주셨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여러 주옥같은 말씀들을 전해 들었는데 다음과 같다.
1)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을 잘할 것. 자신이 일하고 있는 분야를 깊이 파고들수록 결국 모든 분야가 일맥상통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말씀은 내가 커리어 전환과 관련한 고민을 나누는 과정에서 듣게 되었다.
주변을 보면 보통 5년 주기로 개발자에서 매니저로, 또는 주니어/시니어 개발자에서 더 위 직급의 개발자( 예: Principal Engineer)로 커리어 전환이 생긴다. 그래서 나 또한 그런 커리어 전환을 위해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할지, 또는 많고 많은 분야 중에 어디에 집중하는 게 맞을지 등등의 고민이 있었다.
그런 와중에 저 말씀을 들으며 무엇보다 '선택과 집중'을 다시 한번 느꼈다.
괜히 이것저것 하겠다며 일을 많이 벌리지 말고, 일단 내게 주어진 지금 일에 최선을 다하기. 그렇게 한 스텝 한 스텝 넘어가다 보면 또 길이 열리겠다는 작은 기대감을 가져본다.
2) 무엇을 하던 root cause, 즉 본질적인 문제를 파고들고 해결할 것. 눈 가리고 아웅 거리기 식으로 일을 덮는 경우가 꽤 있으나 그건 커리어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이 말씀을 들으며 온콜(Oncall)을 할 때가 생각났다. 특히 여러 이슈들이 터질 때, DevOps에서 나오는 피상적인 에러 메시지만으로 디버깅을 하고 'Resolve(해결)' 했다고 지라 티켓(Jira ticket)을 닫는 경우가 많은데, 결국 그런 에러들이 계속 쌓여 고질적인 문제를 낳곤 한다. 즉, 당장 시간이 많이 걸릴지라도 어떻게 해서든 무엇이 원인인지 파악하고 제안하는 자세를 가져야 된다. 사실 앞서 말한 1번의 내용과도 일맥상통하는 내용이다.
3) 운동을 무조건 사수할 것, 특히 재택으로 일하면 더욱더.
개인적인 사정으로 한국에 잠깐 계시지만 최근에 다시 외국계 기업으로 커리어 전환을 하셨다. 미국 시간으로 일하셔서 새벽 4시부터 일어나 오후 3-4시까지 일하신다고. 평소 평균 근무 시간이 몇 시간 정도 되시냐고 하니 보통 11시간 정도 되신다고 한다. 역시 재택으로 일하면 자동 근무 시간이 길어지는 건 어쩔 수 없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미국 집에서 일하면 단절된 공간에서 노트북만 바라보면서 해서인지 쉽사리 노트북을 닫는 게 어렵다.
계속 그날 못 끝낸 일을 끝내야 된다는 생각이 들고, 그렇게 하루가 어느새 끝나버릴 때가 종종 있다.
그러나 이런 것도 의식적으로 내 정신건강과 몸 건강을 위해 좋은 방향으로 바꿔나가야지.
취준일 때는 취업만 하면 끝일 줄 알았다. 그러나 고민은 끝이 없는 법이었다.
일을 시작하고 나니 또 그 안에서 어떻게 하면 일잘러가 될지 고민하게 되고, 언제든지 부지불식간에 해고될 수 있는 미국 기업에서 조금이라도 내 가치를 증명하려고 발버둥 치게 된다.
다행히 가끔 내가 잘 나아가고 있나, 방향성을 찾지 못하고 헤맬 때마다 이렇게 좋은 분들을 통해 귀한 이야기를 하나하나 전해 듣는다. 언제나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고 나도 이런 분들 같은 사람이 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