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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블 소피아 Nov 07. 2023

함께한다는 것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날이 되었다. 나는 윌에게 크리스마스 마켓에 가보지 않겠냐고 물어보았다. 크리스마스가 휴일이라 대부분 관광지나 가게들이 문을 닫았고 딱히 이날 할 일도 없었기 때문에 우리가 가보지 않았던 젠다르멘 마르크트(Gendarmenmarkt) 크리스마스 마켓을 둘러보기로 했다. 이곳은 중세 시대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으로 독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으로 불린다고 한다. 


광장은 콘체르트하우스와 독일 돔, 프랑스 돔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콘체르트하우스 앞에 무대가 마련되어 있었다. 여성 가수 한 명이 허스키한 목소리고 크리스마스와 어울리는 재즈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광장은 수없이 많은 텐트가 설치되어 있었고 우리는 무대 맞은편 상점에서 판매하는 글루바인을 한잔 사서 여가수의 촉촉한 노래를 들으며 잠깐 몸을 녹였다.

따뜻한 와인을 한잔 비우고 우리는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걸으면서 나는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윌과 이야기하다가도 “윌, 잠시만.” 하고 이야기를 뚝 끊어버리고서는 사진을 찍었다. 내가 여행을 온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그중 하나가 사실 사진을 잘 찍어보고 싶은 이유도 있었다. 사진기는 초보자들이 많이 사용하는 캐논 EOS M50, 렌즈도 15-45mm 번들 렌즈였지만 왠지 느낌 있게 예술적으로 찍어보고 싶은 욕심이 들었다. 나는 피사체의 각도, 빛, 색감 등을 고려해서 사진 찍는 것에 진심을 다했다. 그리고 우리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소피아, 너는 지금 나랑 함께 있는 게 맞아? 난 너와 함께 있다는 느낌이 전혀 없어. 빈 껍데기랑 있는 것 같아. 네가 대화를 번번이 끊고 저렇게 사진을 찍으러 다니고 나는 기다리고 있는 이 상황이 너무 싫어. 우리 현재에 좀 충실하면 안 되겠니? 사진기를 좀 내려놓고 너의 눈으로 이 풍경을 담고 가슴으로 느끼며 그냥 너와 나, 이 순간을 함께 즐기면 안 되는 거야?”

그리고 나는 말했다.


“여행을 다니면 당연히 새로운 곳에 대한 기억을 오래 남기고 싶기 마련이고 그래서 사람들은 사진을 찍는다고 생각해. 내가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와서 사진 찍는 것을 네가 이해를 못 해주면 어떻게 해? 앞으로 여행 다니면서 사진 찍을 때마다 네 눈치를 봐야 하는 거야? “


 우리의 의견은 조금도 좁혀지지 않았다. 사소한 말다툼일 수도 있지만 그럴 때가 있다. 두 사람의 생각이 너무나 확고하여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일 수 있는 틈이 전혀 보이지 않을 때. 서로 입장만 맞는다고 생각하는 순간. 마치 두 개의 선이 있는데 평행선으로 쭉 그어놓아 전혀 만나는 지점이 없어 보일 것 같은 때가 있다. 이 사소해 보였던 말싸움은 엉망으로 엉켜버린 얇은 목걸이 줄처럼 성가시게 되었고 우리는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알지 못했다. 숙소에 돌아가서도 말싸움은 계속되었지만 서로의 입장만 고집했고 나를 몰라주는 상대방에게 답답함만 느꼈다. 

윌이랑 연애한 지는 7년, 결혼한 지 4년이나 되었는데 이렇게 안 풀리는 적은 처음이었다. 보통 윌이 대화를 요청하고 사과를 먼저 하는 편인데 이번엔 그도 만만치 않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해결이 되지 않은 채 대화를 덮었다. 


다음날 윌이 물었다. 


“우리 괜찮은 거지?”

“모르겠어.”


그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일상으로 돌아와 우리의 할 일을 했다. 나는 싸움 이후 둘이 함께 있을 때는 최대한 사진을 찍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래서 기왕이면 가 보고 싶었던 곳은 그와 같이 가지 않고 혼자 가서 내가 찍고 싶은 만큼 사진을 다 찍었다. 그래서 나중에 윌이랑 같이 그곳에 가게 되면 결국 사진기를 내려놓을 수 있었고, 나는 윌과 눈을 마주치고 손을 잡고 대화하며 우리와 그 공간이 하나가 될 수 있게 우리 둘의 시간에 최선을 다했다. 윌도 내가 ‘잠시만!’ 하며 그를 내팽개치고 사진을 찍으러 달려가도 예전처럼 잔소리하지 않았다.


함께 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사랑하면 다 함께 할 수 있는 것인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너무도 다른 개개인이 만났는데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함께 있으면 언제나 좋기만 할까? 성이 다른 이성이 만났을 때와 성이 같은 동성이 만났을 때, 차이는 좀 있을지언정 원리는 같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친구와 함께하기도 어렵고, 싸우고 화해하고 절교하고 거리를 두고, 친구를 마음속 깊이 사랑하지만, 항상 좋을 수만은 없게 된다. 넓게는 무리를 이루어 사는 사회 또한 개인들이 모여서 사는 것 아닌가. 여기서 개인의 자유와 남을 위한 배려 간에 충돌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어디까지 배려하고 어디까지 나의 자유를 제한해야 함께할 수 있는 것인가?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다. 한자의 ‘사람인’ 자도 두 사람이 기대어 있는 모양이다. 혼자 사는 것이 외롭기도 하겠지만 협력해야 생존 가능성이 커지고 일의 능률도 좋아진다. 하지만 두 사람 이상이 되면 항상 갈등이 발생한다. 갈등은 반드시 나쁜 것인가? 

그럼, 갈등 없이 모든 사람의 생각이 같기만 하면 어떻게 될까? 모든 사람들의 의견이 하나와 같다면 우리 사회는 좀 더 살기 좋은 사회가 될까? 공산주의 국가처럼 모든 사람의 의견을 당의 의견과 같이하고 당의 의견과 다른 의견은 받아들이지 않는 사회를 좋은 사회라 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유대인을 대 학살했던 나치당과 같이 잘못된 리더가 그룹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고 있다면 어떻게 막을 것인가? 문제를 인지하고 있는 ‘다른 의견’이 많이 모여 여론을 조성하고 그 잘못된 리더나 그룹과 부딪혀 봐야 하는 것 아닌가? 민주주의 국가도 자유가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집권한 당과 대통령과 국가의 의사결정에 ‘다른 의견’을 제시했을 때 과연 민주주의 국가가 그 ‘다른 의견’을 향해 대하는 태도가 공산주의 국가와 크게 다른지 의심해 볼 필요도 있다. 예를 들면 ‘스노든 사건’이다.

 스노든 사건이란 전 미국 중앙정보국(CIA) 직원이자 미 국가안보국(NSA)에서 근무한 에드워드 스노든(Edward Joseph Snowden, 1983~ )이 2013년 6월 NSA의 무차별 개인정보 수집 등의 내용을 담은 기밀문서를 폭로하면서 전 세계에 큰 파문을 일으킨 사건을 말한다. 스노든에 따르면 NSA는 2007년부터 개인 전자정보 수집 프로그램 프리즘(PRISM)을 통해 미국 주요 인터넷 기업 9곳의 서버에 접속하거나, 해저 광케이블에서 전자신호를 가로채는 수법 등으로 일반 시민들의 개인 정보를 대규모로 수집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미국 NSA 도청 파문(2013)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스노든은 무차별하게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국민들의 허락 없이 함부로 사생활을 사찰하는 행위에 대해 잘못되었음을 인지하였고, 이 사실을 미국 국민들에게 알려주려고 결심하게 된다. 이에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무리(조직)에서 ‘다른 의견’을 가진 스노든을 국가를 배신한 반역자, 범죄자로 규정하고 쫓았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스노든은 21개국에 망명을 신청하였으나 미국의 압박으로 망명 요청은 거의 거절되었고 우여곡절 끝에 러시아로 망명하게 된다. ‘다름’를 존중하고 개인의 인권과 자유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미국에서 국가기관의 불법적 감시와 사찰을 알려서 벌어진 일이다. 


우리는 같은 호모사피엔스라는 종 아래 각각 다른 DNA를 가지고 있다. 외모든 성격이든 비슷할 순 있지만 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개개인이 다른 생각을 가졌음이 명백하지만 협력해야 살아남는 호모사피엔스 종 특성상 ‘협력’에 해가 되는 다른 생각은 철저하게 배척된다. 그래서 무리에서 ‘다른 생각’을 하면 받아들여지기보다 배척되기가 더 쉬운 것 같다. 그것도 생존에 위협이 될 만큼 심각하게 왕따를 당한다.

 ‘다른 의견’이 무리에서 배척당하기 쉽다면 ‘다른 의견’이 존재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우리 사회나 국가에서 ‘다른 의견’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이 하는 역할은 무엇인가? 


남편과 싸울 때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남편이 이해도 되지 않고 바보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어떤 잣대로 나만 절대적으로 맞고 상대방은 잘못되었다고 판단하여 상대방이 바보 같다고까지 느껴지는 것일까?

 그 사람이 ‘잘못했다’가 아니라 ‘다르다’라고 인지하고 왜 저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이해하려고 해야 한다. 물론 이렇게 풀어내는 과정이 엄청나게 에너지 소모가 많이 들고 피곤하다. 귀찮아서 이런 대화를 피하고 싶다. 생략하고 싶다. 하지만 왜 다른지에 대해 귀 기울이지 않고 풀어내지 않으면 나중에 이런 사소한 문제들이 쌓이고 쌓여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나중에는 풀 수 없게 되어 다이너마이트로 폭파해야 하는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된다. 

그래서 ‘싸움’은 중요하다. 


간혹 싸우지 않는 커플이 있다. 나는 이 커플이 좋은 사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싸움하지 않는다는 말은 문제를 피한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부부 사이는 싸움을 많이 하는데 문제를 푸는 것이 힘들어 많이 덮고 지나간다. 이 또한 갈등을 해결하는 좋은 방법이 아니다. 덮인 문제들은 대게 시간이 지나면 수면 위로 떠오르는 부패한 시체처럼 떠오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이 모여 사는 작은 단위인 부부, 그리고 가족, 크게는 사회나 국가에서 ‘다른 의견’으로 하여금 발생하는 갈등과 문제들은 다른 의견이 가진 각각의 생각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비록 그 과정이 피곤하고 짜증 나더라도 바로바로 해결하지 않으면 이해할 기회를 놓치게 되고 전쟁으로 돌입하기 때문이다. 아시다시피 전쟁의 끝은 승자와 패자가 아니라 죽음과 분단이다.


 부부가 함께한다는 것, 가족이 함께한다는 것은 사랑을 바탕으로 하되 갈등을 끊임없이 해결해 나가는 것. 나는 그것이 부부관계, 가족관계라고 생각한다. 신데렐라나 백설 공주의 “그래서 공주님과 왕자님은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라고 하는 해피엔딩 따위는 무던히 갈등을 해결하며 치열하게 고군분투하는 그 어마어마한 노력을 ‘결혼에 골인이 중요한 거지 뭐 그 뒤에 “잘 살았습니다” 부분은 그렇게 신경 쓸 필요 없어’하고 뭉뚱그려 무책임하게 던져놓은 판타지의 폐해가 아닐 수 없다. 

내가 결혼하지 않았을 때 나는 백마 탄 왕자님을 구하는 것에만 목적을 두었다. 그리고 여기서 포인트는 왕자님이 백마를 탔다는 거다. 이실직고하자면 경제적으로 형편이 넉넉하여 이 빡빡한 세상에서 나를 구해줄 수 있을 것 같은 왕자님을 꿈꿨었다.

남자친구가 없었던 삼십 대 중반에 힐링캠프라는 프로그램에서 가수 지누션의 그룹 멤버인 ‘션’과 탤런트 ‘정해영 ’ 커플이 인터뷰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었다. 션은 2004년에 탤런트 정혜영과 결혼하여 자녀를 5명이나 두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는 연예인이다. 인터뷰 중 션이 말했다.

“모두 결혼을 꿈꾸며 한 번쯤 누구나 보석 같은 상대를 찾기를 바라지만 수많은 사람 중에 나만의 보석을 찾는 건 힘든 일이다. 결혼생활이란 것은 원석이 원석을 만나 보석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때 이 말이 참 멋지다고 생각은 했지만 현실에 적용하지 못했다. 나는 못생기고 바닥에 흩어진 돌들과 다를 바 없어 보이는 원석을 찾지 않았고, 잘 다듬어진 ‘보석’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에서야 윌과 우당탕 지지고 볶으면서 ‘보석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아 가는 중이다. 이 사람과 지겹도록 싸우면서 서로 갈고 닦여서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이 되어 가고 있다고 느낀다.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인지했다면 다음 스텝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이다. 함께한다는 것의 열쇠는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이다. 얼마나 현명하게 갈등을 해결하는가가 그 둘 사이나 그룹의 관계가 발전하는가 쇠락하는가의 중심이 된다고 생각한다. 부부 사이가 좋아 보이는 부부가 있다면 분명히 둘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이 좋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나와 내 남편도 각각 다른 사람이고, 다른 부부의 그 개인들도 모두 다른 성격을 가진 다른 사람이기 때문에 그 부부의 특성에 잘 맞게 그들만의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 도무지 둘 사이가 풀리지 않아 다른 커플이 어떻게 갈등을 해소했는지 궁금할 경우, 그들이 어떻게 해서 잘 풀어냈는지 방법에 대해 참고만 할 뿐, 그 방법이 본인들 부부관계에 통한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나는 우리 대한민국도 쓰디쓴 ‘갈등’을 극적으로 겪고 많이 성장했다고 느낀다. 현재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해외여행 갔을 때 다들 한 번씩 느껴봤을 것이다.

‘우리나라 참 살기 좋아~.’

하지만 1950년 6.25 전쟁 폐허에서 고작 70년 만에 어떻게 이런 발전을 이루었는가?

 우리나라는 45년간 남의 나라에 지배당한 일제강점기도 겪었다. 그러고 나서 우리나라의 같은 한 민족들끼리 서로 죽이던 6.25를 겪었고, 정부가 하는 일이 맞든 틀리든 정부가 하라는 대로 안 하거나 비판하면 감옥에 끌려가서 온갖 고문을 당해야 했던 박정희, 전두환 시대도 겪었고 남의 나라도 아니고 우리 정부가 우리 국민들을 잔혹하게 짓밟고 학살했던 5.18 광주민주화운동도 겪었다. 최근에 우리나라 국민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무능함에 분노하여 폭력 행사 하나 없이 촛불 하나만 들고 탄핵을 끌어냈으며 그녀를 권좌에서 끌어내렸다. 우리는 잘못되었다고 생각했을 때 문제를 인지하고 끊임없이 해결해 왔다.

나는 이러한 대한민국의 근대 역사를 바라보며 우리나라가 많이 성장했다고 느꼈고 이 성장은 갈등을 잘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또 다르게 말하면, 우리나라가 갈등을 겪지 않았다면 이런 성장은 존재하지 않았을 거라는 말도 된다. 그렇기 때문에 성장을 위해서 갈등은 꼭 필요한 요소이다.


 함께 한다는 것에 대해 구구절절 늘어놓았지만, 우리 부부도 매일 싸운다. 아마 죽을 때까지 싸울 것이다. 하지만 함께 할 때는 반드시 갈등이 필요하다는 것과 갈등을 잘 해결하는 것이 관계에서 중요하다는 점을 서로 인지하고 있고 원만한 갈등 해결을 위해 서로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되돌아보면 나는 우리 부부가 싸우고 화해하면서 서로 많이 성장했다고 느낀다. 


 어느 날 친구들과 그룹 메신저를 통해 줄무늬 드레스 사진을 보고 이것이 파란색과 검은색 드레스로 보이는지 흰색과 금색 줄무늬로 보이는지 이야기하게 되었다. 나는 아무리 봐도 흰색이랑 금색으로 보이는데, 파란색과 검은색이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냐고 윌이 말했다. 그룹에 친구들도 의견이 분분했다. 이런 작은 사진으로도 사람들이 세상을 보는 관점이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 윌이 농담을 던졌다.

“이 같은 드레스를 보고 소피아는 흰색 금색밖에 보지 못하고 나는 검정과 파란색만 보는데 우리 어떻게 결혼했지?”

윌 사촌이자 우리 친구인 저스틴이 말했다.


“그러니 함께라면 세상을 더 많이 볼 수 있잖아!” 


그리고 그는 사람들이 눈을 가리고 코끼리의 한 부분을 만져보며 이것저것 추측하는 사진 한 장을 올렸다. 코끼리 상아를 만진 사람은 ‘이것은 창이다’라고 말했고, 코끼리 몸통을 만진 이는 ‘이것은 벽이다’라고 말하고 꼬리를 만진 사람은 ‘이것은 밧줄이다’라고 말하는 사진이었다. 모든 사람이 함께해야만 전체의 형상을 알아낼 수 있지만 각자 관점에서 본 것만 주장하면 전체를 보지 못한다. 우리는 내가 안다고 믿는 것만 주장하기 때문에 함께 하는 것이 힘들 때가 많다. 내가 주장하는 그 순간에는 나만 맞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하지만 내 고집을 꺾고 한 발짝 물러서서 함께 바라본 세상은 항상 내가 주장하던 세상과 거리가 멀었다. 나만 맞았을 경우는 매우 적었다.

함께할 때 갈등을 많이 겪겠지만 잘 풀어내어 저스틴이 말한 것처럼 함께 더 많은 세상을 볼 것인지 코끼리 다리 하나만 붙들어 매고 이것이 코끼리라고 믿으며 나 홀로 편하게 살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혹시 함께하고 싶은데 함께 하는 것이 어렵기만 하고 도대체 이 관계에 뭐가 잘못된 건지 모르겠다면 내가 ‘갈등’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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