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2024년 11월 13일 창밖을 내다보니 늦은 가을에 맞춰 산이 옷을 갈아입는 중이다. 예년들과 다르게 올해는 참 가을이 늦다. 9월이 시작될 때만 해도 가을느낌이 나지 않아, 명절에 대한 느낌이 살지 않았고 우리가족들은 여름휴가를 대신해 명절에 조부모님 댁에 머무르는 느낌을 받았었지
노을 빛깔을 닮아 해질녘이 다가오는 시점이 되면, 산의 황금색은 더욱 화려하게 빛나는 듯 조명킨 것 마냥 밝게 반짝이는 듯 하다.
나뭇잎의 원래 색은 초록색이 아니라 우리가 아는 가을의 노오랗고 또는 짙은 감색이라고 한다. 여름에 엽록소가 있을 때는 나무가 푸르지만, 겨울을 나기 위해 나무가 이파리까지 영양분을 도달시키지 않게 되면 이 엽록소가 사라지고 본디 나뭇잎의 색이 들어나는것이다. 의아한 듯, 신기한 사실에 나는 가을이 오면 나무가 옷을 입는다고 해야할지 벗는다고 해야할지 조금 혼돈이 왔던 것 같다.
옆 건물 벽에 붙어 위로 뻗친 조명빛이 퍼진 모양이 마치 부채꼴 같아서, 가을 은행잎같이 보인다. 벽에 붙은 조명의 색도 노랗게 피어나 그런지 저 또한 가을에 보니 낚옆같구나 싶었다. 낮에는 환한 해에 황금빛 산이 보이고, 밤에는 짙게 깔인 어둠이 고개를 내밀어야만 비로소 보이는 전구의 낚옆이었다. 밤낮이 이렇게 쉬지 않고 가을이라고 세상에 존재를 들어내는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이번 가을은 속절없이 지나 느껴보지도 못하는가보다 하고 마음대로 생각하고 판단한것일지 모르겠다. 뭐, 실제로 빠르게 지나가고 있기는 하니까. 가을이 짧아진게 아니라 겨울이 짧아진 것 아닐까 생각도 해본다. 이 가을속에 있으면 그렇다.
가을속에서 춥다 덥다를 반복하며 중간없는 일교차에 신경이 긁히고 있지만, 바삭바삭 맛있게 밟히는 낚옆에 그 긁힌 신경의 부스럼을 같이 밟아낸다. 풍요로움의 계절이자 공허의 하늘을 가진 허한 가을. 가을이라 느낄 수 있는 물질적 풍요와 감정적 빈곤은 무언가 설명하기 어렵지만 우리네 삶과 닮아있다. 그 수 없이 빼곡한 빌딩의 숲에서 계절의 변화라고는 문의 열림으로 느껴도 잘 와닿지 않는 자연의 빈곤함 속에 놓여진 우리지만, 주말에는 빌딩의 숲에서 벗어나 푸름과 황금의 색을 고루 갖추고 내 키에 닿일 높이에 낙옆으로 머리를 쓰다듬는 나무 사이로 숨어 여실이 빈곤할 속내를 채우기도 하고, 필요하다면 제대로 비워내보는 것도 좋겠다.
마음에는 까마득한 겨울이 찾아와 뜨거운 사막길과 또 다른 부서질 듯 차가운 빙산을 오르지만, 내면의 칼바람과 다르게 가을은 이렇게 풍요롭게 사랑했다 표현하니, 지금 누리지 않으면, 지금 꺼내 열어 제대로 읽어보지 않으면 영영 사라질 사랑의 편지같다. 내년 가을이 또 올거라는 생각으로 지금 이 순간을 보내기에 나의 삶과 시간이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내가 아마 이 계절을 생각보다 기다렸고 그리워했음이 아닐까 싶다. 아빠의 머리처럼 잔디도 군데 군데 노르스름 물들어 아쉽기만 하고, 손아귀에 쥘 수 없는 세월을 뒤돌에 보게 하는 가을이라는 계절이 참,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구나
아름다운 사계절의 나라, 금수강산의 한반도를 빌딩의 숲 사이에서 보내기에 이 1년에 4번뿐인 계절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 더군다나 2개의 계절은 사라지는 것 처럼 온도차가 절정에 이르고 있는 요즘이다. 노력하지 않아도 다가오는 계절이지만, 노력해서 우리가 다가가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가을, 천고의 하늘아래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