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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블 소피아 Nov 07. 2023

실수하고 용서하기

우리는 독일 베를린에서 3주 정도  머무르면서 천천히 도시를 둘러보았다베를린 곳곳에 전쟁과 관련된 유적들이 있었다. 


 어느 날 윌과 함께 유대인 박물관(Jewish Museum Berlin) 둘러보았다나는 괜히 박물관이 어둡고 음울할  알았는데 생각보다 전시실이  밝고 현대적이었다하지만 전시실을  둘러본  나치에 의해 희생된 수많은 사람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나라면 어땠을까내가 이 시기에 독일에 사는 유대인이었다면 얼마나 무서웠을까윌이 말했다.


이건 독일인의 잔혹한 역사가 아니야이건 인류의 잔혹한 역사야.” 


 하루는 이 전쟁 관련 유적들을 둘러보려고 혼자 베를린 이곳저곳 다녔었다윌은 심리 상담 공부를 하고 싶다고 온라인으로 코스를 하나 등록하고 강의를 들었다. 그는 숙소에서 공부하는 시간이 많았고 그때마다 난 혼자서 가보고 싶은 곳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먼저 카이저 빌헬름 기념교회를 보러 갔다가 베를린 장벽으로 향했다카이저 빌헬름 교회는 빌헬름 2세가 카이저 빌헬름 1세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교회이다. 1895년부터 4년에 걸쳐 신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멋지게 지어졌지만 2 세계대전  폭격을 당했다

버스에서 내려 천천히 교회 쪽으로 걸어가는데 멀리서 무너져 내린 지붕이 보였다교회에 가까이 다가서자 전쟁  폭탄을 맞아 허물어진 한쪽 벽면과 무너진 교회 지붕이 고스란히 노출된 모습을  자세히   있었다그리고  모습에 무거운 전율이 느껴졌다독일인들은 과거에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고  실수를 반성하고자 포탄으로 허물어진 교회를 고쳐 짓거나 옮겨 짓지 않고 그대로 두어  때마다 다시는 이런 짓을 하면 안 된다고 시민들에게 똑똑히 가르치고 있었다. 

  상처받은 교회를 보며 자신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나는 살면서 많이 실수하고 남에게 상처도 많이 주었다하지만 실수를 할 때면 내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고 상황이 그랬다며 나의 잘못을 부인부터 하고 본다에이설마 내가 그런 실수했을까, 하고 내가 아닌 남부터 의심한다내가 실수했거나 잘못했음을 인정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독일은 어떻게 이렇게   있을까내가 잘못했다고 용서해 달라고 이렇게도 당당한 태도로 수치스러운 부분을 드러내 보여줄  있을까?



독일은 전쟁에서  후에 어마어마한 전쟁 보상금을 지불해야 했고서독과 동독이 통일된  어려운 동독의 경제 상황까지 아야 했지만 모든 시련을 이겨내고 믿을  없을 정도로 현재 GDP 세계 4위인 강대국이 되어있다나는 곳곳이 상처투성이인 베를린 여기저기를 거닐고 숙소로 돌아왔다그리고 용감하게 용서를 구하며 본인들이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지 낱낱이 파해쳐 전시해 놓은 독일인들이 대단해 보였다진심으로 그들이 존경스러웠다. 


 숙소로 돌아온 나를 보고 환하게 웃으며 윌이 “오늘 하루 어땠어?”라고 물어봐서 내가 봤던 유적지들을 설명하는데 갑자기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이건  자신에게조차 당황스러운 갑작스러운 눈물이었다내가  우는지 이유도  몰랐다누가  보면, ‘유적지 보고 와서  눈물? 좀 지나친 것 아냐?(오버하는 것 아냐?)’라고 할 것만 같은 황당한 눈물이었다 상처투성이 유적지들이 나의 가슴을 몽글몽글하게 만들어 흘러내린 뜨거운  눈물방울은 누구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내가  자신을 위로하는 투명한 증거의 방울들이었다. 


나는 여행을 하면서 여행지에서 낯선 사람들도 많이 만났지만, 남편의 친구들도 많이 만났다. 윌이 한국에서 만난 미국인 친구인 팀은 튀르키예 여성과 결혼하여 이스탄불에 살고 있었는데 우리가 이스탄불을 여행할 때 그들의 집에 일주일간 머무르며 함께 시간을 보냈다. 

팀의 러브스토리는 이러하다. 팀이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살고 있을 때 한국에 여행하러 온 튀르키예 여성인 디뎀과 사랑에 빠졌다. 디뎀이 튀르키예로 돌아갔지만, 그들은 장거리 연예를 계속한 후 결국 결혼을 했고 팀은 그녀가 있는 튀르키예로 날아가 그녀와 함께 살게 되었다. 

팀이 한국에 있었을 때 나는 그와 그리 친한 편이 아니었다. 남편의 친구인 데다 우리 부부는 서울에, 그는 부산에 살고 있어 만날 기회가 많이 없었다. 튀르키예에 와서는 그와 디뎀의 집에 일주일 머물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와 대화할 기회가 생겼다. 하루는 늦은 저녁 소파에 앉아 맥주를 함께 마시며 팀과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팀이 나에게 물었다.

“소피아, 우리 각자 자신에게 가장 좋은 점에 대해 하나씩 이야기해 볼까? 너는 너의 장점이 뭐라고 생각해?”

“글쎄……. 잘 모르겠는데.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 남을 잘 기다려주는 것? 이런 건가?”

내가 쑥스러워하며 내 장점을 이렇게 이야기하자 팀이 말했다.

“아니, 최고의 것 하나만 골라야 해. 그 둘 중에 뭘 것 같아?”

나는 한참을 생각한 후에 말했다.

“음……. 난 상대방에게 많이 기대하지 않고 그냥 옆에서 잘 기다려주는 것 같아.”

그리고 내가 물었다.

“그렇다면 너의 최고 장점은 뭐라고 생각해?”


“Forgiveness” (용서)

그리고 팀은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My mom said that to me. ‘Making a mistake is the best part of your life. So even if I make a mistake, I give myself forgiveness because I still have a hope.”

“우리 어머니께서 나에게 말씀하셨어. 실수를 하는 것이 삶을 살아가는데 최고의 미덕 아니겠냐고. 그래서 나는 실수를 해도 나 자신을 잘 용서해. 왜냐면 나에겐 아직 희망이 있으니까.” 

여기서 희망은 실수를 용서하고 더 좋은 사람이 될 것이라는 희망인 것 같았다.

 

나는 나 자신을 팀처럼 잘 용서했던가?

실수를 하는 것이 삶에 있어서 가장 멋진 부분이라고 하신 팀의 어머니 말씀에 깊은 철학적 의미가 사십 대인 나에게는 조금 따스하게 다가왔다. 나만 그런 건지 한국 사람들이 그런 건지……. 뭘 조금만 실수하면 나의 실수로 인해 남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은 아닌지 노심초사하며 주변을 살피곤 하였고 ‘나는 왜 이 모양 이 꼴인가’라고 자책하기 일쑤였다. 남을 용서하는 것보다 나는 나를 용서하는 것이 참 힘들었다. 그리고 같은 실수라도 할까 두려워져 잔뜩 움츠러든 채 겁을 먹었다. 혹시 누군가 나의 실수로 마음을 다쳤다는 소리라도 들으면 그 사람에게서부터 도망쳤다. 그 사람에게 용서를 구하고 옆에 있어 봤자 앞으로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 저지르고 그 사람의 마음을 다치게 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 사람 옆에서 없어지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라 생각했다.  

 독일 카이저 빌헬름 교회를 보면서 흘렸던 눈물은 용서를 쉽게 구할 수 없었던 자신이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나 자신을 틀에 가두어 놓고 용서하지 못한 채 괴로웠었는데 이제 자신을 좀 용서해 주라는 생각이 들어서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팀의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비로소 독일에서 흘렸던 눈물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생은 사실 실수투성이가 모여 만들어진 것이다. 실수를 저지를 때마다 죄책감과 수치스러움에 시달리며 거기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면 인생은 얼마나 괴롭고 힘든 것이 될까 생각해 보았다. 실수하면 안 된다는 강박을 가지고 실수할까 봐 전전긍긍하는 나에게, 그리고 실수하고 나서 나 자신을 잘 용서하지 못하는 나에게 실수를 하는 것이 최고의 미덕이라는 팀 어머님의 말씀이 엄청난 위로를 준 이유이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는 것이고 처음은 서투르기 마련이며 실수하면서 배워야 진정 자신의 것이 된다. 베테랑들은 초보자들보다 실수는 덜하겠지만 하물며 베테랑임에도 불구하고 실수를 할 수 있고 또 그 실수로 인해 겸손해야겠다는 가르침도 배울 수 있다. 실수나 실패 없이 승승장구만 하는 인생만 산다면, 혹은 그렇게 보이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삶은 가짜일 확률이 높다.  


 존 스튜어트 밀 작가가 쓴 자유론의 일부분이 생각이 났다. 

“우리의 육체나 정신, 영혼의 건강을 보위하는 최고의 적임자는 누구인가? 그것은 바로 각 개인 자신이다. 우리는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되는 방향으로 자기식대로 인생을 살아가다 일이 잘못돼 고통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설령 그런 결과를 맞이하더라도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가게 되면 다른 사람이 좋다고 생각하는 길로 억지로 끌려가는 것보다 궁극적으로는 더 많은 것을 얻게 된다. 인간은 바로 그런 존재이다.”

-존 스튜어트 밀 John Stuart Mill


남들이 이 길이 맞는다고 이 길로 가야 한다고, 네가 선택한 길로 가면 실수라고 충고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고집하여 내가 선택한 길로 가서 결국 잘못돼 고통을 당하더라도 결론적으론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는 거다. 실수해야만 그것이 내 인생이 되는 것인데 실수할까 봐 무서워 아무런 진전도 없이 가만히만 있으면 결국 나는 내 인생을 살 수 없게 된다. 그러니 실수는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실수하고 반드시 따라오는 과정이 나에 대한 용서가 되어야 나는 앞으로 한 발짝 더 나갈 수 있다. 성장할 수 있다.

나는 팀과의 대화로 나 자신에게 조금만 더 기회를 주고 용서하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누군가 나와 같이 실수가 두려운 사람이 있다면 자신에게 말해주자. 


‘실수하고 용서하고 배우면서 그것이 모여 인생이 되는 거야. 실수해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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