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이별 노래 (2)

소녀시대 - Run Devil Run

by 김아이

나와 내 친구들에게는 우리만의 오래된 격언이 있다. 그것은 바로 “M도 지나갔다”이다.

M, 내가 감히 그의 이름을 이렇게 한낮에 대책 없이 부를 수 있다니. 그의 이름은 내 인생에서 금기어였다. 눈치 없는 누군가 내 앞에서 그에 대한 나의 근황을 물을 때면, 해당 발화자와 나를 제외한 청중들은 서로 불안한 눈빛을 교환해야 했다.


“야, 큰일 났다” H가 눈으로 말한다.


저기, 나도 다 보이거든. 그리고 나 이제 괜찮아.

하지만 아무도 그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물론 나조차도.


그래, 인정한다. 악명 높은 그의 이름이 마음속에서 쾅쾅 울려댈 때마다, 감정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서 길을 잃었다. 여긴 어디, 대체 나는 누구. 그러나 인간은 학습의 동물. 처음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했지만, 나중에는 나름의 요령을 터득했다.


자, M이 다가오고 있어. 그렇다면 맥주(소주를 마시면 연락하게 되니까), 눈물을 닦을 티슈, 그리고 아델을 준비해야 한다. 시작해볼까.


이 과정은 ‘회상-저주-수용’의 사이클로 진행된다. 우선 회상 단계에서는 “잘살고 있니”, “어디에서 뭐 하고 있니”, “너무 보고 싶다” 소리치며 끝을 모르는 그리움 속으로 빠져든다. 이 단계에서 그리움의 대상은 약 3배 정도 더 잘생겨 보인다(맥주를 너무 많이 마셔서 그럴 수도).


다음으로는 저주의 단계이다. 우리나라의 서정민요 ‘아리랑’에서 조차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발병’이 날 것이라 노래하는데, 나라고 그에게 악다구니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나 없이 행복할 것 같니”, “나보다 널 사랑해주는 사람은 없을 거야”하며 저주를 여러 차례 쏟아낸다.


이내 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레퍼토리는 마지막 단계인 ‘수용’을 맞이한다. “행복하길 바랄게”, “잘 지내”로 마무리되는 것이다. 여기까지 오면 이미 맥주는 동이 나 있고 방안은 쓰다 버린 티슈로 가득하다. 흡사 장례식과도 같은(물론 M은 건강히 잘 지내고 있다) 이 지난한 과정에서 아델은 나보다 더 구슬피 울어주었다. 사랑해요, 아델.


하지만 M이 지나갔다. 정말, 이 순간 누군가 가슴 미어지는 이별을 겪고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걱정하지 말아요. M도 지나갔어요.


더 멋진 내가 되는 날 갚아주겠어 잊지 마


아니 M, 내가 너한테 악한 심정이 있겠니? 이 노래 몰라?


소녀시대가 부릅니다, ‘Run Devil Run’.


7,000km를 날아간 곳에 그가 있었다. 그렇게나 멀리 떨어진 곳에서 한 남자아이를 만나다니. 낯선 땅에서 확인한 그의 우연한 존재, 단지 그것만으로 나는 온 마음을 뺏길 준비가 되어있었다. 이게 다 <비포 선라이즈> 탓이다. 에단 호크, 책임져. 그러고 보니 외국에서까지 이별을 한 나는 정말 이별 전문가가 맞나 보다.

만남 후에는 자연스럽게 사랑이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온전히 이별에 대한 것뿐이다. 내가 얼마나 그를 사랑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결국 이별이었다.


어쩌면 흔한 이별로 기억됐을 그가 악명을 떨치게 된 이유는 그 횟수 때문이었다. 그렇다. 그는 나를 여러 차례 떠나갔다. 그때마다 나는 마치 처음처럼 아파해야 했다. 아야, 대체 왜 이 아픔은 학습이 안 되는 거야?

그와의 돌림노래는 항상 이렇게 시작된다. 내 친구들은 이를 ‘갑자기’ 시리즈로 칭한다. 이를테면 이런 식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갑자기 일기를 쓰다가...”, “갑자기 네가 쓰던 향수 냄새를 맡아서...”, 또는 “갑자기 네가 준 선물을 보았는데...” 그만.


“갑자기 고기를 먹다가...” H가 말한다.


H는 또 그가 어떤 ‘갑자기’로 연락을 하게 될지 예측하며 나를 놀려댔다. 너도 그만.


그렇다면 그의 연락을 차단하면 쉽게 해결되지 않았을까. 차단해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의 연락처를 차단하게 되면 무척 귀찮아진다.


1) 채팅 앱을 연다. 2) 설정을 누른다. 3) 친구 관리 페이지에 들어간다. 4) 차단 친구 관리 목록을 확인한다. 5) 그의 프로필 찾아 그가 프로필을 바꿨는지 확인한다. 그러니까 그렇게 번거로운 과정을 통해 확인할 바에는 다시 1) 그냥 차단하지 않는다, 이쪽이 낫지 않을까?


모두 핑계라는 것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다. 나는 단지 그와 기나긴 이별의 과정을 겪고 있었을 뿐이다. 그를 보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고 또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물론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내 마음속 한가운데에 그를 세워 두고 하나씩 벽돌을 쌓아 올렸다. 너 거기 가만히 있어라. 다신 나오지 마. 하나, 둘... 계속해서 쌓아 올렸다. 하지만 벽을 쌓아 올리는 중간중간 그가 불쑥 “갑자기!”를 외치며 벽돌을 밀쳐냈고 쌓은 시간이 무색하게 그것들은 삽시간에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다시 쌓지 뭐. 하지만 또 그놈의 “갑자기”.


그렇게 해를 넘기고도 반복되었던 만남과 이별을 통해 나는 너덜너덜해졌다. 그리고 어느 날 걸려온 그의 '갑작스러운'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 대단한 연락에 응답할 힘이 더는 나에게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굳이 분류하자면 이번에는 내 쪽에서 그에게 이별을 고한 것이다. 그런데도 후폭풍은 잊지 않고 나를 찾아왔다.


어느 밤에는 그가 너무 그리워서 로드뷰를 통해 그와 내가 걸었던 길을 손으로 따라 걸었다. 검지와 엄지로 그 길들을 늘렸다가 줄였다가 하며 따라다녔다. 그와 그 길을 함께 걸었다고 생각하니 그날의 내가 너무 부러워서 한참을 울어야만 했다. 그만큼 지독했다, M과의 이별은.


더는 못 봐 걷어차 줄래


아니 M, 난 소녀시대 세대라서 이 노래를 좋아할 뿐이야. “You better run run run run” 같이 부르자. 어때?


얼마 전 일로 인해 M의 도시를 방문하게 되었다. 예전이었다면 그 도시의 이름만으로도 그의 생각이 간절해져 아주 몸부림을 쳤을 것이다. 그리고는 ‘회상-저주-수용’의 날을 보내고 퉁퉁 부은 눈으로 그의 도시로 향하는 기차에 올라탔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 ‘않았다’기보단 하지 ‘못했다’에 가까웠다. 그의 생각이 난 것은 그 도시에 거의 다다랐을 때쯤이었다. 아, 여기 M이 사는 곳이지.


그날, 비로소 그가 지나갔다는 것을 깨달았다. M도 지나갔다. 결국 시간 앞에서는 그도 별수 없었던 것이다. 이 희소식을 그와 나누고 싶었다. 바로 그에게 연락했다.


M, ‘갑자기’ 너의 생각이 났어. 잘 지내니? 항상 건강 조심해.


그에게 저주의 말을 많이 내뱉었던 만큼 나는 용서를 구하는 마음으로 그의 만수무강을 바라고 있다. 하지만 M, 욕먹으면 오래 산다는 말이 있어. 알고 있니? 미안하다.


그렇게 M이 지나갔다. 영원히 지나갈 수 없을 것 같았던 암흑과 같은 긴 터널을 드디어 통과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터널 끝에서 U가 손을 흔들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래도 괜찮아.


“M도 지나갔잖아, U 정도야, 그렇지?”

keyword
작가의 이전글흔한 이별 노래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