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트래블 소피아 Nov 16. 2023

열정이 넘치는 튀르키예 사람들


 우리는 너무도 편안했던 브랭코의 소파가 우리를 먹어 치우기 전에 다음 행선지로 떠날 채비를 했다. 윌의 친구 중 한 명인 팀이 튀르키예 이스탄불에 살고 있는데 그에게 튀르키예 여행을 할 거라고 말을 했더니 자기 집에 와서 지내라고 감사하게 방 한 칸을 스스럼없이 내주었다. 팀은 미국인으로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치면서 오랫동안 살다가 한국에 관광 온 튀르키예 아가씨 디뎀을 만났는데 그녀에게 정말 반해버렸고, 그녀가 터키에 돌아가서도 쭉 연락을 하더니 결국 결혼에까지 골인하며 튀르키예에 둥지를 틀어버렸다. 참 인연이란! 튀르키예까지 육로로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두 시간이면 도착하는 항공편으로 비행기를 예매했는데 집에서 10분 거리인 티바트(Tivat) 공항에서 출발하면 되었기 때문에 캡틴 브랭코에게 오전 9시에 공항에 가는 택시를 불러달라고 부탁했고 그는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체크아웃을 하고 짐을 바지런히 꾸려 오전 9시에 밖으로 나와보니 잘생긴 선장 브랭코가 씩 웃으며 본인의 차를 가리키며 말했다.


“택시 대령입니다."

“어머, 고마워서 어떡하죠?”

“내가 장담하는데, 지금 다시 당신들 방에 가서 두고 온 것 없는지 한번 체크하고 오세요. 육로가 아니라 항공편으로 떠나는 그대들이라 다시 올 수 없어요. 내가 중요한 물건 두고 간 경우를 항상 봐 왔거든.”

“에이,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는 배테랑 여행자라 짐을 틀림없이 꼼꼼하게 잘 쌌어요.”

하고 내가 말했다. 그리고 윌이 혹시 모르니까 본인이 방으로 가서 다시 한번 체크를 하고 오겠다며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윌은 내가 가진 것 중에서 가장 비싼 아이패드를 집어 들고 나와서 나에게 보여주었다. 그것을 본 나의 눈은 거의 튀어나오기 직전까지 커졌고 턱이 탁 열렸다. 철렁한 가슴을 감싸 안으며 나는 외쳤다.

“맙소사!”

나를 보던 브랭코가 말했다.

“봤죠?”

 

재작년 크리스마스 때 윌이 선물로 사준 아이패드를 그림을 그리겠다고 여행할 때 가지고 왔는데 아침에 짐 싸는 동안 충전하겠다고 거실 텔레비전 옆에서 충전을 시켜놓고 그냥 나온 거다. 간담이 서늘했다. 분명 꼼꼼하게 본다고 봤는데…….


브랭코가 공항에 가는 도중에 한 커플 이야기를 해주었다. 체크아웃하고 크로아티아로 떠나는 한 커플에게 못 챙긴 건 없는지 다시 훑어보라고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없다고 하고 그들은 차를 몰고 떠났다. 브랭코는 그들이 여권을 두고 갔다는 걸 나중에 알아차렸지만 어쩔 도리 없이 기다렸다. 그리고 크로아티아 국경 근처에 다다르자, 여자친구가 여권을 안 가져온 걸 알아채고 다시 차를 돌려 코토르로 돌아가는데 운전하던 남자친구는 그렇게 중요한 걸 두고 오면 어떡하냐고 코토르로 돌아오는 내내 여자친구에게 화를 내며 못마땅해했다고 한다. 그들이 브랭코의 집에 도착했을 때 브랭코는 여자친구와 남자친구의 여권까지 흔들어 보였다. 남자친구 본인도 여권을 두고 온 것이다. 그 사실을 뒤늦게 알고서 여자친구는 남자친구를 쏘아보며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그들은 말없이 난처한 표정을 하며 타고 온 차를 타고 돌아갔다고 했다. 그들이 아직 잘 사귀고 있는지 모르겠다면서 브랭코 선장님은 추억을 회상하며 말하셨다. 아무리 확신에 차 있더라도 체크아웃하고 떠나기 전에 반드시 다시 한번 체크하라는 교훈을 얻고서 우린 마침내 공항에 도착했다. 티바트 공항이 너무 작고 사람들도 많이 없어서 탑승수속이 매우 수월하게 끝났다. 그리고 우리는 눈 깜짝할 사이에 튀르키예에 도착했다.


튀르키예 공항은 크고 복잡했다. 히잡을 두를 여성들이 많은 걸 보니 튀르키예라는 것이 실감이 났다. 히잡을 두른 여성들은 그녀들의 매력적인 머리카락을 꼭꼭 숨겨야 했기 때문에 눈화장에 진심이었다. 비행기 탑승할 때부터 느꼈지만, 엄청 진한 색 섀도를 눈두덩이에 칠했고 길고 풍성한 가짜 속눈썹을 붙여서 머리카락이 아니라 눈 하나만으로도 누구든 충분히 유혹할 수 있을 만큼 눈을 강조했다. 우리는 팀이 공항까지 데리러 와 주었기 때문에 공항 주차장을 찾아 헤맸다. 주차장을 찾는데 약간 헷갈렸지만, 다행히 팀을 잘 만났다. 

팀은 윌보다 윌 사촌인 저스틴이랑 더 친한 친구이다. 저스틴이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부산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일을 했는데 그때 팀을 만나서 친하게 지냈고, 윌이 뒤이어 한국에 왔을 때 저스틴과 저스틴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잘 어울려 다니며 친구가 되었다. 나는 한국에 있을 때 그를 한두 번 정도만 만난 사이여서 그렇게 친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외지에서 보니 어찌나 반갑던지. 


그는 이스탄불 도심에서 차를 타고 동남쪽으로 1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말테페 (Maltepe)라는 지역에 살고 있었다. 이 지역은 우리나라로 치면 경기도 같은 느낌이었다. 주거지역, 해변, 공원 등이 널찍하게 분포되어 있었고 복잡한 도심에서 약간 벗어나  조용하고 안전한 느낌이었다. 우리는 팀의 아름다운 아내인 디뎀과 만나 인사를 했다. 디뎀의 눈은 확신에 차 있고 자신감이 가득했으며 싫을 때 싫다고 말하는 똑 부러지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난 그 점이 마음에 무척 들었다. 


노을지는 이스탄불 말테페 해변 공원(Maltepe Sahil Parkı)의 모습
이스탄불 말테페 해변 공원(Maltepe Sahil Parkı)의 모습

 

점심때 디뎀이 추천해 준 집 근처 튀르키예 음식점에 가서 음식을 잔뜩 먹었다. 튀르키예 음식들이 하나같이 한국인 입맛에 다 맞고 맛있었다. 저녁에는 팀이 자주 가는 펍에 가서 맥주를 마셨다. 그런데 펍에 간 날 마침 그날이 축구 경기가 있는 날이었나 보다. 맥주를 한두 잔 마시는데 바깥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디뎀 말로는 바깥 상황이 조금 더 있으면 아마 심각해질 것 같고 조금 있다가 나가야 할 것 같다고 했다. 튀르키예인들은 축구에 목숨 건다고 했다. 펍은 2층이었는데 바깥에 총성 같은 폭죽 소리가 펑펑 울렸고 사람들이 한둘 모이며 축구팀 국기를 흔들며 노래를 불렀다. 처음엔 열댓 명, 그리고 이삼십 명이 모이더니 나중에 거의 2~300명 정도가 길거리로 모였고 도롯가에서 붉은빛을 내는 폭죽에 불을 밝히고 거의 전투태세로 소리를 질러댔다. 이윽고 데모 진압할 때 볼수 있는 튀르키예 전투 경찰들이 들이닥쳤고 거리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테러 현장같이 변해 버린 거리를 우린 가까스로 빠져나왔다. 


튀르키예에서 축구 경기가 있는 날은 밤에 돌아다니지 말것.

튀르키예 사람들의 넘치는 열정에 화를 입을지도 모른다.

작가의 이전글 요정의 나라로 초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