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반 친구 OO가 5교시 시작 전 나에게 쪽지 하나를 내민다. 보건실에서 가지고 온 쪽지로서 온도가 39도로 매우 높으니 바로 귀가 조치를 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평소 엄살도 피우지 않고 성실하게 생활을 하는 OO여서 마음이 더 쓰였다. 바로 OO어머님께 연락을 드리니 오시기 힘들다고 하셨다. 아버님께 연락을 드리니 한 시간 정도 걸린다고 하여 보건실 선생님의 양해를 구하고 보호자가 오실 때까지 보건실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OO이 머리를 몇 번 쓰다듬어주고 나는 교실로 향했다. 다음날 출근을 하자마자 OO가 독감이라고 어머님께 연락을 받았다. 진료확인서를 사진으로 보내주셨고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환아 당일 인플루엔자 A형으로 확인되어 본원에서 수액치료하였으며 자가요양하면서 열 소실되고 24시간 뒤에 발열 없을 시 이후 통학 가능합니다.
독감의 경우 법정전염병으로 의사의 소견이 있을 때 병결이 아닌 출석인정이 가능하다. 오늘 하루 OO가 등교하지 않았고 그다음 날은 전보다 더 밝은 표정으로 등교하여 매우 다행이었다. 하지만 또 다른 어머님이 하이클래스 톡을 남겨 확인해보았더니 '**이 목이 붓고 미열이 있으니 다시 열이 오르거나 힘들다고 하면 조퇴시켜 주세요.'는 내용이었다. 이번에는 평소 말이 없고 자신의 일만 성실이 잘하는 **의 컨디션이 좋지 않다. 열이 오르면 머리가 아플 텐데 꼭 참고 견딜 것만 같은 아이여서 얼굴을 잘 살펴야 한다. 그때 갑자기 교실 전화벨이 울린다. 받아보니 &&어머님이다. 열이 있어서 병원에 들렀다가 학교에 보낸다는 내용이었다. 1교시가 끝나기 전 하이톡에 남겨진 메시지를 보니 &&도 A형 독감에 걸려 오늘 결석이란다.
요즘 독감 및 감기 환자가 매우 많다. 아침에 등교 전 병원에 다녀오는 학생들이 많다. 알림장에 '마스크 잘 쓰고 손 잘 씻기'를 항상 써준다. 그런데 정작 교사인 나는 마스크를 반에서 잘 쓰지 않았다. 나중에 후회가 물밀듯이 몰려왔다.
그날은 퇴근 후 무에타이 운동을 갈까 말까 매우 고민을 했다.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왠지 감기 기운이 조금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순간 이런 안 좋은 컨디션쯤은 운동으로 날려버리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에 대한 맹신이었다. 요즘 운동을 열심히 해서 체력이 올라오고 근육이 붙었다고 생각하였다. 자만이었다. 열심히 운동을 하고 집에 와서 샤워를 한 후 다음날 일어나 보니 열이 나고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어리석은 나를 자책하였다. 몸이 천근만근이었지만 출근 준비를 서두른다. 마스크를 끼고 교실에 들어섰다. 몸에 열이 나서 어지러웠지만 6교시까지 어떻게든 수업을 끝내고 병조퇴를 하였다.
근처 이비인후과에 가니 사람들이 많았다. 내 차례가 되어 증상을 의사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어젯밤부터 몸이 으슬으슬 춥고 열이 났어요. 목이 잠기고 기침과 가래가 좀 있습니다. 근육통도 좀 있는 것 같아요."
"열을 재보니 37.9도네요. 요즘 독감이 유행인데 독감 검사 해드릴까요?"
"네, 해주세요."
"아~ 하고 소리를 계속 내세요."
의사 선생님이 기다란 면봉으로 목구멍을 찌른다. 잔뜩 힘이 들어간 상태여서 검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번에는 양쪽 콧구멍에 찌른다. 고통스럽다. 잠시 밖에서 대기하고 있으니 의사 선생님이 친절하고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결과를 알려준다.
"독감검사 결과 다행히 한 줄로 떠서 독감이 아닌 걸로 나왔습니다. 혹시 몰라 코로나 검사까지 같이 시행했는데 코로나도 아니네요. 항생제와 해열제, 가래와 기침을 줄여주는 약을 4일 처방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아까 요청하신 수액도 맞고 가시면 됩니다."
감사하게도 독감과 코로나가 아니었다. 급성 후두염, 급성 인후염이라고 하셨다. 수액을 맞으러 침대에 누었더니 간호사 선생님이 오셔서 바늘을 꽂는다. 몸 상태가 많이 안 좋은지 핏줄을 한참이나 찾는다. 수액이 들어가는 팔이 뻐근해진다. 수액을 맞는 동안 잠이 올 줄 알았지만 팔이 너무 아파 잠도 오지 않는다. 나중에 들어보니 고함량 비타민 수액이라 입자가 커서 맞는 내내 아플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수액을 다 맞고 약을 받으러 약국에 갔다. 어마어마한 양의 약에 놀랐다. 내가 이 정도로 많이 아팠구나. 오늘 수업을 어떻게 했는지 정신이 없었다. 약과 수액의 효과가 좋았던지 다음 날 몸 상태는 많이 회복이 되었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많이 잠겨 나오질 않았다. 아이들에게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이 안 좋은 목소리를 들려주어야 했다.
이번에 어리석은 인간의 모습을 보았다.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운동을 하루 쉬어 자신의 몸을 돌봐야 했다. 반에서 감기 환자들이 많이 나오면 교사인 나도 마스크를 잘 쓰고 다녀야 했다. 아이들에게만 마스크를 잘 쓰고 다니라고 했던 내가 미련하게 보였다. 건강에 관해 자만하면 안 되었다. 올해 독감 주사도 맞지 않았다. 결국 까불다가 된통 당했다.
목소리는 여전히 잠겼지만 컨디션은 하루 만에 회복을 하였다. 병가가 아닌 병조퇴를 낼 수 있어 수업에 지장을 주지 않아 다행이었다. 몸은 회복되었지만 당분간 확실히 다 나을 때까지 운동을 쉬려고 한다. 운동도 중요하지만 몸에 독이 될 상황에서는 하지 말아야 한다. 충분한 휴식으로 나를 돌보는 게 우선이다. '다정함은 체력에서 나온다'라는 말을 이번에도 절실히 느꼈다. 기력이 떨어지니 웃음이 나오질 않았다. 몸이 아프니 만사가 힘들었다. 내 몸이 아프니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앞으로 내 몸에 관해 자만하지 않고 잘 살펴야겠다.
까불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