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 너와 나 사이, 다정한 비효율>
굳이 나의 작은 습관을 기억해준 너.
앞서 이야기했듯 타인의 취향을 기억하는 것은 분명하고도 다정한 관심의 증거다. 망고튤립을 좋아한다던 나의 말을 기억해준 너처럼. 하지만 말하지 않아도 불쑥 튀어 나오는, 나조차 모르는 사이 몸에 배어버린 습관을 굳이 기억하는 것은 다정한 관심만으론 부족하다. 망고튤립이 예쁘고 화사한 취향의 영역이라면, 긴장할 때 손톱을 뜯는 습관은 숨기고 싶은 결핍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전자는 세상에 내놓은 취향의 데이터이지만 후자는 내가 세상으로부터 숨겨온, 그리하여 굳이 나를 오랫동안 고요하게 ‘응시’한 사람만이 비로소 발견할 수 있는 나의 파편이다.
당신의 시선은 대체 언제부터 나를 쫓았기에 흩뿌려진 나의 조각을 이리도 많이 주워준걸까. 그 날이 떠오른다. 식탁 위로는 정중한 대화와 하하호호 웃음이 오가고 있었지만, 보이지 않는 식탁 아래에서 내 손가락은 사정없이 살점이 뜯겨 나가고 있었다. 질문에 대답을 고민할 때마다 갈 곳 잃은 나의 손은 손톱이 살을 더 깊게 파고들었다. 들릴 리 없는 ‘틱, 틱’ 살점이 밀려나가는 소리가 테이블 아래에서부터 내 귓가까지 시끄럽게 울리던 가시방석 위. 잘 보이고 싶다는 마음과 실수하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과 긴장이 손 끝에 빨갛게 맺혀 있었다. 그때 아무런 기척도 없이 내 손을 살포시 감싸던 너의 손길을 느낀 그 날.
굳은 살이 덮어 거칠지만 기분 좋은 따스한 온기를 지닌 너의 손길. 이 다정한 손길이 식탁 아래로 내 초조함을 꾹 눌러 담고 있었다. 마주친 너의 시선과 나를 감싸던 손길은 ‘괜찮아’라는 백 마디 말보다 묵직하고 실체적인 지지였다. 그 포근한 지지에 안심하고 있을 때쯤, 식탁 위로 메인 요리가 놓였다. 평소라면 젓가락으로 끈질기게 골라냈을, 내가 질색하는 양파가 가득 섞인 음식이었다. 하지만 그날의 내 손은 여전히 너의 손길 안에 머물러 있었고, 나는 양파를 골라낼 여력이 없었다.
그때 너는, 대화에 집중하고 경청하며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젓가락 끝은 내 접시 위 투명하고 미끈거리는 양파 조각들을 찾아냈다. 마치 정교하게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의 손길처럼 조심스럽고도 세심한 움직임이었다. 너의 그릇에 쌓여가는 양파들을 보며, 나는 비로소 굳어있던 어깨의 긴장을 내려놓았다. ‘너 양파 안 먹잖아’라는 생색 한마디 없이, 마치 응당 이루어져야 할 일이 이루어진 듯 번거로이 옮겨진 나의 양파들. 식탁 밑으로는 나의 불안을 덮어주고, 식탁 위의 젓가락질은 나의 사소하고도 번거로운 식성을 기꺼이 대신 짊어지고 있었다.
인공지능 알고리즘은 내 선호를 수집해 편리한 미래를 추천한다. 하지만 당신은 내 못난 습관과 유난스러운 입맛을 수집해 안락한 오늘을 만든다. 망고튤립을 보낸 것이 너의 수줍은 ‘관심’이었다면, 굳이 내 손의 상처를 기억하고 양파를 옮겨준 것은 지루할 정도로 세밀한 ‘응시’의 결과다.
데이터는 효율을 위해 오차 범위를 삭제한다. 그러나 사랑은 그 오차 범위 안에 숨어있는 사람의 온기 담긴 조각을 찾아내는 일이다. 알고리즘은 ‘가장 맛있는 식당’을 추천할 수는 있어도, 그 식당에서 내가 어떤 표정을 지을 때 손을 잡아줘야 하는지는 알려줄 수 없다. 그건 굳이 오랜 시간 나를 고요히 응시한 오직 당신만이 알 수 있는 영역이다. 이 비효율적이고도 지루한 관찰이 아니었다면, 나는 여전히 식탁 아래에서 혼자 피를 흘리고 있었겠지.
이제야 비로소 사랑의 형체가 보이는 듯하다. 우리에게 사랑은 결국 상대의 흩날리는 비효율의 조각들을 기꺼이 우리의 세계 안으로 받아들이는 일일 것이다. 그날의 식탁 아래와 그릇 위에서 내가 느낀 사랑처럼 말이다. 나보다 나를 더 세밀하게 읽어주는 당신의 시선 덕분에, 투박하고 모난 나의 조각들은 비로소 당신이라는 세계 안에 가장 평온한 모양으로 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