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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긋 Dec 02. 2024

무에타이,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요

 2024년 달력도 이제 한 장밖에 남지 않았다. 벌써 12월의 첫 번째 월요일이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의 흐름이 빨라진다더니 절대적으로 공감하는 말이 되었다. 요즘 초등학교 담임교사로서 가장 바쁜 시즌을 보내고 있다. 바로 학교생활기록부를 입력하는 기간이기  때문이다. 6교시까지 수업을 하고(오늘 한 시간 들어있는 과학 교담 시간은 이맘때 더욱 소중하다) 퇴근까지 컴퓨터를 들여다보며 성적 처리를 하였다. 중간에 기초학력 교실을 한 시간 운영하여서 다른 요일보다 확실히 일이 많기는 했다. 오늘은 일부 학생의 행동발달사항 및 종합의견 작성을 했고 내일은 이 부분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수행평가 결과를 그때그때 입력해 놓은 나 자신을 칭찬하며 교과 성적 입력을 시작할 마음을 먹으니 어느덧 퇴근 시간이다. 해야 할 일은 많지만 '내일의 나'를 믿기에 퇴근을 하고 곧장 집으로 향한다. 간단히 집안 정리를 한 후 무에타이에 갈 준비를 한다. 겨울이라 긴 바지(무에타이 할 때 긴바지는 정말 쥐약이었다. 다들 짧은 바지 입고 하는 이유를 알아버렸다)와 무에타이라고 써진 검은색 반팔티를 챙겨 입고 바로 체육관으로 간다.


 체육관에 들어서자마자 관장님이 나를 보고 한마디 하신다.

"오늘따라 굉장히 피곤해 보이십니다. 주말에 일을 많이 하셨나요?"

 오늘 화장을 하지 않고 출근하기도 했고 실제로 컴퓨터를 많이 보느라 피곤하기도 하였다. 얼굴만 보고 바로 내 상태를 알아보시는 관장님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대답을 딱히 하지 않고 힘없는 웃음을 짓고 바로 스트레칭을 하였다.


  "살 그만 빼셔야겠어요!"

  관장님이 또 한마디 건네신다. 살이 하나도 빠지지 않았는데 나이가 들어갊에 따라 얼굴살이 빠져서 전체적으로 빠져 보이는 건지 나를 볼 때마다 살이 많이 빠졌다고 하신다. 이 말을 듣고 내 뱃살을 움켜쥐며 관장님께 말씀드렸다.

 "몸무게는 그대로예요. 뱃살도 더 나온 것 같고요."

 이 놈의 뱃살을 정말 어쩌냐. 오늘 성적처리한다고 초콜릿이랑 망고젤리, 믹스커피를 왕창 먹은 사람이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그래도 이 시기를 잘 버티기 위해서 입의 달콤함을 포기할 수 없다. 특히 믹스커피는 나의 절대적인 원동력이 되고 있다.

 

 스트레칭을 하고 수련 시간이 되니 사람들이 모인다. 시작부터 피곤하다. 월요일인데 오늘 일도 많이 해서 더 피곤하다. 피곤하다고 생각하니 더 피곤했다. 나와는 달리 쌩쌩한 다른 사람들(10-20대의 남학생)의 힘찬 기합 소리와 함께 기초 달리기 루틴이 시작되었다. 체육관을 시계방향으로 5바퀴, 반시계방향으로 5바퀴 돌았다. 바로 체육관을 왕복 3번, 6번을 뛰었다. 시작부터 힘들다. 아직 진짜 힘든 달리기는 시작도 안 했는데 큰일이다. 3개월이 지나 4개월째 체육관을 다니는데 3분씩 2라운드를 뛰는 달리기는 도무지 적응이 안 된다. 그동안 단 한 번도 달리기를 할 때 옆으로 나오거나 쉬지 않았는데 오늘은 두 번째 라운드 달리기를 쉬고 싶다는 생각이 나를 엄청 유혹했다. 그때마다 나와 같이 뛰는 사범님의 기합소리에 죽을힘을 다해 겨우 기초 달리기를 마쳤다. 달리기를 3분씩 할 때와 플랭크 1분을 할 때면 세상 시간이 다 슬로우로 가는 느낌이다.


 달리기가 끝나면 바로 기초 체력 단련 시간이다. 오늘 운동 파트너는 리액션이 너무나 좋은 사범님이다. 악마의 조교 같은 냉철한 중3 교범님이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윗몸일으키기를 할 때 관장님이 숫자를 세주시는데 예전에는 두 박자에 한 번씩 했다면 오늘은 거의 박자가 맞아 한 박자에 한 번씩 윗몸일으키기를 할 수 있었다.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시는 사범님 덕분이다. 여전히 칭찬과 격려를 받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가 나의 내면에 있나 보다. 40대의 아줌마도 칭찬을 받으니 순간적으로 힘이 솟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내가 무리해서 운동을 하는 것 같았는지 관장님께서 전체적으로 한 말씀해 주신다.


 "훈련을 할 때 자신의 한계를 끌어내며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컨디션에 맞게 운동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고 쉬고 싶을 때 쉰다고 표현을 하는 것도 운동하는 방법입니다. 자신을 표현하고 드러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움직임이나 얼굴을 보면 전체적인 상태를 알 수는 있지만 부분적으로 안 좋은 것은 본인만 느낄 수 있기 때문에 표현을 하시기 바랍니다. 표현하지 않으면 상대방이 절대 알 수 없습니다. 상대방이 그냥 알아주기를 원하면 안 되고 본인이 표현을 해야 합니다!"


 관장님의 이야기를 듣고 내가 지금 다른 때보다 오버페이스로 가지는 않는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중간중간 쉬러 나오거나 물을 마시러 나오는 것도 창피하거나 상대방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자신의 몸 상태를 잘 파악하고 이에 맞게 운동을 해야 꾸준히 할 수 있는 것이다. 킥 연습을 할 때 상대방이 강하게 차면 쉴드를 허벅지에 대고 있어도 굉장히 아프다. 무에타이 초반에는 아파도 말하지 않고 참아서 다리에 멍도 많이 들었는데 이는 상대방과 나를 위해서도 좋지 않았다. 이제는 상대방이  너무 강하게 차서 내가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고 상대방이 그 힘을 조절할 수 있게 표현을 한다.




 월요일은 펀치를 하는 날인데 오늘따라 발이 무겁고 하고 나면 심장 박동수가 다른 때보다 상승하는 것 같아 중간에 밖으로 나와 잠시 쉬었다. 오늘 처음 체험하러 온 대학생 여자분도 나와있었다. 운동량에 사뭇 놀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시원한 바람을 좀 맞고 잠깐의 스몰토크 후 돌아와서 다시 참여하니 훨씬 괜찮아졌다. 욕심을 부려 중간에 쉬지 않고 그대로 진행했다면 굉장히 힘들었을 것이다. 내 몸 상태는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으므로 나를 아끼는 마음을 가지고 나 자신을 잘 챙겨야 한다. 누가 나를 챙기겠나?


 월요일이어서 힘든 것이었나? 요즘 일을 많이 해서 힘든 것이었나? 오늘은 확실히 무에타이 운동이 힘들었다. 하지만 흘린 땀만큼 오늘도 해냈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무에타이 운동을 시작한 후로 밤에 잠이 너무 잘 온다. 오후에 커피를 마셔도 잠이 잘 온다. 카페인에 취약한 나였는데 무에타이 운동은 그 강한 카페인도 이겨버린다.


 무에타이 운동을 하면서 건강한 몸을 얻는 것은 당연하지만 자연스레 건강한 마음도 따라오는 것을 느낀다. 젊은 사람들의 건강하고 활기찬 에너지가 좋고, 나의 몸을 이해하고 발견하고 아끼고 사랑하는 모습을 보기도 한다. 먹는 것이 그대로고 군것질도 많이 하고 있어 다이어트는 하나도 되지 않고 있지만 하체의 근육이 아주 조금씩 늘어가는 걸 확인하는 것도 매우 재미있는 일이 되었다.


40대 아줌마의 무에타이 사랑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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