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 너와 나 사이, 다정한 비효율>
굳이 저린 손으로 마음을 적어 넣는 일.
우리들은 자판 위 손을 움직여 타닥타닥 글을 적고 전송하기 버튼만 누르면 온 지구 어디에 있든 수 초 내로 전달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클릭 한 번이면 전송되는 마음은 효율적이고 정확하지만, 그만큼 가볍고 빠르게 휘발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굳이 만년필을 든다. 이토록 효율적이고 간편한 전송 대신 굳이 공을 들여 빳빳한 종이 위로 잉크를 흘려보내며 내 진심이 몇 그램의 물리적인 무게를 갖기를 바라며.
종이 위엔 백스페이스가 없다. 편지지의 끝자락에서 맞닥뜨린 오타 하나는 나를 깊은 고뇌에 빠뜨려 퍽 곤란하게 한다. 찍 긋고 갈 것인가, 새로 쓸 것인가. 결국 나는 다시 새 종이를 꺼낸다. 미련할지도 모르는 이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는 너에 대한 예우이자, 펜을 든 나 자신을 존중하기 위함이다.
틀리지 않기 위해 숨을 참는 시간, 저릿해진 손마디를 주무르며 잉크가 마르길 기다리는 멈춰진 시간 속에서 나는 비로소 너를 향한 나의 마음의 분량을 실감한다. 몇 분이면 간편히 전할 수 있는 마음을 굳이 느릿하고 수고롭게 적어 내려간다.
자판을 누르는 소리가 건조한 기계음으로 내 귀를 두드린다면, 만년필 촉이 종이를 긁는 소리는 마치 누군가의 귓속말처럼 사각사각 간질거린다. 잉크가 종이의 결을 따라 천천히 스며들며 번져나가는 모양을 멍하니 바라보는 동안, 내 마음도 종이 위로 안전하게 옮겨지고 있다는 평온함을 느낀다. 그렇게 몇 시간을 고민하고, 고르고 고른 예쁜 말을 눌러 적고, 또다시 적다 보면 어느새 몇 장의 어여쁜 마음이 완성된다.
몇 장의 종이에 마음을 고이 새겨 넣었지만, 이 진심은 아직 너에게 닿지 않는다. 우체국으로 향하는 발걸음, 잘 도착할까 전전긍긍하며 확인하는 며칠의 시간. 편리한 메시지는 결코 가질 수 없는 이 ‘설레는 불안함’이야말로 편지의 정수다. 화면 속 숫자가 사라지는 명확한 확인 대신, 나는 네가 편지를 읽었을지 모를 즈음의 날씨를 확인한다. 네가 사는 동네에 비가 온다는 소식에 혹여 봉투가 젖지는 않았을까 걱정하다가도, 따뜻한 차 한 잔을 곁들이며 내 서툰 글씨를 읽어 내려갈 너의 옆모습을 상상하며 다시금 미소 짓는다.
네가 이 봉투를 뜯으며 지을 환한 미소만 생각하면 이깟 수고쯤 대수일까. 네가 내 안에 심어준 너무나 소중하고도 따스한 이 마음을 네게 다시 돌려주고, 부풀어버린 나의 마음을 얹어 보낸 뒤에야 결국 내 마음은 안착할 곳을 찾는다.
그렇다. 결국 이 수고로운 짓은 너만을 위한 이벤트가 아니다. 간편히 전송하는 대신 굳이 번거로운 배달을 택하는 일. 편지를 적으며 나는 너와 함께 나눈 행복을 종이 위에, 그리고 내 영혼 위에 다시금 되새긴다. 이 비효율적인 마음의 조각을 세공하며 나는 너를, 나를, 그리고 우리의 계절을 온전히 귀하게 대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