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서도 삼킨 말
2000년 대, 꽤 오래 만나던 여섯 살 연상의, 특별할 것 없는 사람이 불현듯 무언가 떠오른 듯, 무심히 물었다.
“너 아빠가 안 계셔?”
순간 시간이 멎는 것 같았다. 가? 라니?
한 글자가 목구멍에 가시처럼 걸렸다. 그 사람은 눈, 코, 입처럼 당연히 있어야 할 게 나에게 없어서 놀란 듯하다. 카페 창밖으로 거세게 떨어지는 봄비 소리는 사라지고 그 질문만 크게 울렸다.
어색하게 입술 근처로 가져간 머그잔이 미묘하게 떨렸다. 자연스럽게 두 손으로 잡았다. 쌀쌀한 날씨라 참 다행이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속으로 생각했다. '없는 걸까, 있었는데 사라진 걸까?'
나이 많은 베짱이 같던 그에게는 세 남매를 거뜬히 배부르게 먹이고 마음껏 공부시킬 수 있는, 아니 그냥 아빠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둘 다 어린 나이였지만 그게 세상의 전부라고 믿는 그 사람이 참 오죽스럽다.
“집에서 안 좋아할 것 같아.”
그가 덧붙인 말은, 내 심장을 움켜쥐는 것 같았다. 입을 닫은 채 한쪽 입꼬리가 올라가며 웃음이 났다. 오미자 아닌 백미자 같은 다양한 맛의 기분이 들었다. 눈물은 왜 나지? 자존심이 철퍼덕 떨어졌나?
아니, 그 순간 엄마 얼굴이 떠올랐다.
어둠을 무서워하던 엄마는 언젠가부터 우리가 학교 가기 전에, 짧은 시간에 할 수 있고 운동도 되는 일이라며 신문 배달을 했다. 새벽에 엄마가 나가면 난 서늘하고 어두운 공기 안에서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그래도 계속 누워있다.
팅.
아파트 10층 복도에서 울리는 엘리베이터 소리가 나고 나면 수십 초 뒤 이어지는 창 밖의 소리.
드르드르르.
아파트 라인 문 밖으로 빠져나가는 엄마는 보도블록 위로 카트를 끌었다. 그러면 난 발딱 일어나 창문으로 얼굴을 빼꼼 내밀고 엄마를 내려다봤다. 이유는 없었다. 그냥 보고 싶었다. 학교도 가야 하는데 안 자는 게 들킬까 봐 숨어서 혼자 봤다.
새벽 집 앞 골목길을 걸어가는 모습. 참 작다. 참 크다.
해가 뜨고 두세 시간이 지나면 우리가 눈 뜨기 전에 엄마는 돌아왔다. 할머니랑 할아버지 아침을 챙기고, 분주한 손길로 우리를 챙겼다. 여느 드라마랑 다르지 않은 따뜻하고 시끌벅적한 그런 아침이었다.
그런 아침 장면만을 기억하라고 엄마는 어둠 속에서 뒤에서 혼자 삼켰다.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날카로운 바늘이 목덜미를 뚫고 들어오는 느낌도 들었던 것 같고. 목이 메어서 그랬나? 차가운 무언가가 목줄기를 타고 흘러내리는 것 같기도 했다. 이런 날 봤는지 못 봤는지 그 사람은 이어서 얘기했다.
“우리 누나도 아빠 없는 남자랑 결혼했는데… 나까지 그러면 안 될 것 같아.”
응..?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그 사람은 알고나 있었을까 싶다. 그의 누나는 수 년 전에 결혼해 아이도 낳았다. 그 사람은 이게 자신의 부모님에게 불효를 짓는다고 생각한 것 같다. 보통 부모는 자식 중 누군가에게 감정을 배출하니까.
아이러니하게도 그 순간 내가 마음 아팠던 건 그의 매형. 이미 그와 가족이 되어버린 그의 매형이었다.
알았다. 사람에게서 받는 상처는 멀리서 오지 않는다. 가까운 이의 입술, 짧은 한 문장이 가장 깊게 파고든다.
그 사람을 탓하지도, 그와 잠시라도 함께 있었던 나 자신을 미워하지도 않기로 했다. 그것까지 내 잘못으로 돌린다면 너무 잔인하니까.
헤어지고 나서 집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엄마가 아파할 것이 뻔했으니까. 그저 마음속에 접고 접어서 조용히 봉인했다.
나는 더 이상 모든 문을 열고 들어가 하나하나 슬픔을 만져보고 나오려 하지 않는다. 아이쇼핑하듯 상처를 진열하고 싶지도 않다.
나는 왜 그 자리에서 그 얘기를 하지 않았을까? 뒤늦게 곱씹어본다.
생각해 보면,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아빠 이야기를 밖에서 꺼내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 당시만 해도 친구들과는 보통 엄마랑 “어디 갔다”, “뭘 샀다”, “여행했다” 같은 말을 하는 건 흔했지만, 아빠 이야기를 꺼내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래서 나 역시 더더욱 조용히 넘어갔던 것 같다. 굳이 먼저 입을 떼는 게 어색하고 불편했기에, 자연스럽게 침묵을 선택했다.
내겐 그 침묵조차 하나의 방어였고, 동시에 삶을 이어가는 방식이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