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나를 향한 다정한 사투>
굳이 정갈히 담아 먹는 한 상.
내 위장은 지난 한 달간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서늘한 온기만을 기억한다. 앉아서 식사를 즐길 새도 없이 싱크대 앞에 서서, 밥을 그저 입에 욱여넣던 밤들이었다. 1인 가구의 식탁은 종종 생존을 위한 연료 주입소로 전락한다. 배달 앱을 켜고 주문한 음식이 도착하면, 용기 뚜껑만 연 채 탁자 위로 늘어놓는다. 맛을 음미하기보다 허기를 잠재우기 위해, 입과 식도를 거쳐 위장으로 음식을 해치우듯 밀어 넣는다. 그것은 식사가 아니라, 비어 가는 배를 향한 '응급처치'에 가까웠다.
효율의 관점에서 보자면 완벽한 한 끼다. 쓰레기를 버리고 용기를 씻어내는 수고만 견디면, 끼니는 순식간에 끝낼 수 있는 숙제가 된다. 하지만 그 효율 뒤엔 언제나 나를 방치했다는 묘한 공허함이 남았다. 배는 부른데 자존감은 허기진 풍경. 효율적으로 숙제를 마치는 듯한 한 끼니는 나를 돌보고 예우하는 것과는 분명 궤를 달리한다. 나는 나를 조금 더 귀하게 여겨 보기로 하며, 이 식탁 위의 풍경부터 달리하기로 했다.
좁은 오피스텔 원룸에서 나만을 위한 성찬을 준비하기란 쉽지 않다. 나의 끼니는 여전히 단출한 반찬과 방금 돌린 햇반으로 채워진다. 다만, 보존 용기의 뚜껑만 열어 젓가락을 들이밀고 비닐 포장만 뜯어 끼니를 때우던 이전의 비참함과는 결이 다른 풍경이 되었다.
냉장고에서 꺼낸 보존 용기의 서늘한 플라스틱 감촉 대신, 손바닥에 묵직하게 감기는 사기그릇의 온기를 택한다. 비닐 포장에 갇혀 동그랗게 굳어있던 햇반을 그릇에 옮겨 담는다. 숟가락 끝으로 살살 펴내면 밥알은 비로소 고슬고슬한 숨을 내뱉으며 ‘식사’의 얼굴을 갖춘다. 내 몸으로 들어가는 것들에 예의를 갖추는 순간, 비로소 나는 누군가의 자식이자 한 인간으로서 대접받는 기분을 느낀다.
식사를 준비하는 수고와 마친 뒤의 설거지거리는 늘었지만, 나에게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싱크대에 쌓인 그릇들은 내가 나를 위해 기꺼이 낭비한 시간의 증거다. 그 귀찮은 뒤처리마저도 정성껏 나를 대접했다는 훈장처럼 느껴졌다. 나 하나를 위해 들인 이 조그만 노력이, 사랑으로 반찬을 채워준 어머니에게 그리고 그간 방치되었던 나 자신에게 내밀어진 가장 다정한 손길이 되어주었다.
이제 혼자 먹는 한 끼는 더 이상 단순한 연료 주입이 아니다. 허기를 달래기 위해 위장에 음식을 밀어 넣던 ‘끼니의 시절’은 가고, 나를 위해 찬장을 열고 온기를 옮겨 담는 진정한 ‘식사의 시대’가 찾아왔다. 결국 생존을 위한 끼니가 아닌 나를 예우하는 식사가 오늘도 나를 조금 더 단단히 지탱한다.
햇반 하나를 먹더라도 예쁜 그릇에 옮겨 담는 그 '굳이'의 마음이 오늘의 저를 살렸습니다.
혹시 오늘 여러분이 자신을 위해 부린 다정한 고집이 있다면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