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우리 구의 가족센터에서 '부부의 봄'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는 포스터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일반 부부를 대상으로 진행된 프로그램으로 재미있게 참여했던 기억이 있다. 더욱이 남편과 오롯이 둘만의 시간을 갖게 되어 새로운 느낌이었다. 아이가 커가면서 둘만의 물리적인 시간이 자연스레 많아지고 이를 좀 더 재밌고 의미 있게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시기에 좋은 프로그램을 만나게 되어 매우 뜻깊었다. 2024년를 마무리하며 가족센터에서 1년 동안 다양한 프로그램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수기를 공모하였고 마감일 하루 전에 급하게 써서 낸 글로써 수상을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운이 좋게도 장려상을 받아 너무나 좋았다. 공모전에 낼 수기를 작성하며 추억을 떠올리니 많은 분들께 정말 감사하였다.
수상자들과 함께 사진 촬영
제목: 다시 한번, 부부의 봄
“자기야! 이번에 가족센터에서 ‘부부의 봄’ 프로그램 신청했으니 이번 주 토요일에 같이 가자.”
평소에도 아내인 내가 체험 프로그램을 신청하고 통보식으로 스케줄을 알려주면 남편은 약간 투덜 대지만 대체적으로 잘 따라오는 편이다. 남편은 프로그램 내용도 묻지 않고 시간이 맞으면 다양한 활동을 나와 곧잘 해왔다. 늘 그렇듯 이번에도 남편은 아무 생각 없이 꿀 같은 주말 아침, 내용도 확실히 모르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길을 나섰고 평소 때처럼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는 듯 보였다. 하지만 ‘부부의 봄’ 3회기를 끝내고 난 후 남편은 어떤 생각이 들었던 건지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이전과는 미묘하게 달라져 있었다. 특히, 1회기를 마치고 나서 상대방에 대한 감사함과 미안함이 사랑이라는 또 다른 형태임을 깨닫는 순간 나 또한 남편에 대해 애틋한 마음이 평소보다 조금 더 들었다.
다양한 체험행사 정보를 알려주는 인터넷카페에서 우연히 ‘2024 부부역할지원-부부의 봄’에 대한 포스터를 보게 되었다. 일반가족 부부가 대상이었고 프로그램 내용이 너무나 훌륭하여 보는 순간 신청하지 않을 수 없었다. 1회기는 ‘동상이몽 너는 내 운명(수지 애니어그램)’ 2회기는 ‘부부애(愛) 발견- 부부 스포츠 활동’ 3회기는 ‘부부 추억 네 컷- 영화관람 & 인생 네 컷’이었다.
3회기 중 우리 부부에게 가장 인상이 깊었던 프로그램은 단연 1회기에 진행되었던 수지 애니어그램이다. 아내인 나는 그동안 애니어그램에 대해 막연하게 알고는 있었지만 남편에게는 생소한 내용이었다. 프로그램이 진행이 되었던 서구 OO마을의 한 심리상담센터에 우리 부부가 6쌍의 부부 중 첫 번째로 도착하였다. 주차하기도 어렵고 오르막길이 심한 곳이었지만 동네가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안으로 들어서자 상담 선생님과 가족센터 담당자분이 반갑게 맞이하여 주셨고, 다양한 간식들과 차가 준비되어 있어 시작도 하기 전에 대접받는 기분이었다. 다른 부부들을 기다리는 동안 간식을 먹으며 남편과 여기저기를 눈으로 둘러보았다. 다른 부부들도 제시간에 오고 함께 맛있는 차를 마시며 자연스럽게 아이스 브레이킹을 하였다. 총 2교시로 진행이 되었는데 1교시는 상담선생님의 간단한 이론 설명과 가족 간의 따뜻한 관계에 대해 들을 수 있었고, 약간의 쉬는 시간을 갖은 후 대망의 수지 애니어그램을 통해 서로의 다름을 엿볼 수 있었다.
나의 본질을 알아보는 활동을 통해 나답게 살고, 상대방을 더 이해할 수 있는 아주 귀한 시간이었다. 그동안 아내인 나와 남편은 성격이 매우 극과 극으로만 생각하여 맞는 것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며 문제가 생겼을 때 때로는 상대방의 탓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최소한 서로의 다름을 머리뿐 아니라 마음으로까지 이해할 수 있었고 상대방의 본질을 더 존중할 수 있게 되었다. 나를 그냥 따라온 남편도 매우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집중을 하였고 아내인 나의 평소 행동을 수지애니어그램과 연결하여 생각해 보려는 모습에서 고마운 마음이 절로 들었다. 나 또한 내 입장에서 평소 답답한 남편의 행동이 우주의 기운에서부터 오는 것임을 알고 남편을 더 받아들이고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상담사 분이 ‘색깔의 여왕’이라는 제목의 그림책을 읽어주시니 순간이지만 동심의 세계에 빠진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색깔나라 여왕님이 다양한 색깔을 만나면서 자신을 알아가고 받아들이며 인정하는 과정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수지애니어그램 또한 색깔을 이용하여 색이 주는 힘과 에너지를 강조하였는데 자연스레 나의 본질의 색깔을 알아가는 과정도 재밌었다.
“책을 읽으며 가장 마음에 와닿는 페이지를 부부가 함께 찾아보세요”
상담 선생님의 말씀대로 내가 책을 한 페이지씩 넘기며 남편과 보았고 내가 먼저 마음에 와닿는 부분을 골랐다. 남편에게도 고르라고 했더니 나와 같은 페이지를 말했다. 순간 성의 없게 그림을 고른 남편에게 나도 모르게 쓴소리를 하였다.
“본인이 원하는 그림을 골라야지!”
“나도 이거야.”
“그럼, 왜 이걸 골랐냐고 물어봐야지!”
순간적으로 ‘부부의 봄’이 ‘부부의 겨울’이 되어 버렸다. 목소리가 커진 우리 부부를 보며 상담선생님이 웃으시면서 “여기서도 부부들의 성격이 나오죠!”라고 하셨다. 평소 나에게 별다른 관심이 없는 것 같은 남편에 대해 나도 모르게 서운한 마음이 튀어나온 것 같았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내가 하고 싶은 프로그램에 군말 없이 와주고 함께 시간을 보내준 것만으로도 너무나 감사한 일이었다. 이런 부부관계 개선 프로그램에 와서 노력을 한 것 자체가 고마운 일인데 욕심을 부린 내가 조금은 부끄럽고 남편에게 미안해졌다.
이후 타로카드를 통해 부부 상담이나 고민을 들어주는 시간을 가졌을 때 이 또한 너무 신기해서 빠져들었다. 시간 관계상 용감한 부부 2쌍이 나와 고민을 말하고 타로카드를 뽑으면 상담선생님이 리딩을 해주셨는데 옆에서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울림이 있었다. 각자 사는 모습은 비슷한 듯 다르며 고민과 걱정이 없는 가정은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감사하게도 프로그램이 끝난 후에 상담선생님이 우리 부부를 위해 시간을 내주셔서 타로카드를 뽑고 평소의 고민도 들어주셔서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여느 때보다 가벼워졌다. 남편도 본인을 알아가고 더불어 배우자의 성향과 본질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고 좋아했다. 그 모습을 본 나 자신도 매우 흐뭇했다.
2회기와 3회기 프로그램도 담당 선생님의 고민과 좋은 아이디어가 많이 돋보였다. 2회기의 볼링은 남편과 내가 제일 기다리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남편에게 갑자기 일이 생겨 중3 아들과 함께 하였다. 평소 마이볼이 있을 정도로 볼링에 진심인 남편이었기에 매우 아쉬워했지만 활기차고 건강한 볼링 프로그램이 너무나 좋았기에 프로그램이 끝난 후에 가족이 함께 볼링을 치기도 하였다. 자연스러운 스킨십과 서로에게 해주는 응원과 긍정의 에너지는 가족과 부부라는 울타리를 더욱 견고하게 해준다.
3회기 프로그램은 부부 사진을 찍고 영화를 보는 것으로 구성되었다. 부부만의 사진을 찍은 게 얼마 만인지 가물가물했다. 우리 부부는 2001년 소개팅으로 만나 23년째 함께 하고 있다. 20대의 청춘 남녀가 지금은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의 부부가 되어 있었다. 전문 포토그래퍼가 있는 사진관에서 부부만 사진을 찍는 건 웨딩포토 이후 처음이다. 남편도 싫지는 않은지 연신 거울을 들여다보며 매무새를 다듬는다. 외모는 둘 다 늙었지만 사진의 분위기는 왠지 모르게 편안했다. 아이 없이 우리 부부만 사진을 찍는 게 처음에는 좀 어색하였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좋았다. 서로의 부족함을 이해하고 채워주는 부부가 이제 인생의 맛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오랜만에 단둘이 근사한 저녁을 먹고 영화도 오붓하게 볼 수 있는 설레는 감정에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3회기의 ‘부부의 봄’ 프로그램을 마치고 나서 우리 부부가 서로에게 한 말은 ‘고맙다, 사랑한다, 앞으로 둘만의 시간을 종종 갖자’였다. 아이가 커가면서 둘만의 시간이 자연스레 많아졌지만 더 노력하려는 마음이 너무나 좋았다. 일상에서 크게 달라진 것은 없고 서로에 대한 표현도 완벽히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서로의 존재에 대해 감사하고 애틋함이 커진 것만큼은 확실히 느낄 수 있다. 가족센터에서 진행한 '부부의 봄' 프로그램 덕분에 부부의 본질과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고 함께 해준 남편에게 앞으로 잔소리를 줄여야겠다는 생각을 가장 크게 했다. 담당자 선생님이 애써주신 덕분에 잠시나마 20대의 첫 만남으로 돌아간 기분을 맛보았다. 다양하고 알찬 프로그램을 우리 일상에서 만날 수 있음에 진심으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