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iana Grande - thank u, next
구글에서 근무하는 한 직원은 행복 전도사라고 불린다. 그는 단 3초 만에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소개했다. 그의 이름은 잊었지만, 그가 제시한 행복해지는 방법은 기억한다. 사람들은 행복한 일이 생겨야 행복하다고 믿지만, 사실 ‘불행한 일이 없다’는 것이 행복한 상태라고 그는 설명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충치 때문에 고통에 시달릴 때 “와 이 고통만 사라진다면 정말 행복할 텐데”하고 바라면서 정작 충치가 없을 때는 그것이 행복인 줄 모른다는 이야기.
한동안 나에게는 ‘충치’가 없었다. 그의 말을 기억하고 있던 나는 ‘충치’ 없는 시기에 해방감을 느꼈다. 자유롭다. 행복하다. 이별의 고통 따위에 허우적거리지 않아도 된다.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숱한 밤들은 지나갔다. 채워도 채워지지 않던 허기진 마음이 드디어 풍요를 외치고 있다!
하지만 이 행복도 잠시, 충치 없는 상태가 지속되자 단 것이 당기기 시작했다. 인생이 그렇게나 심심했을까. 나는 제 발로 나의 또 다른 이별의 주인공인 U에게 찾아갔다.
Thank you, next
아니, 아리아나 그란데씨 저 아직 준비 안 된 것 같아요. 아니에요, 그만하고 싶어요.
죽을 만큼 앓고 앓았던 M을 극복해낸 나는, “M도 지나갔다”라는 격언을 유행어처럼 외치며 누구라도 만날 준비가 되어있다고 믿었고 어떤 이별과도 맞서 싸워낼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육감이라고 불리는 내 안의 신묘한 감각이 “야 너 그러다가 큰일 난다”하고 외치는 경고신호를 무시했다. 내가 알아서 한다니까 하면서. 알아서 하긴 개뿔.
시작은 사소했다. 어느 봄날, U는 자신의 SNS에 짧은 감상평과 더불어 <500일의 썸머>의 재개봉 소식을 공유했다. 그 영화를 몹시 사랑하고 있던 나는 그가 나의 운명의 상대라고 확신했다. 물론, 그렇게 따지면 내 운명의 상대는 해당 영화의 관객수를 기준으로 우리나라에만 약 30만 명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해 봄, 30만 분의 1의 확률로 그가 내 앞에 나타났으니 그게 운명이 아니면 뭔데?
재개봉과 동시에 그와 나는 같은 날, 같은 영화를 보게 되었다, 아쉽게도 다른 장소에서. 그것을 시작으로 서로 다양한 영화를 추천해주었고 소소한 감상평을 나눴다. 찰칵. 그렇게 그와의 ‘500일’이 시작되었다. 물론 내가 ‘톰’인 줄은 몰랐지.
그 작은 우연을 운명이라 주장하며, 나는 그를 열심히 사랑했다. 그의 모든 것들에 빠져있었으나 특히 그가 가진 작은 다정함에 넋을 놓게 되었다. 이를테면, 엘리베이터에서 마지막까지 남아 모든 사람이 내릴 때까지, 이내 손가락이 하얗게 변할 때까지 ‘열림’ 버튼을 꾹 눌러주는 것과 같은, 그런 그만의 다정함.
“안 내리고 뭐해요?”
안 내리고 뭐하긴요. 감상하고 있습니다. 그 다정함을요.
시간이 지날수록 그에게 점점 더 빠져들었다. 하지만 그날들로 되돌아가 생각해보면, ‘빠지다’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그 표현에는 어딘가 천천히 스며든다는 느낌이 있는데, 그보다는 ‘떨어지다’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딛고 있는 땅이 예상치도 못하게 사라져 높은 곳에서 급히, 아주 빠르게 아래로 떨어지고 있는 상태에 가까웠다.
공식적으로 우리는 아무 사이도 아니었지만 ‘아무 사이 아님’으로 정리되기엔 어딘가 좀 서운한 사이였다. 무척 수상한 밤들이 있었고 오히려 너무 평범해서 의심스러운 낮들이 이어졌다. 흔들림과 흘러감은 우리 둘 사이의 단골 소재였다. 그래, 그가 ‘썸머’였다.
“그러니까 우리는 무슨 관계야?” 톰이 썸머에게 묻는다. 아니 내가 너에게 묻는다.
정확한 시작도 보통의 안녕도 없는 사이었지만 이별의 과정에 ‘스킵’ 버튼을 누를 순 없었다. 그리고 여느 이별처럼 여전히 궁상이었다. 그의 SNS를 염탐했고 흔한 이별 노래를 들으며 그를 생각했다.
Thank you, next
아니, 아니요. 아직 다음 아니고, 여전히 U입니다.
숱하게 이별을 겪어냈지만 다시 찾아온 이별 앞에서 "이런 거 다 겪어봤어, 너도 지나가겠지"하며 흘려보내기 쉽지 않았다.
매일 낮에는 슬픈 노래를 들으며 해당 노래의 주인공이 마치 나인 것처럼 삼류 뮤직비디오를 몇 편이나 찍어댔다. 고마워요, 바이브. 사랑해요, 아델.
그리고 밤이면 SNS에 불특정 다수에게 이야기하는 척하며 ‘잠이 안 와’, ‘힘든 하루’와 같은 말을 게시하곤 했다. 물론 U를 향한 말들이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감당하기 어려운 밤에는 참지 못하고 다음날 후회할 짓들을 저질렀다.
“U씨 자요?”
때 되면 어련히 알아서 숙면을 취할 그에게 연락하고 또 연락했다. 그리고 애꿎은 이불을 걷어차며 더할 나위 없이 후회했다.
그러다 한 연예인이 TV에 나와 했던 조언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그는 오랫동안 담배를 피워왔는데, 담배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위해 담배를 피우지 않되 ‘피우는 척’을 했다고 했다. 이를 통해 중독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 ‘조언’를 활용하여, 나는 그에게 ‘연락하는 척’을 했다. 그에게 보내고 싶은 말을 내가 나에게 보냈다.
“뭐해요?”
“나랑 영화 보러 갈래요?”
“자요?”
“잘 자요”
그와의 연락 충동에서 벗어나기는커녕, 나는 오히려 ‘원웨이 채팅’에 중독되고 말았다. 나는 매일 그와 연락했다. 정확히는 나 자신과. 매번 ‘읽씹’을 당했으나 어차피 혼잣말이니 손해 볼 것은 없었다. 때때로 쓸쓸해진다는 것을 빼면. 사실 때때로 보다는 자주.
가끔은 오직 한쪽으로만 흐르던 대화가 극적인 마주침을 겪기도 했다. U는 이따금씩 “아 거기 아직 있었어요?”하는 식으로 나를 찾아왔다. 그렇게 끝날 듯 끝나지 않고, 우리 두 사람은 두 번의 계절을 함께 맞이했다(정말 500일의 썸머였잖아).
하지만 또다시 찾아온 계절의 변화에 고개를 들어보니 모든 것이 끝나 있었다. 그와의 여름이 끝나고 드디어 가을이 온 것이다.
사랑의 끝이 항상 이별은 아니며 이별의 끝이 관계의 끝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U와 나는 친구라고 말하긴 뭐하지만 그래도 2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건너편의 서로에게 열심히 손을 흔들며 응원해 주는 사이 정도로는 남을 수 있었다.
U, 너의 말이 맞아. 우리는 절대 안 되겠지. 그래도 내가 언젠가 너에게 했던 말을 기억해줘.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은 ‘싫어한다’는 말이 아니야. 그러니까 우리가 마치 연인처럼 서로 ‘좋아하는’ 사이는 될 수 없더라도 최소한 우리 서로 싫어하지는 말자. 단지 서로에게 친절한 사이로 남자. 지금처럼.
다시 ‘충치’ 없는 시기가 찾아왔다. 상실, 슬픔, 분노, 허무, 용서 그리고 반복되는 그리움. 이 모든 감정들을 뒤로한 채, 내 마음은 회복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자유롭다. 행복하다.
그렇다면, 이제 다시 힘을 내야겠다.
“Thank you, next (고마웠어, 자 그다음)”
내 마음이 보이진 않지만 그 녀석이 어디선가 내 욕을 하고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