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나를 향한 다정한 사투>
굳이 예쁜 잠옷을 챙겨 입는 밤.
모든 것이 스마트폰 화면 위로 ‘터치’ 한 번으로 해결되는 세상이다. 끼니는 배달 앱이 해결하고, 필요한 물건은 새벽이면 현관 앞에 놓인다. 효율이 미덕이 된 도시에서 우리는 종종 나를 돌보는 일조차 ‘가장 빠른 길’을 찾으려 애쓴다. 하지만 요즘의 나는 그 명민한 간편함을 뒤로하고 굳이 번거로움을 자처한다.
효율의 관점에서 본다면 명백한 낙제점이다. 그러나 이 비효율적인 수고로움이야말로 내가 나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예우라는 것을 나는 안다. 타인의 시선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인 사적인 방 안에서, 나는 비로소 굳이 움직여 나를 대접하기 시작한다.
나는 손톱을 항상 예쁘게 네일아트를 해서 정리한다. 한 번에 몇 만 원씩 하는 네일아트는 어떤 이들에겐 사치로 여겨지곤 한다. 그럼에도 한 달에 한 번, 나는 굳이 몇 만 원을 들여 손톱 위에 작은 그림을 그린다. 누군가는 한 끼 식사비를 손톱에 낭비하느냐 묻겠지만, 자판을 두드리는 순간마다 내 시선이 닿는 곳이 알록달록하게 물들어 있는 것을 볼 때마다 나는 묘한 안도감을 느낀다. 이건 타인에게 각인되기 위한 장식이 아니다. 하루 중 가장 많이 고생하는 내 손에게 건네는 나만의 다정한 인사다.
조금 더 사적인 것으로는 잠들기 전 갈아입는 파자마가 있다. 귀여운 곰돌이가 그려져 있는 분홍색 체크무늬 파자마, 예쁜 꽃이 수놓아진 하늘색 줄무늬 파자마 같은 것들이 있다. 이런 파자마를 입은 나의 모습은 다른 이들이 볼 일이 없다. 그럼에도 나는 예쁜 파자마 입기를 좋아한다. 언젠가 친구에게 하늘색 원피스 파자마를 선물 받은 적이 있다. 하늘하늘 휘날리는 파자마와 함께 마음이 담긴 몇 글자를 함께 받았다. “보여줄 사람은 없어도, 예쁜 잠옷을 입으며 기분 좋게 너를 사랑해 줘.” 친구가 건넨 하늘색 원피스 파자마와 함께 도착한 문장이었다. 그전까지 내게 잠옷이란 목이 늘어난 티셔츠면 충분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 내게 예쁜 잠옷은 ‘굳이?’가 아닌 ‘굳이!’가 되었다. 아무도 보지 않는 어둠 속에서도 나를 예우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자취할 적에 나는 집에 더러 내가 좋아하는 향의 인센스를 피우곤 했다. 다 피우고 나면 재를 정리하고 트레이를 씻는 등 오히려 나를 귀찮게 하는 일들이 많아지는 행위였다. 그럼에도 나는 굳이, 주에 세 번은 꼭 인센스에 불을 붙였다. 혼자 있는 방 안에 퍼지는 포근한 향기는 내가 나를 아끼는 기분이 들게 해 주었다.
물론 이런 ‘굳이’의 행위들이 즉시 나의 삶의 구원이 되고 세상의 모든 풍랑을 막아주는 방패가 되지는 못했다. 가지런히 정리된 손톱을 하고, 예쁜 잠옷을 입고 좋아하는 향기를 피웠음에도, 설명할 수 없는 막연한 공허함과 누군가 무심코 내뱉은 말의 파편에 베인 자상들로 인해 밤새 뒤척이던 날들이 분명 있었다. 나를 아끼려는 노력이 무색하게, 미처 삼키지 못한 비난의 찌꺼기들을 곱씹으며 세상으로부터 사라지고 싶던 순간들. 하지만 그 깊은 우울 속에도 나는 여전히 내 옆에 있었다. 기분이 땅을 치다 못해 바닥 밑의 바닥까지 내려앉던 순간에도 내 손톱은 여전히 정갈했고 내 주변은 내가 고른 향기가 나를 감싸고 있었다.
이제 나는 세상이 불태워 버린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다시 인센스에 불을 붙일 줄 알게 되었다. 여전히 흔들리고 가끔은 주저앉을지라도, 나는 내 옆에 웅크린 채로 나를 토닥인다.
사실 나에게 ‘굳이’는 모두 애정의 다른 말이었다. 굳이 하지 않는 것은 그만한 마음이 없다는 뜻이고, 굳이 하게 되는 것은 마음이 넘친다는 뜻이다. 타인의 위로가 닿지도 않는 깊은 심연 속에서 나에게 뻗어진 손은 내가 나에게 보낸 ‘굳이’ 움직였던 이 비효율의 조각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른 누구보다도 나를 위해서라면 굳이 움직이는 편이 되고자 한다. 굳이 맛있는 것을 먹으러 나가고, 굳이 운동을 하며 몸을 돌보는 수고로움. 이런 사소한 행위들이 모여 비로소 나라는 사람의 형체는 선명해진다. 타인에게는 짧게 스쳐 지나갈 하찮은 풍경일지라도, 내가 직접 고른 향기 속에 예쁜 파자마를 입는 이 모든 예우가 결국 나를 지탱한다.
이제 나는 삶의 도처에 나만의 지지자들을 심어두기로 한다. 효율과는 거리가 먼 이 비효율의 조각들을 기꺼이 하루의 틈새에 끼워 넣으며, 나는 오늘도 나를 조금 더 아껴본다. 온전히 나라는 공간을 채우기 위한 이 치열하고도 다정한 사투가,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오늘, 오늘보다 조금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 주길 바라며.
당신이 오직 당신만을 위해 '굳이' 하고 있는 작은 사치는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