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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풀 Jun 23. 2024

미국 일상 일기: 원인 모를 피부 발진


지난주 목요일부터였나, 갑자기 목에서 빨갛게 두드러기가 나기 시작했다. 



어떤 피부병도 없이, 그 흔한 여드름도 없던 피부에 이런 두드러기가 나기 시작한 건 2022년 가을 무렵이었다.




처음에는 모기에 물린 줄 알고 가려워서 잠결에 긁기 시작한 것이 목을 시작으로 등 뒤에까지 퍼졌다. 가렵고 아픈 느낌에 새벽까지 밤을 지새우는 며칠을 반복하다가 결국 응급실을 갔다. 정확히 병명도 알 수 없는 흔한 발진에 급한 대로 스테로이드 성분이 들어있는 연고와 약을 처방받았다. 그 덕분에 잠깐 상태가 나아지는 것도 같았지만, 다시 일상생활이 불가할 정도까지 되어 3일 병가를 냈다.



생활패턴이나 식이에 어떤 변화도 없었기에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겨났는지 의문이었다. 당시 함께 생활했던 동생과 J에게는 나와 비슷한 증상이 아예 없었기에 특이점을 찾을 수가 없었다.



미국인 의사 선생님도 내 이야기를 들으며 내린 결론은 결국 "원인 불명"이었다. 오히려 나한테 스트레스받는 일이 없냐고 물어봤다. 그 물음에 '스트레스야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건데 그것까지고 이런 일이 생기면 모든 사람이 다 생기겠지.'라고 혼자 속으로 중얼거렸던 것 같다.



다행히 병가를 낸 3일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서 편히 쉬니 점차 발진도 가라앉고 그 이후에 단 한 번도 안 생겼다.





그러나 그렇게 몇 주간 고생했던 그 발진이 이번에 또 생기면서, 마치 손톱에 박힌 작은 가시처럼, 빼기도 어렵지만 신경 쓰이는 존재로 나의 일상생활 한 부분을 차지했다.



잠을 자다가도 너무 가려워 긁었다. 일을 하다가도 손이 목으로 가다가 지난날의 악몽이 떠올라 흠칫하며 애써 가려움을 참았다.




지난 주말, 지인들이랑 같이 밥을 먹으며 애써 카라가 있는 옷으로 목을 가린다고 가린 것이 지인의 눈에 띄었는지 바로 근처 마트에 가서 자신이 아는 피부약을 사려했다. 그 마음이 고마웠지만 괜히 민망했다. 마트에는  우리가 찾던 피부약이 없어 나중에 다른 CVS로 가서 지인이 추천해 준 약을 샀다. 그러나 이번에도 효과는 별로 없었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지금, 그때보다 조금 더 목의 많은 부분이 빨개졌다.



사실 병가를 내고 쉬면 어느 정도 괜찮아질 것도 같은데, 한 달간 나에게 맡겨진 프로젝트가 어떤 문제로 인해 다시 느리게 진척되고 있는 중이라 꾸역꾸역 일을 하고 있었다. 대신 왜 또 이런 발진이 생겼나 곰곰이 생각해 봤다. 미국 병원에서는 "원인 불명"이라고 하지만 이제는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알 것도 같다. 


결론은 하나.



내 몸은
정신보다 더 예민하다.



내가 무의식적으로 하는 생각과 느끼는 감정에 몸이 반응한다.

정확히는 아무래도 '부담감'과 '책임감'을 느낄 때.


예를 들면, 2022년 가을, 그때 동생이 미국으로 한 달간 방문하기로 했다. 지금과 달리 당시 주변 환경은 차가 없이는 어디를 가기도 어려운 한적한 시골 마을이었기에 동생이 미국에 오기 전부터 할 필요도 없는 고민을 이것저것 했다.


'나는 재택으로 일해서 집에 있고 차는 한 대인데 동생은 어디에 있게 하지?'

'여기는 차 없이 아무 데도 갈 수 없고 갈 곳도 없는데 막상 와서 많이 실망하면 어떡하지?'

'내가 일하는 동안 동생은 어디에서 뭘 하라고 해야 되려나?' 등등.



지금 생각해 보면 뭐 하러 사서 걱정했나 싶기도 한다. 당시에는 동생이 힘들게 일해서 벌어온 돈으로 미국에 부푼 기대를 가지고 왔을 텐데 내가 머무는 환경으로 인해 기대를 못 충족시키면 어떡하나라는 마음이 컸다.


그래서인지 딱 동생이 오기 며칠 전부터 그런 두드러기가 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왜 생긴 걸까.

아무래도 맡겨진 프로젝트를 기한 내에 완수해야 한다는 마음 때문인 것 같다.


사실 하루종일 어떻게 하면 이걸 잘 끝낼까, 운동을 하면서도 샤워를 하면서도 그런 생각을 한다.






두드러기 난 게 간지럽고 목 부분에 60% 정도 퍼져서 거울을 보면 징그럽지만 한 편으로는 어이가 없어서 웃는다.


나는 정신적으로 내가 괜찮고 그냥 일에 몰입할 뿐이라고, 동생이 왔을 때도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여러 옵션들을 많이 알아보려 했던 것뿐이라고 여겼는데 가끔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을 몸에 나타나는 이런 증상들을 통해 알게 된다.



그래서 수술을 하게 된 건가?


어떻게 해야 내 몸에 이런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 더 잘 알아차릴 수 있고 관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정신적으로는 감사하고 좋다고,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정신 따로 몸 따로 노는 이런 애매한 상황에서 나는 무엇을 더 어떻게 해야 하나 싶다.



쉬어야 되나? 

그러나 미처 끝내지 못한 일이 있을 땐 쉬는 것조차도 마음이 안 편한데 그건 그것대로 의미가 있는 건가?



J 덕분에 미루지 않고 피부과 예약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고마운 J


일단 지금 할 수 있는 건 피부과 예약하기. 

그리고 해야 하는 일을 끝내기.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것도 곧 나아지겠지, 라고 생각하고 나아가기.



다행히 아파트 내에 수영장이 있어서 수영을 할 때면 가려움이 느껴지지 않아 감사하다.

일하고 운동할 수 있는 것도 감사고, 가려움을 참을 수 있는 것도 감사다.

좋게 좋게 생각하면 또 괜찮아지겠지.


.

.


그럼에도 한 편으로는 가끔 긍정적으로 바라보려 한다는 것이 나를 속이는 건 아닌지 답을 찾기 어려울 때가 있다.



내 상태가 어떤지, 

적당히 놓아줘야 할 때는 언제인지, 

모든 걸 당장 그 순간에만 급급하게 보지 않고 멀리 내다볼 수 있는 지혜를 주시기를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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