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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블 소피아 Nov 10. 2023

나를 알게 해주는 여행



부다페스트에서 미술관을 두 군데 가보았다. 13세기 후반에 왕궁으로 지어진 Buda Castle은 3개의 박물관과 미술관으로 쓰이고 있었는데 나는 제일 먼저 부다 왕궁의 국립미술관(National Gallery)을 방문했다. 부다 왕궁은 지대가 높은 곳에 있어서 다뉴브강과 그 건너편으로 이어주는 세체니 다리, 그리고 국회의사당까지 훤히 보이는 탁 트인 경치를 가지고 있었다. 글루미 선데이 영화를 보고 세체니 다리에 너무 가보고 싶었는데 내가 갔을 당시 이 다리가 공사 중이라 아쉽게도 가보지 못했다. 아름다운 세체니 다리를 이렇게 부다 왕궁에서라도 바라볼 수 있어서 위로를 삼았다. 


국립미술관에는 15세기부터 20세기까지 미술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시대 순서대로 그림을 쭉 보다가 독일에서 박물관을 다닐 때부터 어렴풋이 느꼈던 점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그것은 내가 현대미술을 더 좋아한다는 것이다. 나는 자신을 그냥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내가 19세기 20세기의 현대미술을 특별히 더 좋아한다는 점을 이번 여행을 통해 알게 되었다. 여행을 하면 수많은 선택을 하고 다른 것들을 보고 느끼면서 나를 더 잘 알게 되는 것 같다.



 17~18세기 회화는 사진이 없었던 당시 사진처럼 사람이나 사물을 세세하게 묘사하려고 했던 특징을 가지고 있다. 똑같이 사물을 묘사할 수 있는 화가들의 능력은 존경하지만 나는 이제 그 그림들이 진부하고 재미없게 느껴졌다. 



반면에 형태를 파괴하고 새로운 컬러에 도전하고, 그림을 그리는 재료도 다양하게 사용해 가며 여러 가지 면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19세기 이후 현대 작가들 그림을 볼 때면 왜 이런 재료를 썼을까, 왜 이런 구도와 공간을 연출했을까, 작가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등을 곰곰이 생각하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그래서 미술관을 벗어나는데 한참 걸렸다. 너무 재밌었다.


부다왕궁의 미술관에 전시를 관람하고 나서 어부의 요새로 천천히 걸어갔다. 어부의 요새에서 해 질 녘에  바라다본 국회의사당 건물이 보이는 경치는 내가 살면서 보았던 야경 중에 최고였다. 뉴욕, 체코 프라하, 시드니 등 세계에서 야경이 예쁘다는 도시를 다 가 보았지만,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어부의 요새가 가장 아름다웠다. 어부의 요새도 국립 갤러리처럼 지대가 높아서 다뉴브강 쪽을 향해 서니 탁 트인 경치로 속이 시원해졌다. 국회의사당 건물을 포함하여 주변으로 불이 켜진 건물들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주얼리 박스에 들어있는 보석처럼 아름다운 건물들의 불빛은 강물 수면 아래로 반사되어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야경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나도 그려보고 싶다.’ 

19세기 이후 화가들이 창조적으로 생각하는 정신을 이어받아 뭔가 도전해 보고 싶었다. 내 가슴속에 무언가 꿈틀대는 것이 느껴졌다.


이것을 느끼고 나서 현대 미술 위주로 전시된 루드비히 미술관(Ludwig museum)을 갔다. 루드비히 미술관에서 너무 행복했다. 모든 전시가 다 멋있었고 작품 하나하나가 나에게 교훈을 주었다. 사실 화가들은 가난하다. 유명해진 화가들도 거의 사후에 그림값이 올라간 경우가 많다. 누가 알아준다는 보장도 없고 힘들게 그림을 그렸을 텐데 그림을 그리느라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들이 역력했다. 이곳에 있는 모든 예술가가 나에게 ‘다음은 네 차례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넌 어디까지 고민해 봤니?’


예술은 무엇일까? 예술은 언제부터 존재해 왔던 것일까? 인간이 언제부터 존재해 왔는지 정확하게 모르지만 인간 탄생 기원의 가까운 시기에 발견된 동굴의 벽화에서도 그림을 종종 볼 수 있다. 문자가 없던 시대에 그림으로 ‘의사소통’을 했다고 짐작해 볼 수 있지만, 문자와 글이 성행하는 시대에도 왜 우리는 그림, 조각, 춤, 소설, 시 등으로 예술을 쭉 지켜왔을까? 수많은 철학자가 예술의 의미를 정의해 보려고 노력해 왔을 것이다.

나는 2015년 서울미술관에서 별로 유명하지 않은 작품 전시회에 간 적이 있었다. 한쪽 벽면에 쓰레기를 색칠해서 새로운 패턴을 만들어 장식해 놓은 예술 작품을 발견했다. 

‘누군가에게 버려진 쓰레기도 관심을 주고 예술의 혼을 불어넣으면 다른 모습으로 재탄생할 수 있구나.’

예술의 수많은 정의가 있겠지만 인간을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힘이 글보다 더 강력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우리와 공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어려운 개념을 글로 어렵게 표현하는 것보다 단 한 번의 예술적 그림이나 소설 같은 이야기로 모든 사람이 쉽게 접하고 스스로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힘을 길러주기 때문에 우리는 예술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나는 죽을 때까지 예술가가 되어 살기로 결심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평소에 회사를 다니며 무던히 삶을 살아 내더라도 나의 고민과 시대의 고민, 삶의 아름다움이나 삶의 고통, 고통에서 자유롭고 싶은 욕망, 희망, 휴식, 인간의 삶. 그 모든 것을 치열하게 고군분투하여 나만의 예술을 만들어보자고 다짐했다. 


뭐 대단하지 않아도 된다. 

내 삶이고, 내 길이다. 내 식대로 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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