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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블 소피아 Nov 08. 2023

마음이 통하는 곳

다음날 긴장감을 가지고 부다페스트 도시에서 제대로 머무를 준비를 마쳤다. 환전도 하고, 버스표도 많이 사 두고 장을 봐서 숙소에 먹을 것도 잔뜩 사다 놓았다. 에어비앤비 주인인 소피는 남자친구와 스페인 남부로 여행을 간다고 했다. 우리와 영상통화를 하며 숙소나 부다페스트 관광에 관련된 정보를 요목조목 알려주었다. 


우리 에어비앤비는 부다페스트 관광지가 밀집된 시내 지역에서 북쪽 방향으로 버스로 40분 정도 떨어진 주거 지역이다. 동네 건물들은 모두 낮은 단층 주택이고 대부분이 삼각형이나 다각형 주홍색 지붕이 있다. 1층엔 소파와 식탁, 주방이 있었고 좁은 계단을 통해 2층을 올라가면 방과 화장실이 한 개 나오고, 기역 모양의 거실과 소파, 책상 하나, 텔레비전 그리고 화장실 하나가 더 있었다. 지붕 모양을 따라 세모로 생긴 천장이 꼭 다락방을 연상시켰지만, 꽤 넓었다.


도시를 탐험하기 위해 버스를 타고 나와 첫 번째 목적지로 정한 성 이슈트반 성당(St. Stephen's Basilica)으로 향했다.

성 이슈트반 성당은 헝가리 초대 국왕인 이슈트반 1세를 기리며 지어진 성당이라고 한다. 1845년~1905년, 약 60년에 걸쳐서 지어졌고 이 성당 안쪽에는 이슈트반의 오른손이 미라로 보존되어 있다. 우리는 성당 안쪽은 들어가지 않았고 Lookout 티켓을 끊어서 이 성당의 돔 전망대에서 파노라마를 보기로 했다. 성당의 높이는 96미터인데, 헝가리인의 조상인 마자르 인들이 이 땅에 정착해 나라를 세운 896년을 기념하기 위해 끝에 숫자 96미터로 건물을 지었다고 한다. 부다페스트에서는 국회의사당과 이 성당을 제외하고 법적으로 더 높은 건물을 지을 수가 없기 때문에 전망대에 올라가면 탁 트인 부다페스트 도시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전망대까지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있었는데 우리는 또 굳이 계단으로 올라갔다. 오래된 건물의 나선형으로 생긴  계단을 뱅글뱅글 타고 올라간 후 꼭대기에서는 엘리베이터를 한번 이용했다.

전망대에 올라가 도시를 내려다보니 성당을 둘러싼 건물들이 모두 반듯반듯하게 정렬되어 있었고 부다페스트 전경이 시원하게 보였다. 전망대 바로 앞쪽으로 네오르네상스 건축양식인 시계탑이 보였다. 15세기 르네상스 양식이 19세기에 부흥하면서 유럽 전역에서 유행했던 건축 기술이라고 한다. 멀리서 국회의사당도 미니어처처럼 조그맣게 보였다. 겨울치고 따뜻한 영상 8~9 도정 날씨였지만 바람이 많이 불어서 쌀쌀했다. 바람의 정령이 제 멋대로 내 머리카락을 위로 잡고 이리저리 흔드는 바람에 우리는 전망대를 내려가서 헝가리 국회의사당 (Hungarian Parliament Building)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국회의사당 앞으로 지나다니는 노란색 2번 트램이 도시와 참 잘 어울리고 예뻤다.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헝가리 국회의사당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규모가 큰 국회의사당이라고 한다. 헝가리 건국 1000년을 기념해 1884년에서 1902년까지 지어졌고, 길이 268M, 높이 96M로 성 이스튜반 성당과 높이가 같다.

요즘은 높은 건물이 너무 많아서 96미터가 높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쾰른 대성당에서 느꼈던 것처럼 막상 그 높이 건물 앞에 서면 건물이 생각보다 높아서 깜짝 놀란다. 100미터 달리기 할 때 출발점에서 결승지점인 100미터 끝을 바라보면 그 결승지점이 얼마나 아득하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그런 거리를 수직으로 세운 이미지를 상상하면 얼마나 높을지 새삼 짐작할 수 있다. 헝가리 국회의사당 건물은 엄숙하면서 웅장하고 멋있었다. 이 건물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49년까지 박물관으로 쓰이다가 1957년부터 국가 갤러리로 쓰였고 1972년부터 1975년까지 갤러리에 있던 미술품들이 지금의 부다성으로 옮겨지고 현재 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국회의사당 앞은 코슈트 러요시 광장이 펼쳐져 있었다. 코슈트 러요시(Kossuth Lajos,1802 ~1894)는 변호사이자 정치가로 언변에 능했던 헝가리 혁명 지도자였다고 한다. 1848년 프랑스혁명 소식을 접하고 헝가리를 지배하고 있던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에 자유를 호소하며 자유민주주의 혁명을 일으켰는데 혁명은 실패로 끝났지만, 헝가리 역사에 중요한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그곳에  동상이 하나 있었는데 코슈트 러요시 광장이라 그의 동상일 줄 알았는데, 라코치 페렌츠 2세의 동상이었다.

라코치 페렌츠 2세(Rakoczi Ferenc II,1676 ~1735)도 1703년부터 1711년까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에게 대항한 기사인 헝가리 국민 영웅이라고 한다. 지금 헝가리 500 포린트 지폐에 나오는 인물이다. 또한 이 광장은 1956년에는 러시아에서 벗어나기 위해 소련군 철수를 요구하며 헝가리 시민들이 민주화를 위한 항의를 하다 소련군의 총탄에 목숨을 잃은 곳이기도 하다. 

길 걸어 다닐 땐 모르고 봤는데 누군지 궁금해서 인터넷으로 찾아봤다. 고등학교 때 세계사 교과서에서 어려운 서양 사람들 이름을 달달 외워야 할 때는 알고 싶지도 않고 공부도 하기 싫었는데 이렇게 직접 그 나라에 와서 모든 국민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중요한 광장에 동상으로까지 설치된 위인들을 보니 누군지, 어떤 일을 했길래 헝가리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지 알고 싶은 지적인 욕구가 생겨났다. 그렇게 찾아서 보니 꾸벅꾸벅 졸던 세계사 시간과는 달리 너무 재밌었다.

다뉴브강가의 신발들

해가 점점 기울자 우리는 국회의사당을 등지고 다뉴브강 강가를 따라서 남쪽으로 걸었다. 

강을 따라 걷다 보니 신발들 조형물이 나왔다. 이 신발들은 헝가리의 녹색 십자당이 유대인들을 이곳 다뉴브강 강가에 세워놓고 신발을 벗게 한 다음 뒤에서 총으로 쏴 죽이고 시신을 강물에 빠뜨려 버렸다는 이야기를 모티브로 제작된 기념비이다. 이곳 부다페스트도 독일 베를린과 마찬가지로 다크투어리즘이 잘 자리 잡고 있었다. 다크투어리즘이란 본인들이 행한 나쁜 짓들을 ‘인류에게 다시는 이런 짓을 벌이지 말자’고 반성하는 의미로 전쟁 유적을 보호하고, 조형물을 만들고 박물관을 만들어 관광객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사람들이 신발 조형물에 꽃 그리고 초나 선물도 가져다 놓았다. 아기 신발들도 있었는데 아기 신발 조형물을 보자 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다시는 이런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신발을 보면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 강가에서 한국인들도 유람선 사고로 꽤 많은 분들이 목숨을 잃었었다. 이렇게 슬픈 역사가 있는 강이지만, 나는 다뉴브강을 보며 위로받았다. 여행을 하면 할수록 한국이 너무 그리웠는데 다뉴브강에 와있으니 마치 한강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푸근했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시원한 강줄기를 보니 가슴도 탁 트였다. 시원하고 좋은 마음, 고인들을 애도하는 무거운 마음, 고향 집이 그리운 촉촉한 마음들이 모여 미묘한 감정으로 버무려졌다. 분명한 것은 그 아름다웠던 체코의 프라하에 있을 때 보다 숨통이 트였다는 점이었다. 

노을이 지고 우리는 바치거리(Vaci Street)로 가서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녔다. 그곳은 자라나 H&M 같은 대표적인 브랜드숍도 있고, 여러 레스토랑들이 즐비한 쇼핑거리였다. 하루 종일 걸어 다녔더니 배가 고파져서 숙소에 들어가기 전 지하철역 앞에 있던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피자와 굴라쉬를 주문해서 먹었다. 체코 프라하에서 먹은 굴라쉬는 쇠고기가 두툼하게 들어가 있고 빡빡한 소스를 끼얹어주었었는데 부다페스트 굴라쉬는 수프처럼 나왔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육개장에 비교하던데, 나는 감자랑 돼지고기, 고추장 넣고 팍팍 끓이는 고추장찌개와 맛이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아, 밥 말아먹고 싶다’ 이런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났다. 추운 날씨에 굴라쉬로 따뜻하게 몸을 녹이고 숙소로 돌아갔다. 

부다페스트를 걷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도시의 모든 것이 참 마음에 들었다. 건물들은 고풍스럽고 예술적인 카페나 레스토랑도 많이 보이고 음식이나 음료의 가격은 저렴했다. 가끔 그런 곳이 있다. 마음이 통하는 곳. 그 지역의 기운과 나의 성향이 잘 버무려져 마음이 편한 곳. 부다페스트를 산책하는 내내 그런 기분이 들었다.

단지 하루 정도만 둘러보았을 뿐인데 부다페스트라는 도시에 잔뜩 기대되었다. 

이곳에서 한 달 동안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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