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3번 퇴근 후 무에타이 체육관에 간다. 벌써 4개월째 꾸준히 하고 있다. 다이어트가 목적이었지만 오히려 몸무게의 숫자는 무에타이를 시작했을 때보다 커졌다. 하지만 근육이 조금씩 붙어가고 체력도 좋아짐을 느끼고 있기에 욕심부리지 않고 잘 다니고 있다.
퇴근 후 집에 들러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서둘러 무에타이 체육관으로 향했지만 도착하니 벌써 관장님의 말씀이 시작되었다.
"이 타임이 온도 차이가 제일 많이 나는 시간이어서 운동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몸에 열을 끌어올리기 위해 먼저 뛰겠습니다."
우리 체육관의 루틴인 기초 달리기가 시작되었지만 오늘은 좀 늦어서 따로 몸을 풀고 뒤늦게 달리기에 합류하였다. 오늘 운동 메이트는 사범님이다. 체육관을 직선으로 3번, 6번씩 가볍게 뛰고 3분씩 2라운드를 뛴다. 4개월째 하고 있지만 할 때마다 힘들고 도무지 적응이 안 되는 달리기다. 평소에 3분씩 뛰기를 할 때 한 라운드 당 25번 전후해서 뛰지만 요즘은 경기 비시즌이라 그런지 사범님이 천천히 뛰어서 20번만 왕복을 했다. 덕분에 하나도 힘들지 않고 뛸만하였다.
맨몸으로 체력 다지기를 한 후 상대방 왼발 터치를 하였다. 놀이처럼 하는 훈련인데 발의 움직임을 빠르게 만들기 위한 것이다. 왼발을 앞으로 한 상태에서 상대방의 왼발을 터치해야 하는데 평소와는 달리 글러브를 끼지 않고 하였다. 내 수준에 맞게 사범님이 조절을 하긴 하지만 사범님의 왼발을 한 번이라도 터치하는 게 소원이다. 어느덧 얼굴에서는 땀이 쭉 흐르고 땀이 눈으로 들어가기 전에 티셔츠로 훔쳐낸다. 악바리의 기질로 사범님의 왼발을 터치하려고 한발 들어가는 순간 역으로 공격을 당해 나의 왼다리를 내주고 만다. 아쉬워하며 방심하는 순간에 사범님이 또 한 번 들어온다. 이기고 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나의 다리를 순발력 있고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중점 요인이므로 항상 재미있게 참여한다.
이후 쭈그려 앉아 상대방의 무릎이나 엉덩이를 땅에 닿게 하는 훈련을 하였다. 처음은 아니었지만 오랜만에 하는 훈련이고 쭈그려 앉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너무나 어렵다. 그냥 쭈그려만 앉아도 엉덩이가 무거워 뒷꿈치를 들지않으면 혼자 스스로 엉덩방아를 찧기 일쑤인데 내 몸도 방어를 하면서 상대방도 굴복시켜야 한다. 보통은 사범님이 많이 봐주면서 하지만 오늘은 웬일인지 조금만 봐주면서 훈련에 진심인 느낌이었다. 나는 여기저기 도망 다니며 들어갈 타이밍을 주시했지만 사범님이 나의 발목을 잡으면서 금방 내 엉덩이가 바닥에 닿았다. 이대로 물러날 수 없어 사범님을 머리로 밀고 억지로 엉덩이를 닿게 하려고 애를 썼지만 코어힘이 어찌나 강한지 절대로 나의 수에 걸려들지 않았다. 그 뒤로도 전의가 상실될 만큼 나의 전적인 패배로 끝났지만 정말 재밌었다.
킥을 연습하는 요일이라 실드를 빠르게 10번씩 4세트 총 40번의 로우킥을 찼다. 양발 다해야 하므로 총 80번의 킥을 빠르고 강하게 차야 한다. 허리를 많이 돌리고 가드를 한 상태에서 한쪽 팔을 내리며 리듬에 맞게 치는 것이라 굉장히 빠르게 끝난다. 이후에도 무릎으로 차는 킥과 미들킥을 연습하였는데 중간중간 호흡조절을 잘해야 한다.
갑자기 관장님께서 사범님과 내쪽을 보며 '피가 납니다!'라고 하셨다. 하얀색 바닥을 보니 붉은 피자국이 군데군데 나있었고 나의 오른쪽 엄지발가락 발톱 쪽에서 피가 나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걸 보니 발가락이 아려왔다. 킥 연습을 할 때 잘못 찼나? 언제 다쳤는지 기억이 나질 않고 심지어 아프지도 않았다. 사범님이 놀라면서 나를 약품상자가 있는 곳을 안내해 주었고 바로 연고를 바르고 밴드를 붙였다. 결국 피를 보는구나. 예전 중 3 교범님이 무에타이 할 때 손톱과 발톱을 짧게 자르라고 조언을 해주어서 항상 짧게 잘랐는데 다 이유가 있었다. 발톱이 살짝 들려 아팠지만 밴드를 붙이고 다시 훈련에 집중하였다.
"누님, 집중력이 대단하십니다. 다친 줄도 모르고 하셨네요."
사범님의 말씀을 들으니 정말 아프고 다친 줄도 모르고 계속하였던 내가 신기했다.
그 사이 같이 훈련을 하던 초등학생들이 사범님과 함께 아래층으로 내려가 남은 훈련은 고문님과 하였다. 저번에 이어 2번째 메서드(스파링 가벼운 버전)를 하였다. 3분씩 총 5라운드를 진행하였다. 첫 3라운드 메서드에 대한 기억은 체력적으로 너무나 힘들었는데 이번에는 5라운드라니 당황했다. 타이머가 시작을 알리고 펀치로만 메서드를 시작하였다. 체력 배분을 위해 온 힘을 다하지는 않았지만 나름 최선을 다해 고문님을 향해 잽, 스트레이트, 훅을 날렸다. 피하기도 굉장히 중요한데 그러기 위해서는 거리감을 익히는 것이 우선이다. 그동안 몇 번 해왔던 터라 내가 상대방을 치기 위해 한발 들어가는 순간 내가 오히려 맞을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거리를 잘 유지해야 한다. 상대방이 들어오면 그 순간을 노리고 주먹을 뻗어야 한다. 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맞지 않고 잘 회피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발이 멈춰있으면 안 된다고 관장님이 옆에서 계속 말씀해 주신다.
어느덧 1라운드, 2라운드가 지나고 아직은 버틸만한다. 그전에는 2라운드에서 나가떨어진 것 같은데? 3라운드도 무사히 지나갔다. 관장님 말씀으로는 지금부터 진짜 정신력과 체력 싸움이 시작된다. 라운드가 끝날 때마다 30초의 시간이 주어지는데 이때 호흡 조절을 잘해야 한다. 호흡조절을 위해 코로 숨을 깊이 들이쉬고 입으로 내뱉는 나를 보며 호흡조절을 잘하고 있다고 칭찬을 해주신다.
"오, 이제 호흡도 잘 조절하시네요. 살려면 자연스럽게 호흡을 조절하게 됩니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는데 호흡조절이 자연스럽게 되는 것도 신기하였다. 살려고 본능적으로 하게 되나 보다. 욕심을 부러 달려들기만 하면 오래 하지 못하지만 내 호흡을 느끼며 조절하는 것이 모든 운동에서 중요한 것 같다. 인생도 마찬가지겠지.
나머지 4라운드와 5라운드도 엄청 힘들었고 부상이슈도 있어 발가락이 신경 쓰였지만 고문님이 많이 봐주셔서 무사하게 잘 끝냈다. 한 번이라도 운이 좋게 고문님을 치면 너무나 잘하고 있다면서 내 안의 살쾡이(관장님의 표현이다)를 자극하신다.
"3분씩 5라운드를 쉬지 않고 하신 것은 체력이 엄청 좋으신 겁니다! 오늘 너무 잘하셨습니다!"
관장님의 칭찬을 들으니 기분이 좋다. 정말 체력이 길러진 것 같다. 땀을 진탕 흘리고 상호 간의 인사를 예의 바르게 한 후 운동을 마무리한다.집에 가기 전 한동한 멍을 때린다. 그만큼 훈련에 열심히 참여했다는 뜻이다. 그 사이 아래층에서 축구를 하고 왔다며 과자를 하나씩 들고 오는 아이들이 정말 귀엽다. 머리가 땀으로 젖어있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집에 가서 샤워하고 밥 먹으면 꿀 맛이겠지?
무에타이 초반에 정강이와 발등에 수많은 멍이 들었었다. 요즘에는 킥하는 법이 조금은 나아졌는지 멍은 들지 않으나 결국에 피를 보고야 말았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남편은 무에타이를 당장에 그만두라고 한다. 하지만 부상이 무서워 무에타이를 하지 못하게 된다면 나중에 할머니가 되어 엄청 후회가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