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나를 향한 다정한 사투>
굳이 배우는 돈 안 되는 취미.
나이를 먹어가고 학교는 이미 졸업해 학생의 신분을 벗어났음에도 배움은 끝이 없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우리들의 세상은 언제나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들이 넘쳐나고 새로운 기술과 분야가 끝도 없이 쏟아진다. 바쁘게 변해가는 세상에 숨을 헐떡이며 뒤처진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 달려간다. 재테크해야지, 요즘은 암호화폐 모르면 안 돼. 새로운 기술도 익혀야지, 이제는 인공지능을 잘 활용해야 효율적으로 일 하고 살아남을 수 있어. 다음엔 이거, 그다음엔 저거, 언제나 새로운 것으로 파도가 넘실대는 정보의 바닷속에서 허우적대다 보면 내가 정보를 얻는 건지, 정보가 날 삼키는 건지 구분이 잘 안 되기도 한다.
어제보다 더 나은 내일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이 턱 밑까지 차올라 나의 숨통을 조여 온다. 그럴 때면 나는 온갖 정보가 넘쳐나는 디지털 바다에서 헤엄쳐 나와 아날로그 땅에 발을 내딛는다. 그곳엔 당장 내 자산을 불려주지도, 업무 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여주지도 않는 '돈 안 되는'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예를 들면 뜨개질 같은 것들. 코 하나를 잘못 빠뜨리면 몇 시간을 공들인 편물을 기어이 다 풀어내야 하는 이 미련한 반복은, 0과 1로 명쾌하게 수렴되는 디지털 세상과는 사뭇 다른 곳이다. 손가락 마디마디에 실을 감고 오로지 다음 한 코에만 집중하는 시간. 그 무용한 몰입 속에서 나는 비로소 정보에 잡아먹히던 나를 건져 올린다. 유튜브 속 누군가의 목소리를 나침반 삼아 몇 시간의 집중력을 쏟고 나면 비로소 하나의 작은 열쇠고리가 만들어진다. 완성된 열쇠고리는 시중에 판매 중인 상품들과 비교하면 ‘하등품’이다. 그럼에도 굳이 하등품의 열쇠고리를 만들어내는 이 비효율의 시간은 정보의 무게에 눌려 가라앉던 나를 수면 위로 밀어 올리는 부표가 된다. 그제야 나는 타인의 속도가 아닌, 내 손가락이 만드는 정직한 리듬으로 첫 숨을 내뱉는다.
붓을 드는 행위 역시 ‘낭만적인 비효율’이 된다. 캔버스 위에 물감을 덧칠하고 말리기를 굳이 기다리는 지루한 인고의 시간. 붓끝이 지나간 자리에 남는 투박한 결들은 세상이 말하는 '고화질의 매끄러움'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붓끝이 캔버스의 서걱거리는 결을 지날 때, 비어 있던 팔레트가 오색 빛으로 채워질 때, 나는 충만감을 느낀다. 마음에 드는 색을 얻기 위해 정형화된 컬러코드를 입력하는 것이 아닌, 몇 번의 실패를 거듭하며 물감을 섞어가는 과정은 속도와 효율에 가려져 희미해진 나의 색깔을 다시금 선명하게 물들인다.
디지털 세상의 '실행 취소(Ctrl+Z)'가 통하지 않는 이 세계에서, 덧칠은 실수를 가리는 수단이 아니라 깊이를 더하는 정성이 된다. 한 번 그어버린 선은 되돌릴 수 없기에 나는 다음 획을 긋기 전 충분히 숨을 고른다. 타인의 기준에 맞춘 정답을 찾느라 잔뜩 웅크렸던 마음이,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는 그림의 형체와 함께 개운한 기지개를 켜는 순간이다.
미술을 전공하지도, 제대로 배워본 적도 없는 내가 완성한 그림이 화가의 걸작처럼 훌륭할 리 없다. 하지만 내가 직접 고른 색들이 엉겨 붙어 만들어낸 그 형체는, 세상이 규정한 표준과는 다른, 오직 나만이 해독할 수 있는 아름다움을 띤 채 나를 바라본다. 이것은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전시용이 아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방 안에서 예쁜 파자마를 챙겨 입듯, 나는 그저 나만을 위한 색을 칠하며 내 마음의 형체를 선명하게 매만질 뿐이다.
돈 안 되는 이 짓거리에 정성을 쏟는 동안, 세상이 정한 '낙오'의 공포는 어느새 편물과 캔버스 너머로 밀려난다. 다른 이의 눈에 잠시 내가 낙오자로 비춰질지라도, 나는 나를 숨 쉬게 하기 위해, 그저 온전한 나로 존재하기 위해 기꺼이 기꺼이 멈춰 선다. 하등품 열쇠고리를 만들고 캔버스를 채우며, 그렇게 숨을 고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