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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블 소피아 Nov 13. 2023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




우리는 스플리트에 가끔 와서 리바거리 카페에서 커피를 한잔씩 마시곤 했다. 날씨가 좋을 때 바깥 테라스에 앉아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차분하게 차를 마시고 있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기분이 좋았다. 카페 건물 뒤편으로는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이 있다. 


스플리트 리바거리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노예의 아들로 245년에 태어나 군인이 되었으며, 284년에 군대의 추대로 황제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황제 누메리아누스의 친위 대장으로 있다가  황제가 암살된 후, 284년 군대의 추대로 제위에 올랐다. 그는 제국을 동방 정제와 서방 정제를 하나씩 두고 아래 동방 부제와 서방 부제를 임명한 사두정치 제도로 나라를 다스렸다. 자기는 동방의 정제로 취임했고, 막시미아누스를 서방 정제로 임명하여 서로 다스릴 구역을 나누어 제국을 운영하였다. 

로마 황제들은 거의 죽임을 당했는데 이분은 305년인 65세 때 제위를 물려주고 평화롭게 은퇴하여 크로아티아 스플리트에서 궁전을 짓고 식물을 가꾸며 말년을 보내 암살을 피한 몇 안 되는 황제 안에 든다. 궁전은 295년에 짓기 시작해 305년에 완공되었고 황제가 316년에 돌아가셨으니 궁전을 얼마 누리지는 못하고 가셨다.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

1700년을 버텨온 건축물이다. 궁전 사이사이가 좁은 골목들로 연결돼 있고 어떻게 빠져나가면 광장이 나왔다. 벽과 골목 모두 대리석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 오랜 시간을 사람들이 밟고 지나온 길이라 반질반질 돌에서 윤이 났다. 나는 이 윤이나는 돌들이 참 좋았다. 1700년 전 사람들과 내가 같은 돌을 밟고 있다고 생각하니 이 길을 지나다녔을 사람들이 기운이 다 느껴지는 듯했다. 길을 걷고 있는데 현실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3세기로 들어와 버린 것이다. 하지만 과거로 들어왔다는 표현보다, 뭔가 게임 속에 지금 내가 있는 것 같은 기분이라고 하거나 누군가의 꿈속에 들어와 있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았다. 이곳을 보거나 걷기만 해도 나만의 판타지 이야기가 펼쳐진다. 왜 미국 HBO에서 제작한 드라마인 ‘왕좌의 게임’ 촬영지가 이곳인지 알 것 같았다. 스플리트를 비롯해 크로아티아의 곳곳에 왕좌의 게임 촬영지가 있다. 나는 왕좌의 게임 덕후로서, 크로아티아를 여행하면서 촬영지 곳곳을 성지 순례하듯 가 보았다.  중세와 현재가 공존하는 크로아티아에 있으면 왕좌의 게임이 아니더라도 판타지 소설 하나 뚝딱 나올 것 같았다. 

또 하나 놀라운 것은 궁전 곳곳에 사람들이 입주해서 살고 있었다. 이게 너무 신기했다. 우리나라라면 임금이 살던 궁전에 백성들을 입주시킬 수 있겠는가? 보전한다고 멀리서 입장료를 받고 ‘들어오지 마시오’라고 막은 줄이 곳곳에 쳐져 있을 것 같다. 사람들이 산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빨래가 곳곳에 널려져 있었다. 안 그래도 마음이 뒤숭숭한 요즘인데 이렇게 빨래를 보고 있으니 기분이 편안해졌다. 정부 정책에 반대하든, 인종차별에 반대하든, 백신 의무화에 반대하든, 전쟁을 하든 빨래는 해야 할 것 아닌가?


305년에 완공된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에 사람들이 입주해서 살고있는 모습


사람 냄새가 나는 이런 작은 순간들에 편안함이 느껴진다. 위로가 느껴진다. 그리고 사람이 없는 광장 쪽엔 길고양이들이 본인 집인 양 터를 잡고 있었다. 


궁전을 빠져나오면 거대한 그레고리우스 닌 동상이 한 손에 성경을 들고 다른 한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우뚝 서 있었다. 그레고리우스 닌이라는 인물은 10세기 크로아티아 주교였고 라틴어 성경밖에 없을 때 크로아티아어를 보호하고 문서를 편찬하신 분이다. 유럽에서 라틴어 성경을 본인 나라 언어로 번역하는 일은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드는 것만큼 위험하고 대단한 일이었다. 


우리나라든 다른 나라든 일부 왕들이나 귀족, 지식인 계층들은 백성들을 더럽고 무식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들이 무식할수록 다루기가 쉽고 그들이 많이 알수록 자신들을 위협할 거로 생각했기 때문에 교육에 전념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만 어려운 한자나 라틴어를 읽을 수 있다는 특별함과 고귀함을 유지하려고 했다. 아마 라틴어 성경을 그 마을 주민들이 쓰는 언어로 번역해서 알려주는 행위는 교황권에 대한 도전이었으니 목숨이 걸린 위험한 일이었을 것이다. 한국에도 관료주의 잔재가 남아 괜히 알아듣기 어려운 말을 쓰며 책을 출판하는 교수들이나 지식인들이 있다. 나는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게 어려운 표현이나 단어를 쓰는 작가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들이 정말로 사람들에게 본인의 생각을 전달하고 감동이나 지식 혹은 깨달음을 주려고 책을 쓴 것인지 아니면 많이 아는 것을 자랑하려고 글을 쓴 것인지 잘 모르겠다. 어려운 말을 쓰면 자신이 고귀해진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런 사람들을 보면 머리는 지식으로 꽉 차 있을지 모르겠지만 가슴은 텅 비어 보인다. 지금은 손가락 하나면 잘 굴리면 인터넷으로 내가 원하는 지식을 얼마든지 얻을 수 있는 시대인데 지금도 많이 아는 것을 자랑하고 싶은 사람이 많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그런 행동이 본인의 지적 수준이 아니라 자아 수준을 낮추는 꼴이란 걸 모르는 걸까? 아니면 사람들이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말을 잔뜩 써놓은 자신을 비웃어주길 바라는 것일까?

청동색의 그레고리우스 닌 동상에 가까이 가니 축구공의 세배 정도 되는 크기의 그의 엄지발가락만 반질반질 금색으로 닳아 있었다. 이것에 담긴 이야기는 이러하다. 한 소녀가 이곳에서 꽃을 팔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는데 이분 발가락을 만지며 꽃을 잘 팔리게 해달라고 기도했고 그 후로 꽃이 불티나게 팔렸다고 한다. 그러자 마을 모든 사람이 원하는 것이 있으면 그레고리우스 닌 엄지발가락을 만지러 오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마케팅에 스토리를 담아야 하는 이유이다. 여행을 하면서 스토리의 힘을 곳곳에서 느꼈다. 어떤 물건에 스토리가 있으면 특별해 보이고 소유하고 싶어 진다. 


나도 윌과 이분 엄지발가락을 만지며 우리의 안전한 여행을 부탁해 보았다. 

이 길 위에서 인생을 살아가는 데 중요한 무언가를 꼭 찾고 배워 남은 인생을 현명하게 잘 살 수 있길 부탁드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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