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트래블 소피아 Nov 08. 2023

고향이란 무엇인가?

외국에 살거나 여행을 다닐 때 향수병에 크게 걸린 적은 없었다. 어렸을 때 나는 언제나 한국을 벗어나고 싶었다. 한국이 나에게 너무 작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나는 내 고향이 나는 너무 그리웠나 보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장기 여행이라는 고단함 때문인 걸까. 한국을 잠시 떠나서 있었을 뿐인데 한강과 같은 다뉴브강 물줄기와 한인 마트가 나의 향수를 자극했다. 고향이 그리웠다. 한국에 돌아가고 싶었다. 


난 당장 한국이 사무치게 그리워서 견딜 수 없이 외로운 감정을 달래야 했다. 얼마나 벼르던 여행인데 이대로 무너질 수 없다. 억울해서 안 된다. 나의 영혼을 달래줄 현명한 방법은 바로 한국 음식을 해 먹는 것이다.

부다페스트에서 한 가지 의아했던 점은 해산물을 찾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슈퍼에 가도 해산물 판매대가 없었고 음식도 육식 위주인 것 같았다. 내륙지방이라서 해산물을 공수하기 힘들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해산물을 좋아하는 사람은 이곳에서 오래 살기는 힘들겠다’라고 생각했다. 살아가는데 ‘음식’이 꽤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가격은 비쌌지만, 한국 음식 재료를 파는 자그마한 슈퍼가 있어서 숙소에서 거의 한국 음식을 해 먹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나는 떡국떡이랑 두부, 김치, 미역 등 야무지게 장을 봐서 한국 음식을 해 먹었다. 가끔 아름다운 자연경관에 둘러싸인 조그만 시골 마을에서 유유자적 여생을 자연과 함께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런데 아무리 아름다운 곳이라도 한국 음식을 파는 슈퍼조차 없는 곳이라면 과연 그곳에서 보내는 여생이 행복하기만 할까? 

인간이 아무리 여행하는 동물이라지만 자기 고향을 그리워할 수밖에는 없는 것 같다. 관광의 정의도 다른 문물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돌아갈 곳이 있을 때야 비로소 행복하게 여행할 수 있는 법이다. 정처 없이 떠돌다 보면 향수병에 덜컥 걸리는 수가 있다. 이 병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낯선 도시에서 즐겼던 그 짜릿한 행복감은 이제 더 이상 나를 만족시켜 줄 수 없다. 정신이 멍해지고 마음이 허전해진다. 내가 하는 그 무엇에도 의미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영혼이 병든다. 


하루는 윌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윌, 캐나다가 그립지 않아? 너는 고향이 뭐라고 생각해?”

그리고 그는 말했다.

“한국에 있다가 캐나다에 돌아갔을 때 이상한 걸 느꼈어. 나는 학창 시절 미시소가라는 지역에서 자랐고 대학교 때문에 궬프라는 지역으로 옮겨서 졸업할 때까지 거기서 살았거든. 그런데 엄마가 재혼하셔서 미시소가의 집을 처분하시고 남편 폴 집이 있는 워털루라고 하는 지역에 가서 살았을 때 우리가 잠깐 캐나다에 가족들 방문하러 갔었잖아. 나는 한 번도 함께 산 적이 없는 폴 집에 갔었음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있어서 편하더라고. 그런 걸 보면 고향은 장소가 아니라 ‘사람’이 아닌가 싶어. 난 결혼했고 사랑하는 아내가 생겼으니 이제 내 고향은 ‘너’ 인 셈이지. 네가 어딜 가든지 내 고향은 이제 네가 있는 곳, 그곳이야.”


윌의 말이 참 신선했다. 고향을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고향이란 장소가 될 수도, 사람이 될 수도, 또 어떤 사람에겐 물건이 될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윌은 요즘 들어서 캐나다가 그립다고 했다. 가족들이 함께 모이는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와 같은 휴일에 자신만 제외되는 것 같고 함께 추억을 쌓지 못하는 것이 서운하다고 했다. 밖에 나가서 자기 나라 언어인 영어로 아무나 와 이야기할 수 있는 것도 그립다고 했다. 한국에서 구하기 힘든 질 좋고 저렴한 치즈나 소시지 같은 식자재들도 그립다고 했다. 왜 안 그렇겠나. 충분히 이해가 간다. 우리가 캐나다로 가면 나는 한국이 그리워질 테고 우리가 한국에 오면 윌은 캐나다가 그리워질 테다. 


우리 부부는 평생 누군가는 고향을 그리워하며 양쪽을 왔다 갔다 하며 견뎌내야 한다. 

작가의 이전글 마음이 통하는 곳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