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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과장 Nov 22. 2024

흐림

24년도의 가을은 흐린날이 꽤 많았다. 천고의 계절인데 구름이 잔뜩 껴있는 날도 그 만큼 많아서 온전히 가을을 누리기가 참 어려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흐린 날씨는 나를 참 신경적으로 만드는 재주가 있는 것 같다.

맑을지 비올지 핸드폰 키고 어플 하나 검색 한 번으로 다 알 수 있는 세상이라고들 하지만, 자연은 우리의 손바닥에서 파악당할 만큼 만만하지 않아서 예상을 뒤엎어버리기도 하지, 최근에는 화도 많아져서 더 들쑥날쑥 거리는 편이다. 


의외로 흐린날은 서핑하기 좋다.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말이다. 그렇게 즐길만큼 해본적도 없지만, 해가 쨍쩅해서 눈을 찡그리고 더워 헐떡이는 것 보다 눈 똑바로 뜨고 바다위에서 서핑을 즐기는게 초보에게는 더 안성맞춤이라 아무래도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조금 흐린 날은 밭일을 몰아치는 날도 그렇고 아무래도 야외에서 하는 대부분의 활동이 생각보다 흐린 날이 제격인 경우가 많은데, 대신 사진이 예쁘게 나오지 않는다는 단점은 있다.

글쎼 근데, 제주도에 가면 흐린 날 더 예쁜 까만 돌이 가득한 해변이 있다고는 한다.


나는 흐린날이면 기분이 묘하게 처지고 불안불안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뭐 어쩌라는건지, 비가 올건지 말건지 확실히 해주면 참 좋겠는데 예상할 수 없게 해가 날 때도 있고 천둥이 칠 때도 있으니 신경질이 날 수 밖에 없다. 창문이라도 열어놓고 오는 날에는 더 속이 타기도 하지


그래서 오늘 흐린 날씨에 짜증을 내는 글을 이렇게 쓰며 인생의 대부분이 흐린 날씨와 비슷한 점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되버렸다. 어쩌면 좋을지, 어쩌라는건지 모르겠는 세상과 일상의 반복이지 않는가. 우산과 선크림을 늘 들고다니며 대비하는 이들도 많지만, 혹시 모르지 하필 그 날 우산이 없거나 망가져서 소나기에 흠뻑 젖어버릴지도.


그치만 무엇보다 흐린 날씨와 삶이 비슷하다고 느낀 것은, 대부분 이렇게 불가항력으로 맞딱들이는 일들은 털어내고 이겨내고, 한 두번의 푸념과 짜증으로 넘길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라서 아닐까 싶기 때문이다. 흐려서 니트를 입었더니 오후에 맑은 날 덕에 더위에 찌들려도 얼음물을 먹고 에어컨을 눈치껏 틀어버리는 것도 할 수 있고, 비가 와서 어쩔 수 없이 젖으면 집가서 씻고 옷을 갈아입으면 되지. 대부분은 비가와도 우산을 쓰거나 교통을 이용하여 피할 수 있는걸


그러나 하필 출근길에 직장 바로 앞에서 물벼락을 맞어버리면 그야말로 곤란하고, 하필 오전 미팅이 급하게 잡혔다면 너무나 곤란하겠지만 그렇다고 인생이 끝나지는 않는다. 운이 좋아서 맑은 날이 갠 것 처럼 오전 미팅이 갑자기 미뤄지는 행운도 있을 수 있으니 말이다. 우리 인생은 늘 그런 흐린 날씨 속에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산 없는 자에게 같이 쓰자고 권유할 수 있는 것도 딱 닮아있다고 느낀다.


아, 어쩐지 난 늘 신경질적이고 스트레스를 잘 받는 예민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만, 이렇게 살살 긁듯이 어떻게 하라는지 도저히 모르겠는 흐린 날씨와 인생이 비슷하다면 나의 이런 짜증은 내 탓만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겠지, 짜증많은 우리 엄마도 천성이 그런것은 아닐테야, 내 인생이 늘 쨍한 해만 있길 바래서 더 많은 비를 맞고 흐린 날에 강단있게 걸었을 엄마아빠이니 그 푸념정도는 내가 들어줘야 그들도 우산 챙길 여유는 있겠다 싶다.


그래도 흐린날씨는 좀 짜증난다. 지금도 잔뜩 흐리다. 겨울이 다가와서 날이 어두워지는건지 가늠이 잘 안되는 오후 3~4시쯤은 이렇게 사람을 복장터지게 한다. 참 쓸모없는 것에, 필요치 않은 감정을 느끼는 것 같아 보여도 나는 창 밖에 날아다니는 날파리 하나에도 세상을 느끼고 바람 한 점에 실린 꽃 향기에도 삶의 감동을 느끼는 극단적인 감정형인간이니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생각을 가다듬어야겠다. 흐린날씨에 늘 우산을 챙길 수 없다. 내게 우산 씌워준 수 많은 관심과 사랑을 생각하면서 나도 더 커다란 우산을 마음에 들고다닐 여유를 가져야지, 흐린 날씨에 휘둘려서 짜증내는 삶을 보내기에 앞으로 남은 나의 100년도 안될 삶이 너무 아까우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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