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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블 소피아 Nov 15. 2023

시간으로 사는 차



몬테네그로의 코토르라는 도시는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에서 차를 타고 동남쪽으로 2시간 20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다. 처음엔 사실 몬테네그로라는 나라가 있는 줄도 몰랐다. 어느 날 독일에서 니콜라가 독일 다음에 어느 나라로 여행을 가냐고 나에게 물어봤었는데, 나는 체코와 헝가리, 부다페스트 말고는 아직 정한 곳이 없고 물가 저렴하고 한적하고 아름다운 곳을 찾고 있으니 추천해 달라고 했다. 

그러자 그녀는


“동유럽 남쪽에 몬테네그로라는 곳이 있는데 거기에 한번 가봐. 넌 분명 거길 좋아할 거야."

라고 말했다.

“거기가 나라야?"

이게 내 첫마디였다. 여행을 한답시고 보따리를 싸서 용감하게 나왔건만 참 무지하다. 니콜라가 내가 좋아할 것 같다고 말해주었기 때문에 갑자기 몬테네그로가 너무 궁금해져서 역사부터 찾아봤다. 


몬테네그로가 생소했던 이유는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에 속해있었다가 독립을 2006년 6월에 했기 때문에 나라가 생긴 지 얼마 안돼서 그랬던 것 같다. 내가 스물다섯 살 때 나라가 생긴 건데, 어렸을 때 더더욱 세계뉴스나 세계사, 그리고 국제적 이슈에 별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지구 반대편에 새로 생긴 나라 따위엔 신경도 쓰지 않았고 그냥 모르고 살았다. 수도는 포드고리차인데 몬테네그로를 검색해서 사진을 찾아보니 포드고리차는 그냥 도시인 것 같아서 별로 가고 싶지 않았고, 바다를 끼고 있는 코토르라는 도시의 사진을 보자마자 반해서 이곳으로 여행하기로 했다. 


몬테네그로는 몬테네그로인이 61% 이지만 그밖에 세르비아인 9%, 알바니아인 6%, 무슬림 14% 등 많은 인종이 섞여 있는 나라이다. 인종뿐 아니라 종교도 그리스정교회를 주로 믿지만, 이슬람교도들도 섞여 있다.

6세기 이후 남슬라브계인들이 이동해 몬테네그로 인들과 부족 국가를 이루고 살다가 로마인들로부터 기독교를 전파받아 9세기 두클랴 공국을 이룬다. 이후 1094년 세르비아의 라쉬카 공국 지배하에 들어가는데, 두샨 사망 후 1356년 제2대 발쉬치 왕국이 일어서지만, 오스만제국과 베네치아 공국과 전투에서 국력이 약해진다. 그리고 제3대 왕조 ‘쯔르노와비치 왕조’가 오스만제국과 프랑스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계속된다. 1878 러시아가 오스만제국과 전쟁에서 승리하고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이 나라가 발전하게 되는데 1918년 1차 세계대전 이후 세르비아군 무력에 의해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로 편입되었다가, 이후 유고슬라비아가 되었고 1980년 5월 티토의 사망과 91년 연방 붕괴 과정으로 세르비아와 함께 신유고연방을 결성하게 된다. 그런데 1989년 "코소보 사태"가 터지게 되고 이는 몬테네그로라는 하나의 독립된 나라로 떨어져 나오게 되는 결정적 이유가 된다. 


코토르로 가는 버스는 두브로브니크에서 저녁 5시 30분에 출발해 7시 50분 정도 도착하는데 버스는 줄곧 해안가를 따라 달렸다. 코토르는 발칸반도의 동남쪽에 있는 해안가의 마을이다. 코토르에 거의 다다랐을 때 어둑해진 산 밑으로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들에서 불빛이 하나둘 켜졌고 그 불빛들이 해안가 수면 위로 반사되면서 그 모습이 아주 아름다웠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에어비앤비 호스트인 브랭코가 차를 가지고 버스정류장으로 픽업을 와 주었다. 그는 곱슬곱슬한 은발에 키가 크고 멋진 미소와 주름을 가지고 있었고 영어 실력이 유창했다. 그는 이 숙소에 함께 머무르게 될 영국인 한 커플인 헤나, 잭과 함께 우리를 그의 차에 태우고 숙소로 향했다. 숙소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브랭코는 이것저것 숙소와 코토르에 관해 설명해 주었다. 우리는 브랭코를 따라 야외 테라스를 나가보았다. 우리 숙소는 산의 중턱까진 아니지만 산의 무릎 정도까지 되는 제법 높은 지대에 있었는데, 공용 테라스로 나가면 야외에 소파들이 놓여 있었고, 브랭코가 직접 가꾸는 작은 정원이 있었다. 


브랭코의 집, 밤의 테라스


정원 너머로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과 그 밑으로는 깊숙이 산 안쪽으로 들어온 바다 만의 지형이 보였고 산 중턱에 위치한 성곽들과 그 밑에 불이 켜져 있는 마을들이 보였다. 석회암이 주를 이루는 산들이 그림자가 지면 검게 보여서 이 지역을 ‘검은 산’이라 불렀고 몬테네그로라는 나라 이름이 바로 ‘검은 산’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브랭코 말에 의하면 코토르는 동남부 유럽에서 유일하게 노르웨이와 같은 카스트 지형이라 유럽의 피오르라 불리기도 한다고 했다. 빙하의 침식작용으로 깊게 파인 만으로 바닷물이 들어와 바다의 깊이가 꽤 깊기 때문에 거대한 유람선이 정박할 수 있다고 한다. 이 거대한 유람선들은 아침마다 들어왔다 저녁이면 사라진다고, 내일 아침 일어나면 볼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아침이 되어 우리 방에 창문을 열었는데 어제 봤던 그 뷰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브랭코의 말대로 짙푸른 바다 위로 하얗고 커다란 유람선이 한 대가 정박해 있었다. 


몬테네그로 코토르


몬테네그로 코토르


도착한 다음 날은 도시를 둘러보려고 산책했다. 불과 23년 전에 이 무시무시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던 몬테네그로는 언제 그랬냐는 듯 놀라울 정도로 평화로웠다. 어쩌면 겉으로 보기에만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크로아티아의 바다가 민트색과 청록색의 에메랄드 보석과 같은 컬러였다면 코토르의 바다는 깊고 산의 그림자에 가려져 좀 더 짙고 검푸른 컬러의 바다였다. 반짝이는 바닷가 수면 위로 높진 않지만 거칠게 생긴 산들이 우뚝우뚝 솟아 있었다. 산과 바다가 있는 기가 막힌 경치임에도 불구하고 물가는 낮았다. 



브랭코가 추천해 준 정육식당 고깃집에 가니 1kg 티본스테이크가 23유로 정도였다. 후에 티본스테이크가 유명하다는 이탈리아 피렌체에 가서도 먹어봤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코토르의 티본스테이크가 더 저렴하고 맛있었다. 코토르 구시가 앞의 어느 낮은 건물에서 과일과 채소를 판매하는 시장이 섰는데 와인 마실 때 안주하려고 올리브 2유로 치 달라고 하니 플라스틱 팩에 끝도 없이 담아주셨다. 무게를 달아보진 않았지만 1kg 정도 됨 직했다. 아메리카노와 카푸치노 커피도 1유로에서 2유로 정도면 마실 수 있었다. 역시 이탈리아의 영향을 받아 크로아티아와 마찬가지로 아메리카노 양은 적었다. 와인도 매우 저렴해서 한 병에 5유로 정도면 맛 좋은 와인을 맛볼 수 있었다. 우리는 이 작은 도시에서 2 주 동안이나 머물렀다. 마트에서 장을 봐서 음식을 집 곳곳에 채워 넣고 대부분 아무 데도 나가지 않고 테라스에서 책을 보고 음악을 듣거나 와인을 마시고 숙소에서 지냈다.


하루는 윌과 테라스에서 스피커로 음악을 틀어놓고 책을 보고 있었는데 호스트인 브랭코가 왔다.

“헬로! 코토르 여행 잘하고들 있나요?"

“마을이 너무 아름답네요. 저희는 이곳에서 잘 쉬고 있어요."

몬테네그로 코토르가 너무 좋아서, 브랭코의 집이 자기 집처럼 편안하니 너무 좋아서 해마다 겨울을 이곳에서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이곳이 너무 좋아서 캐나다 유콘에서 겨울만 되면 우리 집에 와서 겨울을 보내는 청년들이 있어요. 그들은 유콘 차를 우리 집까지 가져오죠. 지금도 우리 집 앞에 캐나다 유콘 차가 주차되어 있다니까요. 믿어지나요? 유콘에서 온 차라니? 하하하."

“와우!"

캐나다 사람, 특히나 유콘에 거주하는 사람이라면 지긋지긋한 겨울을 피해 몬테네그로에 몇 달씩 있다 간다는 건 있을 수 있는 이야기다. 유콘이라면 아마 겨울에 마이너스 40~50도까지 떨어질 테니까. 더군다나 일을 인터넷으로 할 수 있고 날씨도 캐나다보다 더 따뜻하지, 생활비도 캐나다보다 더 저렴하니. ‘why not?’ 

코로나19가 우리 세상을 이렇게 바꾸고 있나 보다. 


브랭코와 이야기하며 그의 인생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브랭코는 사실 물류 선박을 운영하던 선장이었다. 한 번은 그가 아프리카 연안 쪽으로 배를 몰고 가던 중 해적들에게 공격당해 죽을 뻔한 적이 있다고 한다. 다행히 총탄은 그를 피해 갔지만 그는 그 사건 이후 트라우마가 생겼다. 그리고 40세라는 젊은 나이에 은퇴하고 집에서 그냥 놀았다. 하지만 10년 정도 놀고 나니 인생이 너무 지루했다고 한다. 어떤 소일거리라도 하는 삶을 살지 않고서는 지루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해외로 떠돌아다니기는 싫었던 그는 해외에 모든 여행자를 그의 집으로 불러들였다. 에어비앤비를 운영하게 된 것이다. 지금 그는 본인의 삶이 너무 만족스럽다고 했다. 엄청난 돈을 버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또 너무 바쁘게 일하고 싶지도 않고 여유 있게 딱 본인이 감당할 수 있을 정도 일을 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인간에게 시간은 매우 소중한 것이며 그 주어진 시간을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고 하며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간과하고 있어요.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우리가 죽는다는 사실 하나는 누구에게나 평등하죠. 우리에겐 유한한 시간이 있을 뿐이잖아요. 그럼, 그 정해져 있는 인생을 노예처럼 살 필요가 없는데도 사람들은 돈을 벌려고 힘들게 다람쥐 쳇바퀴 도는 삶을 살아요. 예를 들어 자동차라는 것은 사람과 물건을 운반해 주는 목적이죠. 굳이 좋은 차가 필요 없어요. 당신들을 픽업해 준 내 차는 거의 20년이나 됐는데도 아직도 망가지지 않고 튼튼하게 잘 굴러가요. 여행자들을 데려다주기도 하고 내가 생활하는 데 지장이 없죠. 하지만 사람들은 차의 목적을 달성한 것에 그치지 않고 좋은 차를 사려고 해요.  예를 들어 한 대에 3000만 원 하는 차를 산다고 가정해 보죠. 내가 하루 8시간 한 달을 일해서 300만 원을 번다고 가정해 보자고요. 그럼, 월세 내고 생활비 하고 최대한 100만 원을 한 달에 차값으로 지불할 수 있다고 하면 30개월이나 일을 해서 차에 쏟아부어야 한다는 말이죠. 그 말은 아무리 회사가 싫고 내가 그만두고 싶은 일이 생겨도 30개월은 노예처럼 회사에 묶여 살아야 한다는 말이에요. 이 소중하고 유한한 삶에 당장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한 채 30개월을 만족하지 못한 회사를 위해 쓴다는 것은 나로선 현명한 판단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물론 거기에 만족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요. 사람들은 3,000만 원이라는 돈을 주고 차를 산다고 착각하죠. 사실은 본인의 30개월이란 시간으로 차를 사는데 말이에요.”


브랭코는 비록 다 낡아빠진 차를 타고 다니지만, 본인의 인생이 너무나 행복하다고 했다. 그동안 선장 일을 하면서 모은 돈과 퇴직금, 그리고 대출금으로 바다가 내려다보는 커다란 빌라를 구입하여 1층엔 본인이 살고 나머지 방은 에어비앤비를 한다. 그는 이혼해서 부인도 없고 자녀들도 독립해서 혼자 살고 있지만, 전 세계에서 그의 집으로 모여드는 사람들과 소통하며 지낸다. 오후 4시면 낮잠도 자고 천천히 여유 있게 사는 삶이 좋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며 우리에게 미소 짓는 그는 좋은 옷도 입지 않고 좋은 차도 가지지 않았지만, 온몸에서 은은한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내가 원하는 삶, 자신감 있는 삶을 사는 행복한 사람의 기운이다.


 인생에 있어서 시간이 소중하다는 것은 나도 이미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라도 늦기 전에 이런 여행을 하고 싶었고 하고 있다. 매 순간 현재를 붙잡으려고,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해 살려고 노력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시간으로 차를 사는 것이라는 브랭코의 말을 들으니 시간의 소중함이 더 현실적으로 와닿았다. 우리는 이 시간을 어떻게 쓰며 살 것인가?


과거에 좋은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성공한 사람이라 생각한 때가 있었다. 나도 그렇게 되고 싶었다. 좋은 아파트에 살면서 외제 차 몰고 다니며 아이들과 애완동물을 키우고 해외여행 다니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그들처럼 되는 것이 행복한 삶이라고 사회가 나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세상에서 정해놓은 행복의 기준 따위는 허상에 불과하다. 캐나다에서 전 남자친구에게 BMW 차를 선물 받은 적이 있었다. 꿈에 그리던 차를 타고 다니게 되어 참 기분이 좋았었다. 하지만 그 사람과 성격 차이로 자주 싸우면서 행복하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돈이 있어도 행복하지 않은 나를 바라보며 행복의 조건이 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선물 받은 차를 돌려주고 헤어졌다. 나는 지금 윌이 타고 다니는 스쿠터 뒤에 타고 다녀도 BMW를 타고 다닐 때보다 더 행복하다. 

IMF로 인해 아버지께서 경제적으로 무너지신 후 항상 가난하게 살았기 때문에 돈이 많은 삶을 동경했고, 돈만 있으면 행복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금 혹시 과거의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끊임없이 좋은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과 좋은 집에 사는 사람과 나를 비교하는 불행한 영혼들이 있다면 과연 유한한 인생에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아무리 사회에서 “행복이란 이런 것이란다. 빨리 결혼하고 아파트를 사고 차를 사고 아이들을 낳고 애완동물을 키우렴.”이라고 당신들에게 외치더라도 “그게 누구의 행복인가요? 나의 행복이라고 나에게 강요하시는 건가요?”라고 자신 있게 말하길, 더 단단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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