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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긋 Dec 10. 2024

무에타이, 메서드 훈련

훈련은 뜨겁게! 실전은 냉철하게!


 오늘도 어김없이 무에타이의 뜨거운 훈련이 시작되었다. 관장님이 항상 하시는 말씀 중 하나는 '훈련은 체력의 한계를 맛보고 잠재력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죽을힘을 다해야' 하고, 그에 반해 '실전은 훈련의 80% 정도로 여유롭게 하라'는 것이다. 몸은 잘 따라주지 않지만 관장님 말씀의 의도가 이해가 되었다. 평소에 훈련을 할 때 최선을 다해야 실전에서 자신의 기량이 나온다는 뜻인 것 같았다. 실전을 훈련처럼 뜨겁게만 해버린다면 오히려 호흡이 조절 안되고 거리를 가늠하지 못하여 상대방에게 맞을 수도 있다. 아직 무에타이 삐약이 훈련생이지만 관장님의 말씀 하나하나를 가슴 깊이 새기며 훈련하고 있다.  


 기본 달리기와 초반의 체력 훈련은 우리 체육관의 기본 루틴으로 매일 똑같지만 중반의 체력 훈련부터는 요일마다 다르다. 관장님이 수련생에게 원하는 근육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맨몸훈련을 시키고 있는데 엄청 다양해서 그 창의력에 한 번씩 감탄하고는 한다. 오늘 체력 훈련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훈련은 '상대방 뛰어넘기'이다. 힘들기도 했지만 매우 재미있었다. 상대방이 몸을 웅크리고 엎드리면 나머지 한 명은 상대를 뛰어넘는다. 바로 상대는 웅크린 몸을 풀어 산 모양으로 공간을 만들어야 하고 그 안으로 다른 사람이 재빠르게 들어가야 하는 훈련이다. 상대방을 뛰어넘을 때 모둠발로 뛰어도 되고, 한 발씩 건너가도 된다. 혹시나 웅크린 사람의 등을 밟을까 봐 나 같은 경우는 뜀틀을 하듯이 양다리를 옆으로 벌리며 상대를 넘어갔다. 처음으로 한 훈련이라 정신도 없고 이게 맞는지 의심이 들었으며 나의 모양새가 엄청 우스꽝스러울 것 같았다. 10번의 동작 끝에 이번에는 내가 웅크렸다가 산 모양으로 만들었는데 상대방이 걸리지 않도록 공간을 크게 만들어 주는 게 여간 어렵지 않았다. 

사진 출처: 네이버 블로그 Gyu리지널

 

 오늘도 역시나 '할 수 있다'라는 에너지를 끌어 내주시는 사범님의 열정적인 격려와 응원에 힘입어 10회를 잘 뛰어넘고, 10회를 잘 웅크렸다가 산 모양도 잘 만들 수 있었다. 팔굽혀펴기도 어찌나 다양한지 이모카세의 요리보다 더 다양한 느낌이다. 보통은 팔굽혀펴기 40회, 손 모아서 20회를 한다. 나는 무릎을 대고 하지만 처음에 체육관에 왔을 때보다 살짝 더 내려가고 개수도 점점 채워지고 있다. 이후에 상대방이 뒤에서 내 다리를 들어주면 체육관을 짧을 방향으로 4바퀴씩 돈다. 처음에는 반바퀴도 못 돌았지만 오늘 처음으로 두 바퀴에 성공하였다. 어제보다 나은 나를 바라보며 뿌듯한 마음이 든다. 어제의 나는 하지 못했지만 오늘의 나는 해냈다. 설사 어제 되었던 것이 오늘 안된다고 하더라도 누군가가 말했듯이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고 더 중요한 것은 꺾이더라도 그냥 하는 마음이다. 


 운동 파트너는 훈련 도중 바뀌기도 하는데 사범님과의 기초 체력이 끝난 후 우리 체육관의 고문님과 함께 펀치 연습을 하였다. 고문님은 체육관을 굉장히 오래 다니신 중년의 남성분으로 굉장히 친절하게 하나하나 잘 알려주시고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으신다.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하든 다 받아주시고 자세도 잘 고쳐주셔서 평소에 감사한 마음이 가득하다.


 "자, 지금부터 5라운드 메서드를 하겠습니다."


엥? 메서드? 메서드 연기인가? 무에타이에서 처음 들어 보는 용어였다. 관장님의 말씀에 어리둥절하고 있으니 고문님께서 "스파링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라고 하셨다. 실전처럼 하는 스파링은 내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으나 그걸 지금 한다고? 당황했지만 바로 정신을 차리고 없던 힘을 짜내기 시작했다. 나중에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실제 스파링보다는 한 단계 낮은 약속된 스파링이라고 생각하면 된다는 것을 알았다. 실제로 때리지는 않고 서로를 배려하면서 그동안 배운 기술을 다 활용하는 훈련이었다. 


"메서드가 뭐예요?"

"스파링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하고 싶은 거 다 하세요!"

"와, 저 처음 해봐요!" 


 고문님의 말씀대로 킥을 제외한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동안 내가 배운 건 원투 잽, 훅, 스트레이트, 피하기 정도인데 실전처럼은 하되 상대방을 세게 때리면 안 되는 것이 메서드였다. 처음에는 뭔지 모르고 무턱대고 하다가 초반에 체력을 다 소진시켜서 1라운드부터 너무 힘들었다. 라운드 당 3분인데 이걸 5라운드를 한다고? 1,2 라운드는 정신력으로 버티다가 3라운드는 체력적으로 한계가 느껴진 걸 고문님이 아시고 중간에 1분을 쉬게 해 주셨다. 펀치여서 주먹이 중요하지만 상대방에게 맞지 않기 위해서는 발의 움직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오른쪽 발뒤꿈치를 항상 세우고 날렵하게 움직이고 싶었지만 몸이 맘처럼 따라주지 않았다. 고문님의 주먹이 한 번씩 들어올 때면 바람소리가 식-쉭- 나면서 무서웠다. 눈을 깜빡이지 마라고 하는데 이건 나의 의지가 아니다. 그냥 주먹을 보지 못하고 눈부터 질끈 감아버린다. 라운드가 끝날 때마다 관장님과 고문님이 너무나 잘하고 있다면서 많은 응원을 해주었다. 숨이 턱끝까지 차고 이게 언제 끝나는지 시계만 들여다보았는데 끝나고 나니 너무나 재밌었다. 내 안의 야생성이 조금은 꿈틀거리며 나오는 것 같았다. 40대지만 나도 내 나이를 이겨보고 싶었다. 


 메서드훈련 중간중간 나도 모르게 한 번씩 힘을 조절하지 못하고 고문님 얼굴을 살짝 쳤는데 남을 때리는 경우는 처음이라 매우 놀랐다. "아이고, 죄송합니다!"라고 고문님께 순간적으로 말하니, "괜찮습니다! 더 하세요!" 라며 말씀을 해주셔서 감사했다. 


 기진맥진. 훈련에 열심히 임하는 날이면 눈에 초점이 없어지고 한동안 멍을 때려야 집에 갈 힘이 생긴다.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다른 사람들이 정말 대단해 보인다. 수련이 끝나고 관장님이 정리 말씀을 해주셨는데 귀에 들리지 않을 정도로 오늘 훈련은 나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쏟아 부은 만큼 집에 가는 발걸음은 가볍고 나 자신이 너무나 자랑스럽다. 


 무에타이를 맨 처음 시작했을 때 관장님이 하려는 이유를 물어보았다. 그때는 다이어트와 체력 증진이 목적이었다. 이제는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나 자신을 지키고 싶다. 누군가와 싸울 성격도 못되고 상황도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사람 일은 장담할 수 없다. 


"누군가와 싸울 일이 있을 때는 무조건 도망가세요. 하지만 싸울 상황이 되면 맞지는 말아야 합니다. 남을 때리거나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보호하고 지키기 위해 수많은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당장에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 우리 몸은 변화하고 있습니다." 


 몸이 건강해지고 체력이 길러지니 정신도 더 단순해지는 것 같다. 내가 지향하는 단순한 삶을 위해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생각하고 정진해야겠다. 이제 4개월 차 무에타이를 하는 아줌마지만 인생은 정말 신나고 재밌고 좋은 것들이 가득하다는 것을 운동 덕분에 깨닫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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