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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블 소피아 Nov 13. 2023

잊히지 않는 사람들



따스한 햇살이 테라스를 비추고 그 너머에 키가 큰 꽃나무가 바람에 넘실거리는 3월 21일 아침이었다. 3월 21일은 춘분(spring equinox)이었다. 이날은 태양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향하여 적도를 통과하는 날, 태양의 중심이 적도 위를 똑바로 비추어 낮과 밤의 길이가 같고 추위와 더위가 같은 날이다. 우리는 음과 양이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봄날을 기념하기 위해 산책하기로 했는데 늘 바다로만 산책하러 가다가 오늘은 산 쪽으로 가보기로 했다. 장비가 없어서 험난한 산행은 무리일 것 같고 구글 지도로 숙소 뒤쪽 산 근처에 갈 만한 곳을 검색하여 스토모리자 성모 식물원(Biblijski vrt Stomorija)이라고 하는 곳을 발견했다. 이곳은 산 중턱에 있었고 대충 사진으로 확인해 보니 작고 잘 다듬어진 아름다운 식물원이었다. 이곳만큼 푸른 봄의 기운을 느끼기 안성맞춤인 곳은 없다고 생각하여 가벼운 옷차림으로 물 한 병 챙겨서 집을 나섰다.

뒤쪽에 산으로 가는 길은 오늘이 처음이라 생경했다. 집을 떠나 걷기 시작한 지 5분 만에 차들이 쌩쌩 달리는 국도 같은 도로가 하나 나왔고 그 아래 굴다리를 통해 그 도로를 지나자 곧이어 올리브 나무밭이 한없이 펼쳐지는 시골길 풍경이 이어졌다. 산으로 나있는 시골길은 경사가 완만해서 걷기 좋았다. 그리고 한 십분 더 걸었을까, 갑자기 키가 훌쩍 큰 사이프러스 나무들이 나타났다. 이들은 울타리처럼 가는 길을 막고 있었는데 어떤 공간을 보호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다름이 아니라 이곳은 카스텔 노비의 공동묘지였다. 


우리는 순간 다른 나라의 공동묘지가 궁금하여 이곳을 통과해서 걷기로 했다. 묘지에 들어서니 음산하거나 무서운 기운은 전혀 없고 봄의 햇살을 받아 한없이 밝고 맑은 기운이 감돌았다. 널찍한 대리석 비석들, 꽤 크고 무거워 보이는 십자가, 성모마리아상 등이 곳곳에서 반짝거렸다. 거의 모든 무덤가가 아름다운 꽃들로 장식되어 있었고 묘지 한가운데는 작고 어여쁜 교회가 이곳을 지키고 서 있었다. 무덤가가 아니라 마치 어느 잘 꾸며진 조각 정원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비석에는 돌아가신 분의 이름, 살아계셨던 기간, 어떤 삶을 살다 가셨는지 간단한 메모가 적혀있었고 돌아가신 분들의 일생을 살짝 훔쳐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 어느 비석에 다가가 내용을 훑어보았다.  1920년부터 2000년까지. 어떤 삶을 사셨을까? 이분은.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날 무렵 전쟁과 함께 태어나 전쟁이 끝나고 합스부르크와 결별하고 유고슬라비아 왕국(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왕국)에 일부가 되는 과정,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며 1941년 나치 독일의 괴뢰정권이 되는 과정, 반세르비아 조직인 우스타샤가 정권을 잡고 30만 명에서 70만 명의 세르비아인들을 인종청소 명목으로 잔인하게 학살한 과정, 1945년 전쟁 종료와 함께 티토의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으로 통합되는 과정, 81년 티토가 사망한 뒤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 모두 민족주의가 대두되면서 91년 슬로베니아와 함께 독립국을 선포하는 과정에서 세르비아와 무력 충돌한 크로아티아 독립 전쟁, 이후 1992년 이웃 나라 보스니아 전쟁과 1998년 코소보 전쟁까지 보고서 눈을 감으셨다. 툭하면 싸우던 중세 시대도 아니고 근대에 한 번도 겪을까 말까 한 전쟁을 일생에 도대체 몇 번을 겪고서 가신 걸까. 

그런 생각을 하다 그분의 비석 앞에 놓인  방금 꺾어 온 듯한 싱싱한 꽃다발을 보게 되었다.



 ‘이분을 생각하며 조금 전 누군가 꽃을 놓아두고 갔다.’ 

끔찍한 시대에 고생만 하다 가셨다고 느껴질 수 있겠지만, 누가 아나? 그래도 그 시대를 현명하게 잘 적응하며 행복하게 살다 가셨을지. 지금도 이렇게 사랑받고 계시는데.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무덤가에는 하나같이 싱싱한 생화들이 모두 놓여 있었다. 

'이 생기 있는 꽃들은 누가 다 가져다 놓았을까? 꽃들은 그 종류도 너무 다양했고 색깔도 가지각색이라 공원 관리인이 이렇게 가지각색의 꽃들을 무덤 하나하나 다르게  놓아두진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꽃이 시들지 않았는데, 그렇다면 가족들은 돌아가신 분들을 만나러 얼마나 자주 온다는 말이지?'

혹독한 전쟁을 겪은 크로아티아지만 사랑이 넘치는 무덤가를 걸으며 이 세상을 가고 난 뒤에도 잊히지 않고 여전히 사랑받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았다.


나는 돌아가신 분들은커녕, 살아계신 분들조차 얼마나 챙기고 있는가? 

이곳을 걷는 내내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면서도 한편으로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따뜻한 공동묘지를 지나 우린 다시 목적지인 공원을 향해 걸었다. 가는 길 내내 낮은 경사의 오르막이었고 주변은 밭과 낮은 지붕 집들 그리고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몇몇 염소들이 있는 전형적인 시골집 풍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내 키보다 조금 작은 올리브나무들이 오밀조밀 모여있는 올리브나무밭과 파릇파릇한 연초록색의 새싹이 돋아나는 들판을 지나 공원 입구에 들어서니 짙푸른 소나무와 사이프러스 나무들이 무성한 식물원이 나타났다. 식물원 입구에서 오른쪽으로는 키 큰 나무들을 지나 무릎까지 오는 돌담이 낮게 처져 있었는데 시야가 탁 트여서 멀리 바다까지 보였다. 이곳이 산 중턱에 위치하다 보니 뻥 뚫린 경치가 시원했다. 한 어머니는 아이와 함께 공원 벤치에 앉아 쉬고 있었고 또 한쪽에서는 돗자리를 가지고 와서 깔고 누워서 책을 보며 여유를 부리는 청소년 여자 두 명이 보였다. 숲길 같은 오솔길을 걸어가다 보면 작고 귀여운 교회에 다다른다. 교회와 잘 가꾸어진 정원, 멀리 보이는 바다와 지저귀는 새소리, 달큼한 봄의 향기까지 모든 것이 조화롭고 아주 아름다웠다. 과연 춘분이라는 계절이 온몸으로 느껴지는 것이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짙은 녹음의 산속 공기를 폐 속으로 가득 채우고, 잠깐 그 공동묘지를 생각했다.


‘한국에 돌아가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살아있을 때 좀 돌보아야겠다. 연락은 자주 못하더라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평소 소홀했던 사람들도 좀 더 챙겨야겠다. 도움이 필요한 이웃이 있으면 기꺼이 도와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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