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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블 소피아 Nov 08. 2023

느슨함에 대한 경고

체코 프라하에서 부다페스트까지는 기차로 8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우리는 CD라고 하는 체코 철도청 웹사이트에서 티켓을 예매하였다. 웹사이트에 들어가서 프라하에서 부다페스트 목적지를 입력하고, 퍼스트클래스 1등급 칸으로 선택하고 검색하였다. 8시간 동안 가야 하는데 1등급이 아주 비싸지 않다는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다. 검색 결과에 시간대와 금액이 쭉 나오는데, 우리는 12시쯤 출발해서 저녁 7시 반에 도착하는, 1인당 5만 원 정도 하는 티켓으로 예약했다. 결제를 하면 티켓이 메일로 오는데 핸드폰으로 티켓 화면을 캡처하고 나중에 기차에서 표 검사할 때 핸드폰 캡처 화면 바코드를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 티켓은 체코말로 나왔지만, From Praha, To Budapest라고 영어로 된 목적지를 확인했다. 

우리는 우버를 이용해 편하게 기차역 지상 1층까지 도착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가니 지하 광장이 나오고 곳곳에 설치된 모니터로 기차를 타야 하는 플랫폼을 알려 주었지만 여전히 미로 속에 있는 기분이 들었다. 커피숍에서 커피를 한잔 사면서 직원들에게 플랫폼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리고 그들이 알려준 플랫폼으로 가서 여유 있게 커피를 마시며 기다렸다 드디어 1등 칸 기차에 탑승하게 되었다. 

1등 칸 기차는 우리나라 우등 버스처럼 한쪽에는 좌석 두 개가, 한쪽에는 좌석 1개가 널찍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평일 낮이라 사람도 별로 없었고 화장실도 있고, 인터넷도 되고, 레스토랑도 있어서 불편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자리를 잡고 카푸치노를 한잔 주문하고 나서 창문 바깥을 멍하니 응시했다. 눈으로 뒤덮여 하얗게 변해버린 숲의 나무들이 멋져 보였다. 의자에 전자기기 충전도 할 수 있어서 난 아이패드를 꺼내 유튜브도 보고, 책도 읽었다. 기차 레스토랑의 해피아워 시간대는 음식과 음료의 가격이 너무 저렴했다. 카푸치노 2,700원, 버드와이저가 2,100원. 윌은 신나서 맥주를 4캔이나 마셨다. 그러는 동안 시간이 금방 지나가 버렸다. ‘이렇게 가면 10시간도 갈 수 있겠는데?’ 해피 아워 시간을 이용해 저녁식사까지 야무지게 주문했다. 우리는 으깬 감자와 돼지고기 뺨 고기(Pork Cheek)를 주문해서 느긋하게 먹고 창밖으로 아름답게 지는 노을도 감상하면서 행복한 감성에 젖어 있을 때였다.


 안내방송이 나왔다. 우린 분명 부다페스트로 가는 기차를 탔는데 우리가 탄 기차가 오스트리아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상함을 감지한 남편이 역무원에게 우리 티켓을 보여주고 물어보았다. 알고 보니 이 기차는 오스트리아 어느 작은 시골 도시로 가는 기차였고 역무원 말에 따르면 우리는 헝가리의 Breclav라는 도시에 내려 부다페스트로 가는 기차를 갈아탔어야 했다는 거다. 티켓 가장 아래쪽에 timetable라고 하는 부분에 아주 깨알같이 작은 글씨로 기차를 바꿔 타라고 적혀있었는데 우리는 전혀 이 사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눈누난나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역무원이 말했다. 

“지금 우리는 오스트리아 빈에 정차했고 5분 정도 지났는데 금방 다시 출발할 거야. 너희들 여기 내려서 부다페스트로 가는 기차를 갈아타는 게 좋을걸? 그래도 빈에는 부다페스트로 가는 기차가 많거든."

우리는 둘 다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서 허겁지겁 짐을 챙겼다. 혼비백산이란 표현은 이때 쓰라고 있는 표현일까, 아이패드에 이어폰을 냅다 뽑고 충전기 챙기고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스웨터, 모자등을 1초 만에 집어서 백팩에 쑤셔 넣고, 위에 올려져 있던 가방 내리고, 짐칸에 있던 25kg 케리어 끌고 나오고……. 정신없이 기차에서 내렸을 때 기차는 그대로 출발해 버렸다. 하마터면 오스트리아 조그만 시골 마을에 도착해 숙소를 찾느라 헤매고 다닐 뻔했다. 그것도 그 나름대로 ‘스토리’가 되었겠지만 말이다. 


“우리 다 챙겼지? ”

“응. 아마도……. 그랬길 바라야지.”

우리는 허벅지에 힘이 풀린 채 터벅터벅 오스트리아 빈 기차역으로 들어가 다시 부다페스트행 기차표를 끊었다. 해가 다 넘어간 저녁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그날 부다페스트로 가는 기차표는 있었다. 저렴하게 구매했던 일등 석 칸 기차표는 순식간에 날아가고, 일반 칸을 두 명이서 100유로, 한화로 15만 원에 다시 구매해야 했다. 내가 예매했던 일등석 기차표는 경유하는 좌석이라 저렴했나 보다.

윌이 한국말로 말했다.

“15만 원 안녕~.”


부다페스트 에어비앤비에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체크인 시간이 늦춰질 것 같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부다페스트행 기차를 기다리는 오스트리아 기차역에는 기관총으로 무장한 경찰들이 왔다 갔다가 하며 사람들을 겁주고 있었다. 걸어 다니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그 사람에게 다가가 뭔가 검사를 했다. 여권이랑 백신 증명서를 내놓으라고 하는 건지 PCR 테스트 결과를 내놓으라고 하는 건지, 멀리서 봐서 자세히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몰랐지만,  경찰과 맞닥뜨린 사람들은 겁에 질려 그들에게 뭐라고 설명하고 있었다. 오스트리아는 COVID19 규제에 매우 엄격했다. 우리는 빈에 올 생각이 아니라 부다페스트에 가려다 갑자기 내린 거라 PCR 테스트 결과지가 없었다. 나는 혹시라도 경찰들이 딴지를 걸까 봐 겁에 질려 눈을 내리깔고 경찰들을 피해 다녔다. 다행히 아무 일도 없이 부다페스트행 기차에 올랐지만 기차를 기다리는 1시간가량이 나에겐 고역이었다. 나는 겁에 질려 심장 뛰는 소리가 내 귀에까지 들렸다. 윌은 그런 나를 보고 웃으며 놀렸다. 드디어 우리가 탈 기차가 도착했고 나는 황급히 부다페스트행 가차에 몸을 실었고 오스트리아를 서서히 빠져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우여곡절 끝에 부다페스트 기차역에 내렸다. 

기진맥진하여 내렸을 때 우리는 헝가리 현지 화폐를 전혀 바꾸지 않았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리고 기차역에 환전소는 없었다. 아니면 우리가 못 찾았거나 저녁 9시쯤 도착했으니 있었는데 문을 닫았을 수도 있겠다. 심 카드도 구매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짐을 질질 끌고 기차역 맞은편에 있던 맥도널드로 갔다. 맥도널드 무료 와이파이를 이용해서 환전소를 찾아보았고 내가 그곳에서 짐을 지키고 있는 동안 윌이 주변 환전소를 다 뒤져봤는데 역시 늦은 시간이라 모두 문이 닫혀있었다. 숙소까지 버스로 40분이나 가야 하는데 어떻게 버스를 탄담. 그때 우리 숙소로 가는 버스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냥 버스 타자, 버스 기사님이 물어보면 그때 자초지종을 설명해 보자. “

그래도 될까 하는 의심이 들었지만 우리는 지칠 대로 지쳐있었고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버스표나 현금 없이 버스에 타버렸다. 그런데 다행히 우리가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도 표를 검사하지 않았다. 그날은 딱 그 버스 하나만 운이 좋았다. 

나는 나중에 버스표는 카드로도 살 수 있다는 것과, 버스표 없이 무임승차를 하다 적발되면 설명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가차 없이 벌금을 물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준비 없이, 모르고 여행하면 이런 불편함을 겪게 된다. 나는 오스트리아 빈 역에서 허겁지겁 내리느라, 그리고 역에서 겁에 질린 채 경찰들을 경계하느라, 부다페스트 버스 안에서 누가 버스표를 검사할까 봐 이동하는 내내 조마조마했다. 그리고 부다페스트 숙소에 체크인하자마자 기절했다. 


천천히 여행하다 보니 유럽에 오기 전에 철저하게 여행을 준비했던 그런 긴장감들이 한참 무뎌졌다. 그리고 비행기를 타고 하는 여행이 아니라, 버스와 기차만으로 국경을 넘나들다 보니 국내 여행하듯이 경계심도 느슨해졌다. 부다페스트로 오는 길은 우리의 그런 느슨함에 대해 경고해 주었다. 


가장 행복할 때, 가장 느슨할 때 위기가 닥치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 

경계심을 가지자. ‘정신 차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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