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 너와 나 사이, 다정한 비효율>
굳이 지구 반 바퀴를 날아온 노락색 마음.
누군가 말한다. 그 사람이 내게 관심 있는지 알아보려면 몸의 말을 들어보라고. 생각해 보면 그렇다. 나 역시 누군가를 마음에 품을 땐 나도 모르는 사이 어느새 내 몸은 그 사람을 향해 기울고, 내 눈은 언제나 바삐 그 사람의 행동 하나하나를 쫓았다. 조용한 몸의 언어 중 내게 가장 선명히 들리는 것은 귀의 이야기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스치듯 흘러간 말에도 온 신경이 쏠리는 것, 이것만큼 명확한 표징이 있을까?
그래서 그럴까, ‘네가 좋아한다고 했던 게 기억나서’라는 말은 마법의 문장이다. 나도 기억하기 어려운, 툭 던진 말 한마디가 이 사람에겐 그토록 기억에 남았다는 뜻일 테니. 언젠가 스치듯 말한 적이 있다. 망고튤립이 참 예쁜 것 같다고. 나조차도 잊고 있던 나의 취향이다. 그러나 이른 아침 초인종 소리와 함께 도착한 상자 하나엔 추운 날씨도 잊은 채 예쁘게 자리 잡은 망고튤립들이 담겨 있었다. 이 얼마나 다정하고도 사랑스러운 마음인가.
너에게 전화를 걸었다. “망고튤립이잖아!”, “네가 좋아한다고 했던 게 기억나서 매일 망고튤립이 언제 입고될까 기다리다 입고 됐길래 보냈어. 계속 기다렸는데 이제야 입고되었더라고.” 그날의 통화에 담겨 있던 마음이다. 너의 일상을 살아가기도 바쁠 텐데, 지나가던 나의 말 한마디를 굳이 주워 담고, 굳이 매일을 기다리며, 마침내 굳이 너의 사랑을 배달했다.
지구 반 바퀴라는 아득한 거리는 너의 기억력을 훼방 놓지 못했다. 나의 낮이 너의 밤이 되는 엇갈리는 시간선 위에서, 너는 하늘이 어둑해질 시간 즈음이면 매일 꽃집의 입고 목록을 확인했겠지. 똑똑한 알고리즘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연산법이다. 기계는 가장 빠른 효율을 계산하지만, 우리들의 사랑은 바보가 될지라도 가장 긴 기다림을 자처하기 때문이다.
네가 굳이 기억에 담아두었다가 대륙과 바다를 가로질러 돌려준 나의 조각들은 수줍은 노란색을 띠고 있었고, 시간이 지나며 너의 온기를 닮은 분홍색으로 번져갔다. 꽃은 필연적으로 시들지만, 그 꽃을 보내기 위해 네가 보낸 '매일의 기다림'은 시들지 않고 내 안에 남는다.
이제 망고튤립의 꽃잎은 저물었기에 못내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 빈 화병을 바라보며 배부른 마음이 된다. 꽃잎은 스러졌지만 매일 아침 새로운 물을 채우고 꽃잎 위로 너의 마음을 쓰다듬으며 미소 짓던 나는 여전히 여기 있다. 나의 사소한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하루에 자리 잡고, 끝내 꽃으로 피어나는 기적. 이 다정한 비효율이 나를 살게 한다.
빠른 효율을 도통 계산할 줄 모르는 비효율적인 우리들. 오늘도 나는 너에게로, 너는 나에게로 서로의 '굳이'를 선물한다. 기꺼이 시간을 낭비하며 채워가는 우리들의 하루엔 서로의 마음이 잔뜩 묻어 있다. 사람들의 모든 굳건한 비효율에는, 역시 마음이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