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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과장 Nov 15. 2024

글쓰기

무작정 시작했던 글쓰기를 멈추었다.

최근에 기존에 계획해서 실행하던 글쓰기를 멈추었다.

이유라고 한다면, 글이 잘 써지지도 않고 내가 하고자 하는 의미가 잘 담기지 않아서이다.

사랑하고 바라고 선물하고 이해받고 위안되고 그런 의미가 가득 담긴 글을 쓰자고 생각했던 내게 하고자 하는 말은 담기지 않은 채 뒤죽박죽 내용만 늘려가는 글은 변기통에 싸놓은 똥보다 더 변기통에 내려버리고 싶은 마음을 생겨나게 했다. 그 엉망인 글 조차 변기통에 내리고 싶지 않을 만큼 내겐 소중하다는 것이 너무 마음을 힘들게 했으니 말이다.


쌓여있는 것들을 글로 잔뜩 토해내니, 더 토할게 없었던것일까? 속상했고 신경적이게 되었다.

그래서 집에 있는 책을 골라 1장이라도 제대로 읽어보기로 했다. 왜냐고? 나는 지금까지 타인의 글은 잘 읽지 않았음을 문득 느꼈기 때문이였을것이다. 다른 사람의 마음과 머릿속의 날씨에 대해 나는 궁금해하지도 탐구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내 세상에서 햇빛은 말려놓은 침구에서 나는 그 포근한 향기이지만, 타인의 세상에서는 여름 야구장의 열기나, 계곡물에 푹 젹셔지고 뜨거운 바위위에서 말리는 졸림일지도 모르지

또는 말라죽은 땅덩이가 갈라진 자국에 빠진 슬리퍼와 타버린 살결자국일지도 모른다.


이런 타인의 세상을 알고싶어 하는 맘 없이, 내 세상만 보여주려니 나도 모르는 내 세상 구석구석을 설명하기가 너무나 어려워지기 시작한 것 아닐까 싶다. 그 동안 곱씹었던 커다란 산덩이 잘 토해내었지만, 그 속에 사는 수 많은 생명에 대하여 나 스스로조차 제대로 곱씹어본 적 없었을테지, 그러니 타인의 세상과 작품속에 빠지는것이 이번 방황에 대한 스스로에게 내린 처방이다.


오물같은 글쓰기도 내게는 보물이다. 다만, 그것에서 느껴지는 오물같은 감정은 변기통에 내리고 싶다. 무슨 말을 쓰든 내가 쓴 글은 도저히 버릴 수가 없다. 수정하기도 힘들다. 그 엉성한 마음과 오탈자 마저 손을 대면 그 글을 썼던 내가 지워지기 시작하는 느낌이 나는 참 싫다. 그래서 똑같은 글을 새롭게 계속 쓰게 되는 나다. 이런 내가 내 하고자 하는 말을 갑자기 쓰지 못하게 된다는 것은, 안그래도 어려웠던 나의 글쓰기에 자연재해, 난공불락이다. 손쓸 수 없다.


그래서 이번에 서점에 가서 가장 좋아하는 시인 중 한 분인 나태주 시인의 책을 구매했다.

언젠가 친구가 내 시를 두고 이해하기 쉽고 술술 읽기 편안한 시라고 했었던 것 같다.

나의 시가 어쩌면 그를 닮았을지 모르겠다.


나태주 시인의 시를 아주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자면, 깊이 생각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편안한 잠이 깊이 오랫동안 지속되는 것 처럼, 그리고 개운하고 편하게 일어나 내 일상을 지내는 것 처럼 읽히는 시이기 때문이다. 어려운 말이나 표현보다도 쉽지만 보다 특별하게 그 감정을 느끼게 되지만, 절대 무겁고 진하고 않으며 그 여운이 마치 비오는 날 나를 감싸는 엄마가 아침에 챙겨준 우산이 되어주되, 절대 심장에 꼽히는 화살이 되지 않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 나의 글을 못쓰겠다면 타인의 글을 읽자. 읽고 싶은 것만이라도 많이 읽어보자. 읽히기만 한다면 무엇이든 읽어보자. 에전에 내가 써놓은 글에 집착하고 읽어가며 새로운 마음을 펴내는 행위만을 반복하지 말자.

타인의 글에는 내가 가지지 못한 색과 주문이 있다. 그 주문에 걸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잠시나마 느껴보아야지. 나의 글쓰기는 절대 완벽하지 못할것이다. 하고 싶은 말은 너무 많으니까, 다만 그 여러 주문에 걸려보면서 내 하고픈 말 더 잘 느껴지는 글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


이것 보아라, 내 마음의 짐부터 내려놓고자 글을 쓰고 타인의 글에 위로받고 좋아하는게 무엇인지 단순하게 써내렸더니 꽤 그럴싸한 글이 되었다. 행복하다. 그래 글쓰는 것은 이런 맛이지. 이것은 일기가 되기도 하고 위로가 되기도 하고 미래의 나를 위해, 과거의 나를 향한 편지가 되기도 할 것이지. 글이 가진 수천개의 마법중에 내가 외울 수 있는 주문만을 골라 글을 쓰는 것이 좀 지루했었나보다.


엉성하고 똥덩어리 같은 글도 나는 내가 쓴 글이라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천성을 타고났으니, 지금부터 타인의 세계에서 타인의 주문에 걸려 글을 읽으면서 글을 쓰겠다.

그것이 배설물이라 해도, 거름으로 기어코 써주겠다. 완벽하고 예쁘고 멋진 글쓰기에 집착할 필요 없으니 거름이 되는 배설물을 쓰자. 속을 뒤짚어 엎는 토사물을 엎어내서 쓰자. 그리고 그것을 거름삼아 또 새로운 양식을 먹어 소화시켜 손으로 글을 써내야겠다.


아름다운 자는 머문 자리도 아름답다는 화장실의 문구처럼, 아름다운 글을 쓸 양식과 주문에 걸리러 또 다른 이의 글을 읽겠다. 내 글은 10년이 지나도 똥덩이일지 모르지만, 내가 그 똥덩어리 사랑하는 인간이니, 그 사랑을 거름으로 쓰고 살겠다.


그래 난 살기 위해서, 위로받기위해서, 스스로를 위해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지

이제서야 그 때 생각이 나는걸 보니, 나는 확실히 글 쓰기 시작한 이유를 잊어먹은 모양이다.

부른 배를 비우고 터지기 직전에 다 뱉어내니 어쩌다 글을 썻는지 생각이 나는구나. 말 못하여 글로 써내리고, 아무도 몰라주어 시로 터트린 내 맘이었지, 오로지 나를 위해 썻던 글과 시들이었다. 지금도 나를 위해 써내리고 있으니 이렇게 목적을 찾게 되었다.


오늘부터 생각나는 단어를 골라 그 단어를 보면 나는 생각에 대해 무작정 써내려야지


그래 나는 나를 위해 글을 썻다.

다시 기억해내서 너무 다행이다. 이 글을 쓰길 너무 잘했다.

이러니 똥덩어리를 써내려도 내가 그 글을 절대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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