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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블 소피아 Nov 13. 2023

또다시 전쟁




우리가 크로아티아에서 유유자적 쉬던 중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했다. 전쟁이 터져버렸다. 캐나다에 있는 가족들이 우리에게 괜찮은 거냐고, 크로아티아는 안전하냐고 수없이 메시지를 보내주었다. 크로아티아에 오기 바로 직전인 헝가리는 우크라이나와 국경까지 맞대고 있었으니 지인들이 걱정할 만했다. 러시아가 크로아티아에 공습을 시작한 이날 기분이 매우 울적했다. 나는 지금까지 삶을 긍정적으로 보면서 살아왔었는데, 책을 많이 읽으면 읽을수록, 역사를 공부하면 할수록 인류의 참담하고 비극적이고 냉소한 면들이 많이 보여서 점점 염세적인 인간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체코를 여행할 때 체코 역사를 공부하던 중 조승연의 탐구생활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뮌헨협정에 대해 알게 되었다. 히틀러가 세력이 커지던 당시에 체코 지역 중 수데텐란트라는 지역이 있었는데, 독일어를 쓰는 사람들이 많이 산다는 이유로 히틀러는 이 지역을 체코에서 독일로 편입시키려 했다. 이미 1차 세계대전을 겪은 유럽이었고 전쟁을 일으킬까 두려웠던 영국의 총리 네빌 체임벌린은 히틀러를 어르고 달래면서 이 지역 그냥 너에게 줄 테니까 전쟁 일으키지 말라고 타일렀다. 체코가 헝가리로부터 독립할 때 체코에 무슨 일이 생기면 도와달라고 프랑스와 같은 강대국들과 조약을 체결하고 있었기 때문에 체코에 전쟁이 나면 프랑스도 체코를 도와 싸워야 할 판이었다. 그 때문에 영국은 프랑스인들까지 꼬드겨 전쟁하지 말고 저 땅 그냥 독일 줘버리자고 설득했다. 그렇게 해서 맺어진 불평등 조약이 뮌헨 협정이다. 1938년 9월 29일에 이 조약이 체결될 때 정작 당사자인 체코인들은 쏙 빼고,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자기들끼리만 모여서 수데텐란트 지역을 독일로 합병하는 서류에 사인해 놓고 평화를 지켰다며, 특히 영국 총리는 기세등등하게 영국으로 입국했다. 이 일을 겪은 히틀러는 ‘세계 최대 강국이라던 영국, 뭐 별거 아니네.’ 하면서 전쟁을 안 하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6개월 만에 프라하로 쳐들어가서 체코를 독일로 합병시키며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로 쳐들어간 이유를 여러 가지로 분석한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키예프 공국을 뿌리로 하는 동슬라브족, 같은 민족이다. 몽골 침략으로 키예프 공국이 멸망하지만, 우크라이나는 1922년 소련이라는 이름으로 또 러시아와 같은 나라가 된다. 그리고 거의 70년 정도 후인 1991년 소련의 붕괴과정에서 독립한다. 이런 역사를 보면 러시아의 뿌리인 키예프 공국을 확보해야 한다는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나토(NATO)는 제2차 세계대전 후 구소련 및 동유럽 공산주의 진영을 견제하기 위해 유럽에 회원국을 받으며 동쪽으로 꾸준히 진격해 왔는데, 러시아와 국경을 바로 맞대고 있는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려는 의도를 보이자 극도로 긴장이 고조된다. 러시아는 나토 확장에 불쾌함을 드러내며 이를 제한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면적 이유로는 우크라이나의 천연자원인 석유 가스, 곡물 확보와 같은 경제적인 이윤을 욕심냈을 수도 있고, 전쟁 시 바다를 통해 빠르게 동쪽으로 진격할 수 있는 흑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정학적인 이윤을 바랐을 수도 있다.

하지만 뮌헨 협정을 통해 어떤 일이 인류에게 벌어졌는지 역사가 교훈을 주고 있는데 우리 인류는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생각에 맥이 빠졌다. 러시아 모든 국민들이 찬성하는 전쟁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 우크라이나를 끝내 집어삼켜야만 하는 인간의 욕망은 없어지지 않고 끝내 끝장을 보려고 한다. 언제까지 우리 인류는 죽고 죽이는 전쟁을 치러야 하는 것인가. 


얼마 전 이스라엘 작가인 유발 하라리가 쓴 ‘사피엔스’라는 책을 읽으며 극도로 우울함에 빠진 적이 있었다. 그는 말했다. 

“사피엔스가 가는 길엔 멸종밖에 없다.”

10만 년 전 전 지구상에는 최소 여섯 가지 인간 종이 살고 있었는데 지금 중요한 건 딱 한 종만이 살아남았다는 사실이라고 했다. 호모 루돌펜시스, 호모 에렉투스,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호모 데니소바인 등……. 학자마다 의견이 분분하다. 호모 사피엔스가 이동하며 이 다른 종의 인간들과 교배하며 퍼져나갔다는 교배이론이 있고, 인종 학살을 일으키며 교체해 나갔다는 교체이론이 있는데 2010년 현대인들 DNA에 네안데르탈인 DNA가 1~4퍼센트 섞여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지만 유발 하라리 작가는 교배로서는 우리의 게놈에 기여한 양이 너무 적기 때문에 교체이론을 간과하지 않았다. 인간들은 불을 발견하고 고기를 익혀먹고 뇌가 커지면서 근육은 퇴화했고 손으로 복잡한 도구를 만들기 시작했다. 특히 호모 사피엔스는 약 7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시작하여 유라시아 대륙으로 퍼져나갔는데, 그들은 전설, 신화, 신, 종교 등 존재하지 않고 창조해 낸 가상의 실제를 함께 믿고 언어를 사용하여 급속도로 협력해 나갔고 인간종뿐 아니라 동물들까지 멸종시켰다. 호모사피엔스가 새로운 지역에 도착하기만 하면 다른 종들은 사라지는 것이다. 작가는 그 예로 호모 사피엔스들이 호주 땅에 4만 5000년 전에 정착한 후 50kg이 넘는 호주의 동물 25종 중 23종이 멸종했고 그들이 뉴질랜드 땅에 도착하고서는 200년도 채 되지 않아 대형동물의 대부분이 멸종했고 모든 조류의 60퍼센트 멸종했다고 한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내가 자연과 동물들, 그리고 또 다른 인간 종류까지 파멸의 길로 이끈 그 호모 사피엔스 중 하나라는 사실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생각해 보면 근대 역사도 마찬가지이다. 북미 대륙으로 건너간 청교도들은 원래 그 땅의 주인이었던 원주민을 모조리 학살했다. 남아메리카로 간 스페인 군대도 그곳에 원주민들을 학살했고 병을 퍼트려 수없는 원주민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아프리카 흑인들을 가축처럼 사고팔았던 이런 사건들은 몇 만 년 전의 이야기가 아니다. 역사를 알면 알수록 침울하고 암담해졌다. 인간의 본성은 정말 이렇게 악한 것일까?

네안데르탈인과 교배설에 좀 더 힘이 실린 다른 역사학자가 쓴 책을 보고 나서 혼란스러운 마음을 좀 가라앉혔다. 나는 ‘잠자는 죽음을 깨워 길을 물었다’라는 책을 읽고 많은 위로받았는데 이렇게 믿고 싶은 대로 믿고 마음이 편해지기만 하면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그렇게까지 잔인하고 악하진 않았을 거야…….


지금도 우리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보고 있지만 어째하고 있는 행동이 낯설지만은 않다. 2023년에는 이스라엘과 하마스까지 더해졌다. 각자의 신들은 살인을 하면 안 되는 것으로 가르치는데 어떻게 그렇게 무참히 죄 없는 민간인들을 학살하며 전쟁을 계속해야만 하는 걸까. 호모 사피엔스에게 늘 있었던 ‘파멸의 속성’을 가지고 일관되게 해 왔던 학살을 지금도 그렇게 자행하고 있다고 한다면 이런 전쟁들은 그리 새삼스럽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그렇게 강 건너 불구경하듯 전쟁을 지켜보지만, 이것이 진정 제3차 세계대전으로까지 확대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는 것일까? 뮌헨 협정을 발판으로 세계 제2차 대전으로 확대된 역사가 있는데도? 이런 갈등의 고조 사이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며 실룩샐룩 움직이는 중국과 대만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어디까지 전쟁이 확대될 것인지, 언제 멈출 것인지 사실 잘 모르겠다. 

결국 호모 사피엔스는 자연과 다른 종들을 파멸시키다 못해 결국 우리 같은 종까지 멸망시킬 수밖에 없는 것인가? 우리 인류에겐 희망은 없는 것인가? 

지금까지 운이 좋아서 그런지 여행하며 악한 사람을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다. 그런데 내가 너무 순수했던 것일까? 우리는 모두 시커먼 그림자를 마음 한켠에 가지고 다니면서 결국 어떠한 욕망으로 부딪히며 서로 파괴할 수밖에 없는 존재였던 것인데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아 고개만 살짝 돌린 건지도 모르겠다. 우리 사회 한쪽에 항상 잔인하고 끔찍한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데 모르는 척하고 잘 살아왔던 것처럼. 


난 사실 다른 나라에 전쟁이 나던, 누가 누굴 죽이던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냥 가난에서 좀 벗어나고 싶었고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월세도 내고 생활비 쓰고 돈이 조금 모이면 다람쥐 쳇바퀴 도는 삶에서 좀 벗어나 맛있는 것도 좀 먹고 여행도 다니면서 조여오던 숨통을 좀 트여주며 살고 싶었다. 그런데 이렇게 나와 상관없게 느껴지던 ‘남의 이야기’가 어느 순간 ‘나의 이야기’가 되어버려 더는 나의 의견이나 결정들을 미룰 수 없는 순간까지 떠밀려 와 버렸다.  

그래서인지 요즘 들어 속 시끄러운 세상 소식이 들릴 때마다 수많은 의문이 든다. 흑인 조지플루이드가 백인 경찰에게 체포되는 과정에서 숨이 끊어지고 수많은 사람이 인종차별이라며 시위에 나섰다. 이 BLM(Black Lives Matter) 사건 때 배운 것이 있다. 나는 인권은 소중하며 인간 권리와 보호를 위해 앞장서서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왜 하필 언론들은 흑인 차별만 보도하는가? 미국에 아시안이나 남미 사람들도 차별당하는 사람이 많은데 흑인 차별 사건이야말로 오래된 역사를 간직하고 사회에 분노를 일으키며 사람들의 관심을 좀 더 집중시킬 수 있으니 그런 사건들만 대서특필하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은근히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싫은 보수세력을 지지하면서 그 당시 트럼프가 다시 선거에 나갔을 때 표를 좀 더 확보하기 위해 언론과 짜고 쇼를 한 것은 아닌가? 이런 의문들. 이것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지만 파워게임에서 편파 보도를 하는 미디어를 매게로 세상을 본인들이 유리한 쪽으로 끌고 가려는 속셈이 있다는 것 자체는 인지하고 나서 이 세상 어떤 사건들이 터져도 이 사건을 보도하는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BLM 사건이 터지고 나서 CNN 뉴스를 틀어보니 타오르는 불과, 화염, 그리고 시위를 진압하려는 무장한 경찰들만 TV 화면에 틀어주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같은 시간 채널을 돌려 BBC 방송을 보니 마스크를 하고 사회적 거리 유지를 하며 아무 말 없이 조용히 피켓을 들고 거리를 걷고 있는 시위대 앞에서 리포터가 평화적으로 시위가 진행되고 있다며 보도를 해 주었다. 나는 같은 사건을 이렇게 다르게 보도하는 두 방송사를 보고 크게 충격을 받았었다. CNN만 보는 사람들은 시위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게 될까? 사람들을 공포 분위기로 몰아넣으면 권력은 원하는 것을 쉽게 얻을 수 있다.


우크라이나 일은 안 됐지만 우리는 왜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했을 때 왜 이라크 국민들이 고통받는 것은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고통받는 것보다 관심이 없어했을까? 지금도 전쟁보다 더한 고통에서 살고 있는 시리아 난민들이나 아프리카에서 굶어 죽고 있는 아이들이 있는데 그들에 대한 연민은 또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 세상은 언제나 이렇게 혼란스러웠는데, 내가 직장 생활하고 먹고살기 바빠서 무시하고 있다가 이제 의식에 좀 눈을 떠서 실제 세상을 마주하니 혼란스럽게 느껴진 것인가? 


절망적인 감정이 한도 끝도 없이 밀려왔다.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안 그래도 아이를 낳아야 하는 건지 고민이 많은 요즘인데 이런 세계에서 과연 나는 임신을 하고 인류를 파멸의 길로 이끌 또 다른 욕망 덩어리를 낳아야 하는 것인지도 의문이 들었다. 이것이 정말 사실이라면 이 세상에 나 하나로 끝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제발 나에게 누가 아니라고 이야기를 해 주세요…….’


크로아티아 카스텔 노비의 카페 이마스

우울할 땐 광합성을 하면 나아질까 싶어서 윌과 우리가 자주 가던 ‘카페 이마스(Café Imas)’ 테라스(patio)에서 커피 마시며 앉아 있었다. 내 어두운 마음과 대조적으로 크로아티아 카스텔의 푸른 아드리아해는 바람결에 넘실거리며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전쟁이 도대체 어디 났다는 것인지 텔레비전을 틀지 않고서야 이 마을에선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도저히 눈치챌 방도가 없다. 이곳은 ‘평화’ 그 자체였다. 인자하신 할머니 웨이트리스가 정성스럽게 커피를 가져다주셨고 우리 옆 테이블엔 카페의 고양이가 의자 위에서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있었다. 그리고 그 건너 테이블에 엄마와 초등학교 3학년 정도 되어 보이는 딸, 그리고 유모차에 돌도 지나지 않아 보이는 아기가 있었는데 언니로 보이는 그 초등학생 여자아이가 양 손바닥을 쫙 펴서 귀 뒤에다 붙이고,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아기 동생과 놀아주고 있었다. 아기가 활짝 웃었다. 그리고 주위를 더 둘러보았다. 이곳은 나른하고 반짝반짝하고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그 순간 마법처럼 차갑게 얼어붙은 내 마음에 따뜻한 온기가 돌았다.




그래도 사람들은 살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아름답다.


희망을 품으면 세상 살아가기 좀 나아지려나? 이래서 종교 탄생하는구나 생각했다. 내가 이 땅에 발붙이고 사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게 느껴지면 그 끝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선택으로 귀결되기 쉽다. 이 세상이 아무리 더럽고 힘들고 불공평하더라도 다 그런 것은 아닐 것이라는 믿음. 그 믿음 뒤에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는 사랑. 작은 것에 감사하며 아름답게 살아보려 발버둥 치는 마지막 선택. 

희망. 


희망을 찾아서 내 삶이 조금 나아진다면 좋겠지만 대체 나는 어디서 희망을 찾아야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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