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이별 노래 (1)

바이브 - 미친거니

by 김아이

아무도 믿지 못하지만 나는 이별 전문가다. 지금도 처참하다 못해 참담한 이별의 과정을 겪고 있다. 이별 전문가답게 나는 떠나는 그를 붙잡기 위해 울며 매달렸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흑역사를 썼다. 그리고 모든 전문가가 그러하듯 이를 통해 배운 경험을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덕분에 지난 3주간 매일 밤 내 친구들은 괴로워해야 했다. 이번에도 정말 고마워 친구들아.


사실 지난 3주뿐만 아니라, 그들은 나의 모든 연애사와 이별 과정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나 이제 정말 괜찮아”, “그 아이를 놓아줄 거야” 따위의 말을 믿지 않는다. 특히 가까운 친구인 H는 내가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내 말을 정정해준다.


"아니, 너는 다음 날이면 오늘의 다짐을 모두 잊고 그 아이에게 연락하겠다고 선언하겠지"


그래, 나는 이별 전문가다. 이별에 대해서라면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이별이 줄 수 있는 교훈은 “우리 이렇게 해서 다시 만나게 되었어요” 혹은 “이 글 덕분에 조금 더 빨리 그를 잊게 되었어요”라는 말과 한참이나 떨어져 있다.


나의 이별은 “아, 그때 내가 왜 그랬지?”를 이불속에서 외쳐야 하는 종류의 것이다. 희망적인 것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결국 깔깔 웃을 수밖에 없는 종류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번에 나를 떠난 그 덕분에 나는 정말이지 사별을 뺀 모든 이별을 겪어보았다. 그는 나를 두고 바람을 피웠다. 이제 나를 이별 전문가라고 칭해주길 바란다.

미친거니


아니 R, 욕하는 게 아니야. 이건 그저 흔한 이별 노래이고 너도 분명 들어 봤을 거야.

바이브가 부릅니다, ‘미친거니’.


현재 나의 이별 대서사시의 남자 주인공인 R이 처음부터 딴소리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정답에 가까운 말을 쏟아냈다.


“나 널 사랑하는 것 같아”


“사랑받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알게 해줄게”


“넌 내가 그리던 이상형 그대로야!”


“단지 너의 시간만 나에게 주면 돼, 나머지는 내가 다 알아서 할게”


“걱정하지 마, 우린 언제나 방법을 찾으니까”


“우리 그냥 같이 살자”


“내가 널 먼저 버리는 일은 없을 거야”


처음엔 그가 내뱉은 말로 가득 찬 과거 때문에 아파야 했다. 우리 좋았는데, 하면서. 나중에는 그가 약속했던 미래가 나를 괴롭혔다. 영영 오지 않을 그 미래. 아야, 이건 꽤 아픈데.


맥을 못 추고 빌빌 거리는 나와 달리, R은 행복해 보인다. 요즘 나는 그의 SNS에서 살고 있다. 물론 내 마음속에서 경고음이 울리고 있지만, 이 자학행위를 멈출 수 없다. 그가 새로운 연인과의 행복한 한 때를 게시할 때마다, 나는 거의 죽어간다. 대체 어쩌자는 것일까?

반대로 R이 나의 SNS를 방문하진 않겠지만 나는 보란 듯이(특히 그에게 보란 듯이) 행복해 죽겠다는 듯한 셀카를 마구 찍어 올려댔다. 그래, 죽겠어! 정말.


그의 SNS에 방문하고자 하는 충동이 들 때마다, 이를 멈추기 위해 유튜브의 세계로 발을 돌렸다. 이제 나는 유튜브에 중독되었다. 그곳에는 나와 같이 이별한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처음엔 ‘이별을 이겨내는 방법’, ‘헤어진 상대방과의 재회’ 따위를 검색해보았다. 이내 알 수 없는 알고리즘으로 인해 결국 내가 정착한 곳은 엉뚱하게도 ‘타로’와 ‘사랑의 주파수’였지만.


“1번 카드 고르신 분들, 리딩 시작하겠습니다”


타로를 보는 것도 방바닥에 누워서 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그저 영상을 틀고 마음에 드는 카드를 고른 후, 자신이 고른 카드의 리딩을 시청하기만 하면 된다. 타로의 대가들은 헤어진 상대방의 속마음을 낱낱이 알려주었고 복채는 ‘구독’과 ‘좋아요’로 대신했다. 홀린 듯이 수많은 타로점을 보았고, 정말로 무엇인가에 홀린 듯 반복적으로 ‘운명의 수레바퀴’ 카드를 뽑아냈다. 해당 카드는 돌고 돌아 상대방과 재회한다는 의미를 지녔다. 그러나 나는 지금 그와의 수레바퀴를 홀로 열심히 돌리고 있다.


그렇다면 문제의 ‘사랑의 주파수’는 무엇인가. 이는 말 그대로 주파수를 들려주는 영상을 가리킨다. 이 주파수가 ‘사랑의’라는 수식어를 갖게 된 것은 해당 주파수 영상의 제작자가 이 주파수의 파동이 헤어진 상대방의 연락을 이끌어낸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이 영상의 조회수가 690만 회를 넘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절대 그냥 넘길 수 없을 것이다. 나도 그랬고. 조회수도 상당히 놀랍지만, 이 영상의 댓글이 더욱더 놀랍다. 그곳에는 수많은 간증들이 넘쳐나고 있다.


“정말 그에게 연락이 왔어요!”, “그와 재회하게 됐어요”, “여러분 기 받아 가세요”


나도 댓글을 달았냐고 묻는다면, 맞다. 긴 내용은 아니었고 “연락해줘” 정도였다(기를 공짜로 나누어준다고 하니까 살짝 흔들려버렸네).

누군가 내 댓글에 ‘좋아요’를 눌러주었다. 고마워요, 동지. 나만 이렇게 절박한 것은 아니었군요.


그래서 R에게 연락이 왔느냐 묻는다면, 아니다. 하지만 나의 또 다른 이별 서사의 주인공인 U에게 연락이 왔다.


“I씨 자요?”


잠들 진 않았지만 답장은 할 수 없어요. 전 지금 주파수의 세계에 있거든요. 불면의 밤. 내 방안에는 그렇게 나의 침묵과 주파수가 동시에 울어댔다.


“사랑의 주파수를 들을 바에는 차라리 술을 마셔” L언니가 말한다.


이별 전문가는 이별의 기간에 술을 마시지 않는다. 술로 찰랑거리는 내가 상대방에게 어떤 과오를 저지를지 뻔하기 때문이다.

찰랑. 넘치는 알코올보다 더 넘치는 감정으로 그에게 매달리겠지. 그러나 그의 번호를 누르는 순간만큼은 단 1%의 망설임도 없다. 오직 100%의 사랑뿐(아니 100%의 소주였던가). 사랑과 소주로 뒤엉킨 내가 어김없이 다음날 후회할 짓을 한다. 하지만 후회하는 것은 오늘의 내가 아니지! 내일의 나 뒷일을 부탁해.


스스로와 이런 지난한 싸움을 하다 보면, 이별 후 술은 꼴도 보기 싫어진다. 현재의 나는 이별 후 술에 취해 연락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연락을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혼자 기다리는 것은 아니고, 사랑의 주파수와 함께. 뚜-우, 뚜-우.


다른 남자(내 경우에는 여자) 만나는 게 그렇게 쉬웠니, 그렇게 내가 쉬워 보였니. 미친거니?


아니 R, 다시 말하지만 이건 노래 가사일 뿐이야.


그가 새로운 사람을 만났다고 해서 나의 이별까지 단숨에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각자가 지닌 이별의 속도는 모두 다르니까. 그가 나보다 무척 빠르고 내가 그에 비해서 아주 느릴 뿐 결국에는 나도 그처럼 이 이별의 끝에 도착할 것이다.


더는 사랑의 주파수를 듣지 말아야지. 그를 기다리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제 그의 ‘안녕’을 위해 그와 ‘안녕’할 때가 점점 다가오고 있는 것 같다. 아직은 이별 중이지만 아주 조만간일 것이다, 너와의 안녕은.


R, 진심으로 행복하게 잘 지내길 바랄게. 그리고 너보다 내가 더 행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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