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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블 소피아 Nov 07. 2023

동방박사와 크리스마스


 독일에 가기 전에 독일에 있는 남편 친구들에게 우리가 독일로 여행을 간다고 소식을 전했었다. 남편이 캐나다에서 대학교에 다닐 때 수영 선수 활동을 같이 했었던 친구 커플이 있었는데 그 친구들이 지금 독일 본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다. 우리 소식을 듣자 친구들은 반갑게 맞아주며 자기 집에 오라고 초대해 주었다. 유럽의 국내선 비행기 가격이 비교적 저렴했기 때문에 우리는 흔쾌히 베를린에서 본으로 가는 국내선 티켓을 끊었다. 

 본에 도착하여 거리를 걷는데 3~4층의 파스텔 색조 건물들이 아기자기하게 쭉 붙어있는 모습이 너무 귀엽고 예뻤다. 그냥 거리를 걷고 있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말로만 듣던 라인강의 한줄기를 따라 친구들과 산책했다. 알프스에서 발원하여 1,320k에 걸쳐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 네덜란드까지 걸쳐 북해로 흘러 들어가는 강. 나는 이 강물 위에 눈을 던져놓고 뜬금없이 라인강을 둘러싼 역사적 이야기들을 떠올려 보았다. 기원전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은 이렇게 바뀌었는데 수많은 이야기들을 품고 이 라인강은 내 앞에서 묵묵히 흘러가는구나. 마치 나도 유럽 역사의 한 부분에 발 도장이라도 찍은 기분이 들어 씩 웃음이 나왔다. 


다음날 친구들이 본에서 기차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쾰른이라는 도시에 있는 대성당에 가보자고 했다. 유럽에서 꽤 유명한 성당이라고 해서 정보를 찾아보니 서유럽을 대표하는 건축물 중 하나로서  1996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유네스코에 등재되었고 높이 157m로 유럽에서는 두 번째,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고딕양식 건물이었다. 서울 우리 집에서 보이는 잠실 롯데타워가 555m였으니 높은 건물에 대한 큰 환상은 없었다. 

쾰른 대성당은 기차역에서 내렸을 때, 바로 보이는 위치에 있다. 그래서 친구들과 기차에서 수다를 떨며 내리자마자 나는 어떤 준비도 없이 이 거대한 건축물을 갑자기 마주하게 되었다. 우리는 덩치 큰 괴물이라도 맞닥뜨린 것처럼 입을 딱 벌리고 서서 바라보았다. 높이 157m를 왜 작다고 생각했을까? 나는 내 눈앞에 있는 것이 건물이 맞는지 CG 효과는 아닌지 의심을 거듭해야 했다.

입구 쪽으로 가서 올려다본 성당은 신의 위대함 앞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게끔 디자인되어 있었다. 섬세하게 조각되어 주렁주렁 성당 벽을 장식한 성인들이 이 건물 커다란 문 꼭대기에 붙어 서서 그 앞에 선 한낱 인간을 내려다보고 있었기 때문에 그 앞에 서니 잘못한 것도 없는데 죄지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독일의 가톨릭 하면 부정적인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하기 전까지 착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죄를 면제하고 천국에 보내줄 테니 면죄부를 돈으로 사라고 강요하여 거의 도둑질하다시피 돈을 박박 긁어모은 부패한 가톨릭 교황과 교주들, 나에게 바로 그것이 중세 시대 가톨릭의 이미지였다. 그래서 멋진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감탄하지 않으려고 애쓰며 보려고 하였지만 가까이에서 보니 건물을 무너지지 않게 최대한 높이 올려보려는 인간의 노력이 빚어낸 기술이 대단하게 느껴졌고 외벽과 내부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기술에도 혀가 내둘러졌다. 

네이버 이지앤북에 따르면, 쾰른 대성당은 동방박사 3인의 유골을 안치하기 위해 1248년부터 지어졌으며  1880년에 완공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문득 궁금해졌다. 동방박사, 그들은 과연 누구일까?


 우리는 성당 내부를 관람하기 위해 줄을 선 후, 입구에서 관리자에게 백신 증명서를 보여주고 마스크를 쓰고 성당 내부를 훑어보았다. 성당의 내부는 고딕 양식의 특징답게 층고가 매우 높았고 형형색색 스테인리스 글라스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나는 열심히 동방박사를 찾았지만 찾지 못했다. 


 예수님을 경배하는 성경 구절 마태오 2장 1절에서 12절에는 동방박사의 방문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Now after Jesus was born in Bethlehem of Judea in the days of Herod the king, behold, wise men from the east came to Jerusalem, saying, “Where is he who has been born king of the Jew? For we saw his star when it rose and have come to worship him.”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뒤에, 동방에서 지혜로운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물었다.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난 아이는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는 그의 별이 떠오르는 것을 보고, 그에게 경의를 표하러 왔습니다.’

그리스 성경 원전에서는 동방박사를 마고이(Magoi)로 표시하였지만 킹 제임스 번역본에서는 오랫동안 현자들 Wise men으로 번역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성경은 존 로스 번역본(1877)으로 동방박사라 번역했는데 이것은 박학다식한 사람이라는 중국 성서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한다. 중세 말부터 시편에 기록에 따라 그들을 왕으로 보는 해석도 생겨났다. 

또한 그들은 동쪽에서 왔는데 동쪽이라 함은 페르시아를 중심으로 한 파르티아 제국(이란 지역 기원전 247년~서기 224년)을 말하며 이 제국의 종교는 조로아스터교였고 사제를 Magi라고 했다. 헤로도토스는 <역사>에서 마고스(magos)라는 존재를 언급한다. 마고스는 메디아 왕국(이란지역 기원전 728년~기원전 550년)의 조로아스터교의 제사장 계급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 단어는 로마로 건너간 후 라틴어 마구스(magus)가 되었고 복수형은 마기(magi)가 되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아기 예수 탄생일에 선물을 가져오신 3명의 동방박사가 바로 마기(magi)이다. 유럽인들은 이 마기라는 제사장들이 하는 의식들을 신비하게 생각했다. 우리가 마법이라고 불리는 영어 매직(magic)의 어원이 여기서 왔다. 예수님과 마법사들이라니! 참 재미있다.

왜 조로아스터교 사제들이 예수님을 경배했을까? 마기들은 태양계의 많은 천체의 움직임, 주기, 패턴 그리고 발생을 연구했으며 다양한 문화, 역사적 문서, 구전, 예언, 전통도 연구하였다. 구약성서에 있는 메시아가 나타난다는 예언을 믿은 마기들이 별을 연구하다 그 별을 따라 이스라엘로 왔다고 했다. 나는 일신교인 (유일신을 믿어야 하는) 그리스도교의 메시아가 또 다른 일신교의 종교 제사장에게 축하받았다는 점이 참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밖으로 나와 입구에서 왼쪽을 보니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입장하는 문이 있었다. 입구에서 백신 증명서를 보여주고 마스크를 쓰고 입장하였다. 밖에서는 원래 마스크를 안 써도 되는데 크리스마스 마켓에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쓰는 것 같았다. 친구 말에 의하면 작년 코로나19로 크리스마스 마켓이 취소된 것에 사람들의 불만이 치솟았다고 한다. 백신을 다 맞은 올해까지 크리스마스 마켓을 취소한다면 독일 정부를 향한 사람들의 불만이 폭발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올해는 꼭 오픈을 했어야 했다고 설명했다. (안타깝게도 이 논리에 드레스덴은 해당되지  않았지만) 

이를 증명이라도 해 주듯 쾰른 크리스마스 마켓은 엄청난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앞에 가는 사람 발을 밟지 않으려면  보폭을 좁게 뒤뚱뒤뚱 천천히 걸어야만 할 정도였다. 오랜만에 크리스마스 마켓에 나온 모든 가족의 눈은 흥분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마스크를 썼지만 모든 사람의 얼굴은 하나같이 들뜨고 기쁜 표정이란 걸 알 수 있었고 이 분위기에 휩쓸려 나도 기분이 한껏 좋아졌다. 크리스마스 마켓 중심에 대형 트리가 높이 설치되어 있었고 트리를 중심으로 빨간 지붕의 아기자기한 텐트 부스들이 모여 있었다. 트리 꼭대기부터 텐트들 사이로 요정의 불빛을 흉내 낸 전구들이 커튼처럼 드리워져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각 부스마다 독특한 제품들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깜찍한 크리스마스트리 장식, 수제 잼이나 수제 쿠키, 소시지나 독일 전통 음식, 글뤼바인 등이 보였다. 

이곳이 드레스덴은 아니지만 ‘독일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글뤼바인 마시기’라고 급하게 수정한 나의 버킷리스트의 한 줄을 지우기 위해 글뤼바인 부스에 줄 서서 주문했고 친구들과 길가에 듬성듬성 놓인 의자 없는 테이블 쪽으로 가서 함께 마셨다. 

 베를린에 돌아가서도 크리스마스 마켓을 여러 군데 가봤지만 단연코 쾰른 크리스마스 마켓이 최고였다. 원래 목적지였던 드레스덴은 가 보지 못했지만 아름다웠던 쾰른 크리스마켓을 가슴속에 담았다.

 참고로 우리 둘 다 종교는 없다. 나는 토론토에서 세례를 받았고 교회를 다녔었지만, 지금은 교회에 다니지 않는다.  종교에 많은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고 이제 더 이상 믿음이 없어졌다. 언젠가 로버트 램 작가가 쓴 서양 문화의 역사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 책에서 기원전 3000-2350년 수메르인들이 남긴 세계 최초의 문학작품인 ‘길가메시 서사시’에 나오는 한 구절을 보게 되었다. 길가메시는 반은 역사적 실존 인물, 반은 전설상 인물로 여겨지고 있는 인물로서, 이 문학작품은 신들로부터 벌을 받게 된 방탕한 왕의 이야기이다. 그 작품에서 대홍수를 묘사하는 부분이 기가 막혔다. 왜냐하면 성경에 있는 노아의 방주 이야기와 너무나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길가메시 서사시가 나온 것이 기원전 2000년대 초반으로 보고 있으니 지금으로부터 3000년 전쯤 쓰인 ‘소설’인데 성경에 노아의 방주 이야기는 그럼 이 길가메시 이야기를 베껴 쓴 것인가? 길가메시 서사시의 대홍수 이야기가 성경의 노아의 방주 이야기로 둔갑한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크리스마스 날 자체에 대해서도 나는 의문을 품고 있다. 성경에 예수님께서 12월 25일 태어났다고 말한 구절은 없다고 한다. 12월 25일은 동짓날이 조금 지나서 있는 날이다. ‘동지’ 하면 팥죽 먹는 날 정도로만 알고 있지 너무 대충 살다 보니 정작 이날의 의미에 대해 알려고도 하지 않았고, 궁금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알고 보니 동짓날의 의미는 ‘1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라고 한다. 

 예수가 탄생하기 이전, 고대에서는 "해"가 아주 중요했기 때문에 세계 각국에서 동지를 찬양하고 기념했다. 페르시아의 미트라교같이 태양 숭배의 풍속이 있는 곳은 동짓날이 이미 축제날이다. 온 동네와 나라가 이미 축제의 날인 동짓날이 왜 하필 예수 탄생 날짜가 되었을까? 그렇다면 초기 기독교인들은 본인의 종교를 많은 사람에게 기념하게 하려고 기독교가 아닌 사람들의 원래 축젯날이었던 동짓날을 일부러 선택하여 예수 탄생일을 꿰맞춘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었다. 

 독일에 와서 가장 깜짝 놀란 것이 겨울에 해가 너무 빨리 진다는 것이었다. 베를린의 12월은  오후 2시부터 뉘엿뉘엿 해가 지고 오후 4시면 아주 깜깜한 밤이 되어버렸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이렇게 춥고 어둡고 긴 겨울밤을 한국인들보다 더 절실하게 극복해야 하지 않았을까? 


 크리스마스 날도 크리스마스 마켓도 나는 우리 인간이 춥고 어두컴컴한 이 긴 겨울밤을 지혜롭게 생존하여 보내기 위해 만든 아름다운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점들도 밝고 아름답게 꾸미고 가정마다 예쁘게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하면서 가족들, 이웃들과 모여 힘든 겨울을 함께 이겨낸다. 

그래서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행위는 예수님 생신을 축하한다기보다 힘든 계절을 함께 극복하려는 조상님들의 지혜를 이어받아 인류의 전통적인 축젯날에 참여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종교가 없더라도 이날만큼은 그동안 소홀했던 친구들이나 가족들에게 연락하고 크리스마스를 핑계 삼아 작은 선물이라도 하면서 맛있는 음식도 먹고 나름대로 소소한 삶의 기쁨을 창조하면서 살아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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